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단편소설 『제3 인간형(第三人間型)』
안수길(安壽吉. 1911∼1977)의 단편소설로 1953년 [자유세계]에 발표되었다. 6ㆍ25와 피난 생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세 사람의 삶의 방식이 조명된다. 결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하는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검정 넥타이'로 개제(改題), 일본어로 번역되어 [친화] 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작가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대처해 가는 세 인물상과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모해 가는 인간형을 통해 삶의 문제를 성찰하려 했다.
지식인의 고민 상황을 다룬 이 소설은 1954년 [을유문화사]에서 같은 표제로 단행본이 발행되었다. 6ㆍ25 전쟁을 겪는 지식인의 고민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린 문제작이다. 한때 작가였다가 6ㆍ25 사변 후 상인으로 전락한 ‘조운’, 그를 따르는 ‘미이’라는 문학소녀, 작가이면서 교원인 ‘석’의 변화하는 인간형을 그린 소설로, 지식인을 제3 인간형으로 표현했다. 크건 작건 역사적 현실 속에서 확고한 사명감으로 인생의 방향을 잡고 살아가는 두 인물과 이도 저도 아닌 한 인물 등 세 가지 인간형을 대조, 부각한 작품으로 발표되자마자 문단의 큰 평판을 받았고 작가는 이 작품으로 [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때 작가였다가 6ㆍ25 동란 후 피난지 부산에서 교원 노릇을 하는 '석'은 같은 작가였다가 동란 중 여러 가지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던 친구 '조운'을 만난다. '석'은 친구의 차를 타고 가면서 그의 동란 중 소문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친구가 숨어서 이룩한 대작에 대한 평을 받으려고 불쑥 나타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두 사람은 술을 시킨다. '석'은 친구가 권하는 술에 금방 취한다. 석'은 차 안에서 궁금했던 말을 꺼냈으나, 친구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종이 꾸러미를 내어놓는다. 거기에는 검정 넥타이와 '조운 선생'이 라고 쓰인 봉투가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선생님(조운)의 호의는 고맙지만, 자신의 길은 이미 작정되어 간호 장교에 지원했음을 알리는, '미이'란 여성의 것이었다. '조운'은 '미이'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미이'는 문학소녀였으며, 가정이 부유했고, 명랑한 성격으로 조운을 무척 따랐다. 동란 이후 집안이 크게 기울어지고, 성격도 많이 변했다. 조운은 그녀에게 다방을 차려 주어 도우려 했으나, '미이'는 며칠의 여유를 구하더니 새로운 사명을 찾아 간호 장교를 지원했다. 말을 마치며 '조운'은, '미이'가 전쟁을 겪으며 제 갈 길을 바르게 찾은 데 반하여 자신은 깊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석'은 '조운'에게 가졌던 호기심과 기대감 대신 강렬한 '미이'의 인상을 떠올린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고,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놓음으로써 역사의 물줄기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제삼인간형은 6ㆍ25전쟁을 통해 변모해 가는 세 사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동시에 전쟁을 겪어 나가는 지식인의 좌절과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안수길의 기념비적 소설로, 초기의 이민(移民) 생활을 다룬 만주 체험 소설에서 벗어나 있다. 「제3 인간형」이전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의 만주 체험을 빼놓을 수 없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만주 체험과 무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작품 활동의 중단에서 오는 작가적인 의식이다. 그는 이 작품이 있기까지 3년 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그가 만주 콤플렉스에서 헤어났다는 것은, 또 다른 작가로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내용에서도 보듯이 작가의 한계가 무엇인지 그는 잘 알고 있다. ‘조운’과 같은 작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운을 비판할 수 있었고, 미이와 같은 양심을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이라는 인물이 설정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문학사적인 가치 외에, 안수길 자신의 문학적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안수길 자신은 “사변을 통한 지식인의 세 개의 형을 그려 보았다. 세 번째의 인물은 작가가 모델로 되었으나, 그것은 개인적인 ‘나’가 아니라 전형으로서의 ‘나’라는 점을 말하려고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
이 작품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첫째, 작가 '조운'이다. 그는 '독특한 철학적인 명제를 난삽한 문체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개성이 뚜렷하다. 더욱이 자신에 충실하고 문학에 대한 결백성을 굳게 지켜 존경받는다. 세속적인 것에 초연하고 세상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동료들뿐 아니라 문학소녀들 사이에도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6ㆍ25가 일어나자 '조운'은 문학을 버리고 사업에 손을 대 돈을 번다. 몸이 불어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깊이 생각하는 일도 없어졌고, 술과 여자 속에 살아간다. 6ㆍ25 이전에 반세속적이었던 그가 철저하게 세속적인 인물로 변신한 것이다.
둘째, 문학소녀 '미이'이다. 회사 중역의 외동딸로 입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부박(浮薄)한 일면이 있는 아가씨였다. 문학을 하겠다고 '조운'을 따라다니는 '미이'는 6ㆍ25가 일어나 집안이 몰락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밑바닥 생활하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하고, 인간의 소명(召命)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조운'의 경제적인 도움을 거절하고 간호 장교 시험을 치른다.
셋째, 작가요 교사인 '석'이다. 그는 6ㆍ25 이전에는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작품을 써 왔다. 6ㆍ25가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는 '생활을 위하여' 교사로 취직하지만, 교사로도 충실하지 못하고 작가로서도 그렇지 못하여 늘 번민 속에 있다. 그래서 그는 "조운의 말대로 조운은 동란의 압력으로 그의 사명을 포기하였고, 동란을 통하여 '미이'는 용감하게 시대적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나는……사명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것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말라 가는……나도 동란이 빚어낸 한 타입이라고 할까?"라는 자책감에 빠진다.
이 세 사람은 각기 전쟁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미이’의 모습을 그 시대의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본 듯하다. 고민만 할 뿐 실천이 없는 나약한 지식인 ‘석’과 현실적인 평안을 구하는 ‘조운’은 그 시대가 낳은 병리적인 인간상이다. 이러한 인간상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미이’라는 인간상이다. 제3인간형은 세 종류의 인간을 뜻한다기보다는 부조리한 인간상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소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이 어떻게 변모되는가를 살핀 것으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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