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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혼구(昏衢)』

by 언덕에서 2025. 3. 6.

 

 

 

김동리 단편소설 『혼구(昏衢)』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40년 2월 [인문평론]에 발표되었다. 일제강점기 시골 소학교 교사인 강정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작품은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무기력한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강정우는 여학생의 어려움, 즉 제자가 기생으로 팔려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지식인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소설은 우울하고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목 "혼구"는 '황혼 무렵의 어두컴컴한 거리'를 의미하며, 이는 주인공의 혼미한 의식 상태와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상징한다. 주인공의 제자 학숙이 기생으로 팔려 가는 상황을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아버지의 잔인한 모습을 통해 가난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강정우는 소학교의 7년 차 교사로 5학년 담임이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무기력함을 느낀다. 어느 날, 그의 반 여학생 학숙의 아버지 또상이라는 이가 찾아와서 딸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말려달라고 부탁한다.

 학숙의 아버지는 강정우가 기거하는 하숙집 근처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자로 ‘토목공사 경험자 송차상’이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인물이다. 그는 막일하다 다쳐 몸을 쓸 수 없게 되자, 첫째 딸을 술집으로 팔아넘긴 뒤 부잣집 첩으로 보내고 받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다. 이번에는 둘째 딸인 학숙을 다른 술집에 넘기려다가 강정우에게는 거짓말로 딸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고 둘러댄다. 공부를 잘했던 학숙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담임인 강정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강정우는 학숙을 돕고 싶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강정우는 다른 주막에서 담판을 보자는 또상의 제안을 받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혼자 뒷골목 ‘노파 술집’을 찾아가서 술만 마신다. 만취한 강정우는 무력감에 휩싸여 애초 학숙의 아버지와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장소를 비틀거리며 찾아 헤맨다.

소설가 김동리 ( 金東里 . 1913 ∼ 1995 )

 

 주인공 ‘정우’는 학교 선생이다. 지금까지 그는 ‘자기의 신념으로 족히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선과 악은 그때마다 이에 대한 자기의 태도만을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교묘하게도 번번이 그것을 묵과할 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현실적 문제의 곤란을 관념적으로 호도(糊塗)할 수 있었다.

 ‘학교에 나가선 날마다 정해진 시간을 기계와 같이 반복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밤이 깊도록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얼마든지 궐련을 태우는’ 무력한 방관자에 불과하면서도 생각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올바르고 참된 것을 지켜나갈 수가 있었다. 이러한 그가 난처한 경우에 부딪힌다.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어느 여학생의 호소와 공부나 하고 바느질을 배워서 가난하게 사는 이보다 노래를 배워서 기생이나 첩으로 호사스럽게 지내게 하려는 그 아버지의 강요 ―― 이 두 길 사이에서 그는 처음으로 행동과 결부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부모들의 잘못을 설득하여 공부를 계속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평소의 ‘정우’의 소신에 따르는 일이다. 그들에게 아무런 구체적 실감이 없는 ‘영혼’이니 ‘정신’이니 하는 말들을 제쳐놓고 ‘현실적이요, 물질적이요, 육체적인 견지에서 그리고 또 어디까지나 합리적이요, 상식적인 논리’에 의해서 선악과 흑백을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허탈한 웃음뿐이었다. 여기에는 생생한 현실 문제를 관념적 호도(糊塗)와 합리화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소시민적 미온성(微溫性)의 파탄이 제시되어 있다. ‘후후후후, 학숙에게! 후후후’ 멍하니 앉아서 대중없이 터뜨릴 수밖에 없는 이 웃음은, 그러한 파탄은, 붕괴음(崩壞音)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파탄의 의미와 정직하게 대결하지 않을 때 그것은 김동리에게 있어서 <완미설(玩味說)>과 <달> 같은 작품들로 넘어가기 위해서 미리 작성된 뻔한 하나의 길목, 알리바이의 구실에 그치는 편리한 안심책(安心策)이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 강정우의 시선을 통해 소외된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강정우는 학생의 어려움을 보면서도 자신의 무기력함에 좌절하고, 결국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무력감과 사회적 부조리함이 뒤섞여 더욱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혼구』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 강정우의 모습을 통해 당시 지식인의 고뇌와 무기력함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일제강점기 당시의 모습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