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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한말숙 단편소설 『장마』

by 언덕에서 2024. 6. 27.

 

 

한말숙 단편소설 『장마』

 

한말숙(韓末淑, 1930~)의 단편소설로 1958년 [사상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장마가 진 어느 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6ㆍ25 전쟁 당시 어느 농촌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순애의 과정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부부의 연이란 단순히 혼인이라는 절차를 거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부부간의 사랑으로 가난과 고난을 극복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히 세련되고 절제된 이야기로 가난의 풍경을 비참하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 단칸방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결국 공감을 이루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듬해 발표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와 비교해 읽으면 재미가 더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머슴살이하는 태식이 어제 장가를 들었다. 태식은 툇마루에 서서 장마에 불어난 홍수로 윗마을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다. 초가지붕이 떠내려가고, 온갖 살림살이가 떠내려간다. 세간 하나 없는 태식에게는 모두 아쉬운 것뿐이다. 더구나 이불과 요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자 태식의 눈은 번득였다. 또 돼지우리가 떠내려왔다.

 태식은 미친 듯이 흙탕물 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물 한가운데까지 헤엄쳐서 돼지우리를 기슭으로 긁어냈으나, 다시 밀려온 물결에 우리는 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당황하여 돼지우리를 붙잡은 태식은 세차게 흐르는 물살을 타고 우리와 함께 떠내려갔다. 한참을 그렇게 떠내려가다 보니, 몸이 떨려오고 겁이 났다.

뗏목을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조를 요청했으나 모르는 체했다. 태식은 안간힘을 다해 뗏목 쪽으로 헤엄쳐 가 간신히 살아났다. 옷이 찢겨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뗏목이 기슭에 가까워졌을 때, 태식은 다시 물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기슭에 걸려 있는 돼지우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태식은 우리를 묶은 철사를 풀어 나무토막을 동여매고 집을 행해 끌고 갔다.

 집에 도착한 태식은 방바닥에 쓰러진 채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쓰러져 버렸다. 그것을 본 새댁은 당황했다. 새댁은 부끄러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남편을 살려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몸 외에는 남편을 위한 다른 아무 수단이 없는 그녀는 자기 몸을 남편의 언 살에 밀착시키고, 온몸을 쓸었다. 이윽고 남편의 몸이 더워지더니 이번에는 불덩이처럼 끓었다. 날이 샐 무렵에야 열이 내렸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면서도 <신화의 단애>와는 대조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이 『장마』이다. 단편소설『장마』의 분위기는 인간의 능력과 <신화의 단애>와는 대조적으로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실감시켜 준다. 그러면서도 그 큰 위력 앞에 맞서려는 인간의 의지, 이것은 곧 단편소설 <신화(神話)의 단애(斷崖)>의 주인공 ‘진영’이 내던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

 분명히 『장마』에는 가치를 창조해 가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 비정의 자연과 대결하여 탁류 속을 돼지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몇 시간씩 떠밀려 다녀야 하는 ‘태식’, 그리고 마침내는 그것을 짊어지고 ‘태식’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냉혹한 자연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작도 이불도 없는 산막에서 태식은 한기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그래서 어제 갓 시집온 ‘새댁’은 자기의 체온으로 남편의 식어가는 체온을 덥혀준다.

 그들이 이 냉혹한 자연 가운데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치를 창조하려는 의지와 인간에 대한 신뢰뿐이다. 특히 이 작품『장마』에서의 비는 단순한 배경에 끝나지 않고 ‘태식’의 가난을 실감시키는 데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또 인간의 의지를 실험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 위력이 크면 클수록 인간의 굽히지 않는 의지는 돋보일 수밖에 없다. 정감을 배제해 버린 냉철한 문체가 이 주제를 살리기에는 더욱더 효과적이다.

 

 

 (전략) 그들은 엊저녁에 첫날밤을 지낸 사이였다. 아침도 함께 먹었으나 새댁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남편을 정면으로 본 일이 없다. 그녀는 부끄러워서 남편을 볼 수가 없었다. 태식도 부끄러워서인지 통 말이 없다. 밥 먹을 때 그는 제 밥을 듬뿍 숟갈로 퍼서 두 번 새댁의 밥그릇에 보태어주었다. 두 술을 주어야만 정든다는 말을 생각하고 새댁은 뺨이 화끈 달았다. - 본문에서

  남편 태식이와 새댁이 첫날밤을 보낸 후의 정경을 묘사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핵심인 마지막 장면이 특히 박진감 있게 그려져 있다. 홍수로 떠내려가는 돼지우리를 건져내려고 아슬아슬한 고비를 겪으며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우리를 끌고 와서는 그만 탈진해 쓰러졌다가 아내의 극진한 간호로 회생한다는 치밀한 묘사와 완벽에 가까운 구성에는 단편소설이 갖는 묘미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