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원 장편소설 『폭군(暴君)』
홍성원(洪盛原.1937∼2008)의 장편소설로 1969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되었다. 늙은 포수와 호랑이 사이의 대결을 그렸다. '대결'의 상황 설정은 작가 홍성원이 즐겨 다루는 기법인데, 이 작품에서도 가장 힘든 상대인 대호(大虎)와의 마지막 대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냥꾼 노인의 모습이 비장하게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진정한 용기와 지혜란 무엇이며,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다.
홍성원은 흔히 대결의 의미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제재로써 자신의 문학 세계를 열어 간다. 소설 「폭군」에서의 대결은 호랑이와 사람 사이의 대결이지만, 그러한 특이한 제재를 통해 드러나는 대결 의식은 주어진 삶을 극복하려는 능동적 태도의 반영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거는 싸움, 그러한 싸움의 미학을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산 속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헤친다. 그 호랑이는 사람들이 놓은 덫에 상처를 입어 인간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는 위험한 짐승이다.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수렵협회에서 두 사람의 포수가 파견된다. 한 사람은 평생 동안 사냥을 업(業)으로 삼아 온 노인이고, 또 한 사람은 퇴역 장성으로 대기업을 경영하며 사냥을 여기(餘技)로 즐기는 중년 사나이다.
이 둘은 사냥에 대한 기본적 인식부터 차이를 보이는데, 노인은 자기가 쫓는 짐승을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며 지혜와 인내력을 겨뤄 승부를 내는 데에 사냥의 진정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중년 사나이는 사냥을 통해 인간적 우월감을 느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짐승을 사살하는 데 사냥의 목적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이 현지에 도착했을 때, 호랑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신성시하는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두 사냥꾼은 마을 사람들의 진술, 호랑이가 남기고 간 자취, 호랑이가 가축을 잡아갈 때 보여 준 습성을 근거로 하여 잡을 방도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중년 사나이의 성급한 욕심과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분별없는 행동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사나이는 결국 호랑이의 신중한 대응에 말려 큰 부상을 당한다.
노인은 이 호랑이가 가장 강한 적수이자 포수로서의 생의 마지막을 불태울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임을 깨닫는다. 노인은 마침내 호랑이를 홀로 추적한다. 서로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맞닥뜨린 노인과 호랑이는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임을 알게 된다. 노인은 방아쇠를 당긴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노인과 호랑이가 한 덩어리로 엉켜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홍성원은 '싸움의 미학'을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러나 결코 비참한 절망의 언어로 기록하거나 터무니없는 낙관론을 내보이지는 않는다. 냉정하게 그러나 정열을 갖고 현실과 정면에서 부딪치고 진정한 삶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할 뿐이다. 그것은 현실을 떠난 여행의 의미를 가르쳐 주지 않고 현실로 더욱 충실히 되돌아오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그런 각도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중편 소설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게 된다. 중편소설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장편보다는 단편에 가깝지만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심적 갈등의 줄기에 부수적 갈등이나 삽화가 첨가되어 사건의 폭이 넓어진다는 데에 단편과 차이점이 있다.
이 작품은 늙은 포수와 호랑이 사이의 끈질긴 싸움을 그린 이색적 제재를 지니고 있다. 외딴 산촌을 배경으로 하여 맹수와의 투쟁에 인생의 마지막을 거는 포수의 집념이 인상 깊게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늙은 포수와 중년 포수의 갈등(부수적 갈등), 중년 포수와 호랑이의 싸움, 늙은 포수와 호랑이의 싸움(중심 갈등), 이 세 가지의 갈등- 싸움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움직이고 있다.
♣
중심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포수가 가장 어려운 상대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쳐도 좋다고, 그럼으로써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마감할 만한 하다는 장엄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부수적인 갈등을 통해서 작가는 인간의 진정한 용기와 지혜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소설적 질문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의 중심 되는 문제는 늙은 포수와 호랑이의 대결이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포수와 호랑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늙은 포수는 호랑이의 무서운 힘과 지혜에 경탄하면서 강력한 적수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쳐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포수는 가장 어려운 상대와의 치열한 싸움 속에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마감할 만한 장엄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진행되는 또 하나의 부수적 갈등은 사냥을 단순한 스포츠나 재미를 위한 살상으로 여기는 중년 사냥꾼의 속물적 행동과 늙은 포수 사이의 긴장이다.
작품 서두에서 늙은 포수는 초라하고 호화로운 장비를 갖춘 중년 사나이의 기세는 당당하다. 그러나 호랑이와의 대결이 진행되는 동안 이 관계는 역전된다. 이부수적 갈등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진정한 용기와 지혜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소설적 질문으로 제시한다. 즉, 노인은 이익이나 재미, 취미로서가 아니라 생의 과제와의 대결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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