김내성 장편소설 『비밀의 문』
김내성(金來成.1909∼1958)의 단편소설로 1949년 발표된 소설집 <비밀의 문>에 수록되었다. 우리 문학사에서 본격적 추리 소설의 영역을 개척한 작품이다. 『비밀의 문』은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이전에 라디오 방송 후 [농업조선] 지에 실렸고, 해방 후 다시 이것을 방송극으로 개작하여 방송한 것을 다시 무대극으로 개편하여 어느 정도 알려진 일종의 대중 탐정소설이다. 작중 강 박사가 일생 일대의 작품으로 만든 살인광선 설계도를 버리면서까지 딸 영채를 구하고자 하는 대목과 영채의 지략이 재미를 더한다. 다만, 사건 전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사건 중심의 내용 전개여서 문학성은 미흡한 작품이다.
김내성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1935년에 일본에서 일본어로 쓴 탐정소설 <타원형의 거울>을 발표하였으나, 국내 문단에 등단하기는 1939년 <마인(魔人)>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부터이다. 이어 <가상범인> <백가면> <살인예술가> 등을 발표하여 탐정소설 작가로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8ㆍ15광복 후에는 <행복의 위치> <인생안내> <청춘극장> 등 주로 대중소설을 썼고, A.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번안한 소설 <진주탑>(1947)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49년부터 집필한 <청춘극장>은 1952년 5월에 완료되어 독서계의 인기를 크게 차지하였다. 그 후 다시 <인생화보>를 간행하였는데, 이 소설 등에서 작자가 의도한 것은 이른바 소설의 대중성과 예술성의 통일을 추구하여 실적을 거두었다. 그 뒤 <실낙원의 별>을 경향신문에 연재하다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소설 <인생화보> <청춘극장> <애인> 등은 영화화되어 많은 관중을 모았다. 사후에 내성문학상(來成文學賞)이 제정되었다. 13세의 조혼에서 오는 인생의 고민을 문학세계에서 해석하고자 한 것이 문학을 하게 된 동기라고 자술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괴도 그림자 . '그림자' 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무서운 도적이 서울 장안에 나타나서 한 개의 커다란 흥분을 시민들에게 던져 준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그 때도 요즈음처럼 종로 네거리의 아스팔트가 엿 녹듯이 녹아 나가던 팔월 중순, 뜨거운 태양이 바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불타듯이 이글이글 내려쪼이던 무더운 삼복 허리였다.
'그림자'라는 괴도로부터 그가 강세훈 박사가 발명한 살인 광선의 설계도를 훔치겠다고 하는 경고가 날아든다. 그러나 실제로 귀신같이 탈취당한 것은 박사의 딸 영채였으며, 괴도는 설계도와 딸을 바꾸자고 강 박사에게 제의해 온다.
망설이던 강 박사는 진짜 살인 광선 설계도를 괴도에게 내 주려 한다. 그래서 영채를 사랑한다고 하던 세 명의 남자 (윤정호 씨, 김중식 씨, 백일평 씨)중에서 가난한 작가인 백일평이 거짓 설계도를 가지고 영채를 구하러 간다. 그리고는 한강 인도교 다릿목 아래에서 괴도 그림자와 마주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영채가 아버지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그리고 그녀의 진정한 애인을 찿기 위해서 저지른 조작극이었음을 밝혀진다.
이런 사실을 아버지 강 박사에게 편지로 보낸 영채는 백일평과 함께 인천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무서운 도적이 서울 장안에 나타나서 한 개의 커다란 흥분을 시민들에게 던져준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그 때도 요즈음처럼 종로 네 거리의 아스팔트가 엿 녹듯이 녹아 나가던 팔 월 중순, 뜨거운 태양이 바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불타듯이 이글이글 내려 쪼이던 무더운 삼복더위였다.
아시다시피 그림자는 실로 기상천외한 재주를 가진 도적이었다. 누군가 그를 가리켜 그림자라고 불렀는지 영예스러운 이름을 조금도 훼손치 않으리만큼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지고 그야말로 그림자처럼 나타나서 그림자처럼 사라지곤 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도 역시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을 결코 불명예라고는 생각지 않음인지, 그는 협박장 맨 끝에는 반드시 “너희들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사나이로부터?.” 라고 서명이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실 사내인지 여자인지사람인지 귀신인지? 누구 하나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시커먼 그림자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곤 하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자는 반드시 타이프라이터로 박은 편지로 미리 예통을 한 후에야 나타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림자는 아무 날 아무 시 아무 장소에 나타나서 무엇 무엇을 가져가겠다고 꼭 통지를 하는 법이었다. 아무리 경비를 엄중히 하여도 그날 그시 정각만 되면 그림자가 가져가겠다던 물건은 감쪽같이 없어지곤 하였다. 그것은 실로 요술사와 같은 무서운 재주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 본문에서
♣
수수께끼가 물음과 그에 대한 상대방의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야기의 문학 구조 가운데는 어떤 질문의 상황을 전제로 그것을 풀어 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구조의 이야기를 '물음과 풀림 구조의 이야기'라고 한다. 탐정소설이나 추리소설은 가장 전형적인 '물음과 풀림 구조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그림자'라는 괴도가 강세훈 박사가 발명한 살인 광선의 설계도를 훔치겠다는 경고로부터 이야기의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작가는 흥미를 가중시키기 위해 신출귀몰한 괴도인 '그림자'에 대한 진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본격적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한 김내성의 초기 작품이다. 시점이나 사건 전개에 지나친 작위적 요소가 드러나고 있으나 사건의 흥미를 가중시키기 위해 지연과 반전의 표현 기법, 과장적 표현을 사용한 일정의 추리 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물음과 풀림 구조의 이야기'(추리소설 혹은 탐정소설)의 작가는 독자가 풀어야 할 물음을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그 문제를 풀어 가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그 풀림의 과정은 쉽사리, 그리고 예견된 방식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는 풀림을 방해하는 요인이 등장해서 진행을 지연시키기도 하고, 다 풀렸다고 생각되던 사건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등 반전의 순간도 있게 된다.
『비밀의 문』에서 '물음'은 강 박사의 딸 영채의 탈취와 설계도를 넘겨주게 되는 전반부에 해당하고, '풀림'은 그것이 영채의 조작극임이 밝혀지는 후반부에 해당한다.
'풀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괴도가 설계도 대신 영채를 탈취한 것, 세 남자가 모두 영채를 사랑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 등이 역시 의미상으로 '물음과 풀림'의 연쇄 및 병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에서 '지연' 효과가 나타나는 부분은 '그림자'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협박에 따른 강 박사의 집안 경비 장면, '그림자'를 만나러 간 백일평이 지정된 장소로 한 발 두 발 다가서는 장면 등이고, '반전'의 효과가 나타나는 부분은 캄캄한 모래밭에 부딪혀 쓰러진 사람이 '그림자'가 아니라 영채였다는 장면이다. 이러한 '지연과 반전'은 독자에게 호기심과 놀라움, 박진감과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기능을 한다.
'한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성원 장편소설 『폭군(暴君)』 (0) | 2009.07.20 |
---|---|
한설야 장편소설 『탑(塔)』 (0) | 2009.06.07 |
이문열 장편소설 『영웅시대』 (0) | 2007.12.04 |
이병주 대하소설 『지리산』 (0) | 2007.10.16 |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0) | 2007.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