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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토마스 만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 죽다(Der Tod in Venedig)』

by 언덕에서 2024. 12. 9.

 

 

 

토마스 만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 죽다(Der Tod in Venedig)』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중편소설로 1912년에 발표되었다. 예술과 인간의 본성,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를 주요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으로도 번역되었다. 이 소설은 예술가의 고뇌와 죽음을 아름다움과 욕망이라는 주제를 통해 심도 있게 그려낸, 독일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후에 발표된 <마의 산>과 <파우스트 박사> 그리고 마지막 소설 <기만>까지 예고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유혹과 불멸의 힘을 발휘하는 죽음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라고 언급하며 “베르테르는 권총으로 자살했지만 괴테는 살아남았다. 이 작품은 기묘한 도덕적 자기 징벌”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예술가 토마스 만과 인간 토마스 만의 번뇌를 그리스의 비극적 구성으로 만든 작품이다. 아름다움과 욕정으로 부패해 가는 베네치아를 삶과 죽음 그리고 신성과 타락의 음영이라는 관점으로 그려내었다. 

 중편소설『베네치아에서 죽다』는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에 의해 1971년 영화화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망 높은 초로의 작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는 한평생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온 창작 작업에 시달리던 중 머리를 식히기 위해 무심히 도심을 배회한다. 바로 그 순간, 이국적인 행색의 낯선 인물을 맞닥뜨리게 되고 아셴바흐는 돌연 거친 불안과 충동에 사로잡힌다. 본능적으로 그 무엇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훌륭한 작가로서 살아온 고리타분한 삶을 뒤로하고 죽음과 같은 단 한 번뿐인 일탈을 감행한다. 아셴바흐는 우연과 같은 필연의 노예가 되어 베네치아로 향한다. 그곳은  불길한 습기와 육욕을 충동질하는 태양, 까마득한 피안을 동경하게 하는 바다로 가득한 곳이다. 처음 그는 베네치아의 속물적 분위기에 악취를 느끼지만 차츰 그 타락한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한 폴란드인 가족을 유심히 관찰하던 아셴바흐는 타치오라는 아름다운 소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아셴바흐는 타치오에게, 아니 미(美)의 현현인 신성한 존재에게 정신없이 빠져든다. 급기야 관심은 동경으로, 동경은 애정으로, 애정은 집착으로 검게 물들어 간다.

 이후 베네치아에는 점점 불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아셴바흐는 도시에 콜레라가 퍼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지만 이를 무시하고 베네치아에 머물면서 타지오를 계속 관찰한다. 도시는 질병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지만 아셴바흐의 마음은 오직 타지오의 아름다움과 그에 대한 갈망만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타지오를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을 반복하며 그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자 노력한다. 아셴바흐는 타지오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나약함과 몰락을 깨닫지만 그 아름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타지오의 아름다움은 아셴바흐에게 예술적 완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자신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징후로 다가온다. 아셴바흐는 자신의 몰락을 직감하면서도 타지오를 계속 쫓아가며 그를 근처에서 지켜본다. 아셴바흐는 점점 더 쇠약해져서 결국 해변의 의자에 앉아 타지오를 바라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상징적으로 그려지며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1971]

 

 사랑하는 자 안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자 안에는 신이 없으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이다. -본문에서

 그의 두 눈은 저기, 푸른 바다의 가장자리에 있는 고귀한 형상을 얼싸안았다. 그리고 그는 열렬한 황홀감에 빠져서 이 형상을 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 아름다움이란 신의 사고로서의 형식이고, 정신 속에서만 생동하는 유일하고도 순정한 완전성이었다. 그 완전한 아름다움의 비유적 겉모습이 하나의 인간으로 화해 여기, 경쾌하고도 아리땁게 우뚝 서서 경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도취였다. 마침내 늙어 가는 예술가는 주저할 것도 없이, 아니, 탐욕적으로 그 도취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본문에서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본질적으로 죽음, 유혹과 불멸의 힘을 발휘하는 죽음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바로 예술가의 모호성, 완벽한 예술에 대한 집착이 불러오는 비극이다. 그리고 무질서와 타락으로서의 열정이야말로 내 소설의 진정한 주제였다.” 토마스 만(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와의 대담에서)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토마스 만의 가장 성공적인 단편소설로 꼽힌다. 그 까닭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가히 단편소설이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 특유의 예술에 대한 지식과 시각적 묘사가 가득한 만연체 문장과 니체 철학이 깃들어있다. 이 작품은 토머스 만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토마스 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구스타프 말러☜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소설이다. 작중 주인공에 나타나는 죽음의 공포, 객지에서 걸린 질병 등은 노년의 말러의 모습에서 따온 부분이 많다. 그러나 고위직 아버지와 예술가적 성향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나 가족들과의 베네치아 여행 도중 정신적 작업에 집중하는 체험 등은 토마스 만 의 모습이어서 다분히 자전적 요소가 섞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예술과 아름다움, 욕망과 죽음을 주제로 한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다. 토마스 만은 아셴바흐의 타지오에 대한 집착을 통해 예술가가 아름다움과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타지오는 작품에서 단순한 소년이 아니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아셴바흐가 타지오에게 느끼는 감정은 예술가가 추구하는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죽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아셴바흐는 그 갈망 속에서 자신의 몰락과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작품 속 베네치아는 죽음과 타락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아름답고 우아한 도시이지만 그 이면에는 콜레라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아셴바흐가 자신의 본능적 욕망과 도덕적 규율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이, 베네치아는 그를 서서히 파멸로 이끈다. 베네치아의 황폐함과 타지오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대비되면서, 예술과 죽음의 연관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구스타프 말러(Mahler Gustav, 1860~1911) :  유대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지휘자. 대표 작품은 <교향곡 8번>과 <대지의 노래> 등이다. 17년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최정상에 올랐고, 1897년 37세의 나이로 빈 궁정 오페라의 예술감독이 되었다. 주로 후기 낭만주의의 요소를 집약시킨 여러 교향곡을 작곡했다. 말러는 생전에 대중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사후 50년이 지나 그가 작곡가로서 20세기 급진적 기법에 끼친 지대한 영향으로 인해 재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