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단편소설 『동구(洞口) 앞길』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40년 2월 [문장]에 발표되었다. 일제강점기 경주를 배경으로, 가난 때문에 양주사 댁에 씨받이가 된 순녀라는 여성의 고통과 본처와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동구 앞길』의 ‘순녀’는 가난한 친정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여 ‘돈 많고 토지 많은’ 양 주사의 소실로 들어온다. 그러나 아들을 낳는 대로 곧 자식 없는 본마누라에게 빼앗기고, 그녀는 온갖 집안일과 농사일로 시달리는 고된 생활을 보낸다. 그러다가 자기가 낳은 아들을 잠시 만나 봤다는 죄로 그녀는 본처에게 죽도록 얻어맞는다는 내용이다.
이 단편은 일제의 압박과 착취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식민지 백성의 비참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작품이다. 김동리는 일제 치하의 궁핍한 현실보다는 토속적이고 샤머니즘적 제재의 작품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는데 예외적인 작품에 속한다. 그가 보인 전통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 우리를 근원적으로 규율하는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이며, 서구적 근대에 맞서는 전통적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순녀는 가난한 집안을 살리기 위해 처녀의 몸으로 뒷동네 양 주사의 씨받이가 되어 7년 동안 세 아들을 낳는다. 양 주사는 순녀의 친정에 살 집과 논 다섯 마지기를 주었다. 첫째 아들 영준은 낳자마자 양주사 댁에 빼앗겼고, 둘째 아들 기준마저 젖먹이 상태로 빼앗긴다.
순녀는 셋째 아들 성준이만은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이지만 양주사는 젖먹이 아들을 뺏기 위해 수탉과 고무신을 선물하며 환심을 사려고 한다.
순녀는 양 주사댁 하인 선이를 꾀어 두 아이를 집으로 오게 하여 모자 상봉에 성공한다. 다음 날 이를 알게 된 본처가 순녀가 사는 집에 와서‘자식도 없고 서방도 빼앗긴 나의 설움을 아느냐’며 순녀의 얼굴과 온몸을 때리고 마구 깨무는 등 폭행하여 순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날 밤 의사가 돌아가고 온 동네 수탉들이 홰를 칠 무렵까지 동구 앞길 위에선 본처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보름 후, 순녀는 고무신과 수탉을 안고 셋째 아들마저 빼앗긴 채 친정을 향해 동구 앞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작가의 작품 경향은 광복 전에는 한국적ㆍ토속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신비적ㆍ허무적 색채를 띠었으나, 광복 후 후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성 옹호와 생의 근원적 회의를 곁들여 사상적 깊이를 더했다. 문학의 순수성, 예술성을 주장해 오고, 민족문학 정립에 기여함. 그의 문학은 종교와 결부되어 있고, 인간의 운명과 구원(久遠)의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루고 그러면서 작품의 예술성을 추구한 것이 특색이다.
그의 문학은 오랜 기간 동안 보여준 한국적 주제의 강렬함과 향토적 미학의 색채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다. 그의 문학 세계는 보통 한 작가에 대해 말할 때 거론하는 소재의 특이성과 강렬한 주제 의식, 작가 정신의 변모 등을 통해서 보더라도 중요한 문제들을 제시해 왔다. 일반적으로 그외 문학 세계는 크게 샤머니즘의 세계, 향토적인 토속의 미, 종교적 주제, 그의 일련의 작품 등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위의 분류 중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동구 앞길』은 순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일제강점기 여성의 비참한 삶과 모성애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순녀의 고통을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함과 여성의 희생을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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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의 문학은 ‘허무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는 허무를 온 인류가 짊어지고 있는 공통된 운명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허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니힐리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의 허무는 ‘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렬한 인생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허무가 인류의 운명이라면 이것을 타개하는 것이 인류의 과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종하기도 하며 도전ㆍ반항하기도 한다. 김동리의 문학이 종교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은 허무를 해결하는 노력의 표현이며, 지금까지 허무를 해결하는 가장 큰 몫을 종교가 해왔기 때문이다.
1940년대 작품답게 「동구 앞길」은 일제강점기 말기의 궁핍하고 암울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다. 순녀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민족의 고난과 여성의 억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순녀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순녀는 본처에게 폭행을 당하나, 독자는 본처 역시 사회구조의 피해자임에 틀림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또한 '동구 앞길'은 향토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경주 지역의 풍경과 사투리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작품의 배경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이러한 향토적인 배경은 순녀의 비참한 삶과 더욱 어우러져 작품의 감동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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