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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혈거부족』

by 언덕에서 2025. 3. 12.

 

 

 

 

김동리 단편소설 『혈거부족』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47년 [백민] 3월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8·15 해방 후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 당시 민초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희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해방 직후 혼란스러운 시기,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던 스물일곱 살 순녀의 남편은 폐병으로 사망한다. 남편을 잃은 순녀는 고향으로 갈 차비가 없어서 서울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길을 잃는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순녀는 우연히 산등성이의 굴 같은 방공호에서 사는 할머니를 만나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곳은 일본군이 방공호 용도로 파둔 열 개의 굴로 해방 후 귀국하여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주택 대신 사용하는 곳이다. 그들은 귀국 후 집을 잃고 산속 굴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순녀는 그곳 황 씨 할머니 모자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45년 서울이다. 삼선교와 돈암교 사이의 구릉 속 반공 굴에서 사람들이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다. 계절은 겨울로 향하고 있으며, 순녀 부부가 만주에서 서울로 귀환하는 길에 폐병에 걸린 남편이 사망한다. 순녀는 생계를 위해 길가에서 담배를 팔다가 주변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산속 반공 굴에 정착하게 된다. 순녀는 할머니의 아들 황 생원과의 혼인을 권유받지만 망설이고, 둘째 굴에 사는 애꾸눈 윤 서방은 순녀에게 추근대며 소란을 피운다.

 장마가 계속되는 밤 새벽, 순녀는 윤 서방에게 강간의 위기를 모면한다. 할머니는 다시 한번 황 생원과의 혼인을 권유한다. 순녀는 남편의 소상을 치른 후 혼인하겠다고 얼버무린다. 그날 밤, 굴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참극이 벌어진다. 날씨는 혹한으로 접어들고, 순녀는 남편의 소상을 앞두고 황 생원과의 혼인을 준비해야 하는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순녀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혼인을 준비하는 중에, 밖에서 "독립 만세!"라는 외침이 들린다.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기뻐하지만, 할머니가 여학생들에게 확인한 결과 독립이 아닌 입법기관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독립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면서, 순녀는 허탈함과 실망감을 느끼고 하늘을 쳐다본다.

 

 독립에 대한 기대가 꺾인 순간, 순녀는 허탈함과 함께 깊은 슬픔에 잠긴다. 순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에서 혈거부족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겨울이라는 혹독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해방이 된 시간이 여름이었지만, 그들은 아직 완전한 해방을 알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나타난다. 신탁통치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민초들의 열망과는 엄청나게 다른 사건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해방 직후의 사회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몸이라도 고향에 가서 묻히는 것이 소원인 순녀의 남편은 고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결국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객사한다. 황 생원의 아내는 겁탈당해 대동강 물에 빠져 죽고, 황 생원은 혈거부족(穴居部族)의 일원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항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윤 가는 순녀를 겁탈하려고 시도한다. 다른 굴에서는 굴이 무너져 사람이 죽게 된다.

 

 

 소설 속의 다양하고 어두운 인물 설정은 이 작품을 시대적 분위기와 연결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 상황은 순녀와 황 생원의 결합으로 일정 정도 극복의 의지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인 나라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국민들이 가지는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이 작품은 반영하고 있다.

 또한 사별의 아픔을 겪은 두 인물이 새롭게 삶을 영위해 나아간다는 상황 설정은 어두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로 읽힐 수 있다. "혈거부족"은 해방 직후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배경으로,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순녀라는 젊은 여성의 시선을 통해 해방 후 만주나 일본 등지에서 귀환하는 사람들의 고통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