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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한말숙 단편소설 『신화(神話)의 단애(斷崖)』

by 언덕에서 2024. 6. 26.

 

 

한말숙 단편소설 『신화(神話)의 단애(斷崖)』

 

 

한말숙(韓末淑. 1931∼ )의 단편소설로 1956년 6월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 작가의 문단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며, 1950년대 말에 일었던 실존주의 문학 논쟁의 주요 대상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사랑도 윤리도 거부한 채 순간의 의미만을 찾아 방황하며 살아가는 이러한 인물이 전후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화의 단애』는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결국 한국전쟁 직후에 나타난 물질적‧정신적 황폐화 속에서 삶의 목표를 상실한 채 방황하는 인간형을 나타내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유스러운 것이 삶을 지탱하는 방편이라고 합리화하는 전후세대의 가치관을 고발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난한 미술학도인 ‘진영’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가치관을 따르고 있고 파격적인 생활을 하는 신세대 여성이다. 즉 한국전쟁 전까지 이어 온 사회의 기존 윤리관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여성이다. 미대생 진영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까마귀 같은 존재다. 댄스홀에서 춤을 추고 몸을 팔기도 하면서 ‘열흘 일한 돈으로 반년을 사는 여자다. 밀린 밥값 때문에 가진 것을 모두 저당 잡히고 하숙집에서 쫓겨난 진영은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댄스홀 앞을 서성거린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또렷이 살아있는 자신을 의식한다.

 겨우 한 젊은이와 홀에 들어선 진영. 알고 보니 군대 기피자를 찾는 형사다. 술에 취해 거친 수염을 비벼대는 그가 귀찮아 댄스홀의 아무 뒤통수나 가리키며 ‘저기 기피자 하나 있네.’ 한다. 형사는 술김에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화장실로 사라진다. 그 사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남자, 자신이 아무렇게나 가리켰던 뒤통수의 주인공이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청년은 춤도 잘 춘다. 진영의 허리선에 반했다며 일주일 같이 살 것을 제안하고 거금 30만 원을 제안한다. 당장 여관에 묵을 2천 원도 없었던 진영은 그저 기가 차서 웃을 뿐이다.

 청년과 내일 만날 약속하고 댄스홀을 나선 진영은 배가 고프다. 통금 예비사이렌이 울린 밤거리에 먹을 게 있을 턱이 없다 마침 파하는 군고구마 장수를 발견, 남은 6개의 군고구마로 허기를 채운다. 애인 경일의 집에 찾아간 진영은 전날 준섭이 다녀갔음을 전해 듣는다. 그 전날 하숙집에서 쫓겨난 진영이 경일 집보다 가깝고, 경찰서에는 가기 싫어서 자신을 흠모하는 준섭의 방으로 신세를 지러 갔던 것이다. 진영을 흠모하면서도 숫기 없는 준섭은 경일의 오해를 사기 싫어 그날 밤 경일 집에 가서 잠을 자며 모두 일러바친 것이다. 경일의 주먹을 등에 맞으며 진영은 아픔보다 따뜻함을 느낀다.

 다음날 다방에서 만난 댄스홀의 청년은 묵직한 현금다발을 내민다. 30만 원. 그들이 고급호텔에서 일주일치의 방값을 계산하고 방으로 오를 때, 누군가 그를 찾는다. 어젯밤의 그 형사와 동료들이다. 하필 그는 진짜 기피자였다. 형사에게 끌려가는 청년에게 진영은 돈을 돌려주지만 남자는 받지 않는다.

 “나는 십 년을 살 돈이 있어도 당장 오늘을 살아야 해.”

라며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어, 곧 돌아올게’라는 말과 함께 청년은 호텔 밖으로 사라진다.

 30만 원은 아무리 써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진영은 밀린 하숙비를 갚으러 간다. 하숙집 주인 여자의 가난이 주는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5만 원을 더 얹어준다. 여자는 고맙다고 울음을 터뜨린다. 30만 원에 몸을 팔아도 전혀 고맙거나 부끄럽지 않았던 진영이다. 화구(畵具)와 위스키를 사서 호텔로 돌아온 진영은 그곳에서 일주일을 혼자 묵기로 한다. 미대 성적은 진영이 수석이었지만, 미술 국전은 경일을 택했다. 진영은 경일과 준섭에게 편지를 쓴다. 어쩌면 그 청년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물을 보는 눈이나 문체에 있어서 냉혹한 객관성을 잃지 않는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절망적인 전후세대(戰後世代)의 한 단면을 부각해 놓았다. 다음은 작품의 첫머리이다.

 새까만 거리에는 헤드라이트의 행렬이 한결 뜸해졌다. 밴드는 다시금 왈츠로 바뀌었다. 시간은 마구 흘러간다. 진영(眞英)은 별로 초조해지지도 않는다. 애당초에 댄서로 취직한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일을 한 연후에야 겨우 월급을 탄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오늘 저녁을 먹고, 이 한 밤을 여관에서 자기 위한 돈이―그것도 단돈 이천 환이면 되지만―필요한데 한 달 후가 다 무엇이냐. -본문에서

 미술대학생이며, 댄서인 ‘진영’은 오늘 저녁을 먹고 오늘 밤을 자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하든 주저하지 않을 만큼 절박한 세대다. 그러니까 한 달 후에 월급을 타야 할 직업은 아무리 건전하다 하더라도 그는 참을 수 없다. 그에게는 이미 낡은 질서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기 마련이다.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서는 그따위 낡은 가치관에 사로잡힐 그가 아니었다. 동물적인 생의 욕구를 위해서는 책임감도 자존심도 정조도 휴지와 같았다. 사랑도 화폐가치에 의해서 평가된다. 그러니 사랑이 실감을 줄 까닭이 없다. 다만 숫자처럼 떠오르는 추상명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영’의 이러한 의식의 배후에는 허무의 심연만이 가로놓여 있다. 자기 자신마저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그 심연에는 어두운 생의 욕구만이 떠 있게 된다. 모든 가치가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 효력을 잃어버린 낡은 질서의 파괴자로서만 의미가 있다.

 이 소설은 한말숙의 문단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며, 1950년대 말에 있었던 실존주의 문학 논쟁의 주요 대상 작품이기도 하다. 「신화의 단애」는 한국전쟁 직후에 나타난 물질적·정신적 황폐화 속에서 삶의 목표를 상실한 채 방황하는 인간형을 나타내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유스러운 것이 삶을 지탱하는 방편이라고 합리화하는 전후세대의 가치관을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은 가난한 미술학도인 진영이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가치관을 가지고 파격적인 생활을 하는 신세대 여성이다. 즉 한국전쟁 전까지 이어 온 사회의 기존 윤리관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하루의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댄서로 일하며, 하룻밤의 잠을 위해 남자 친구의 하숙방을 빌리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주일간의 계약 결혼을 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단지 현재의 순간을 즐기려 하며 그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으며 오직 현재의 순간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진정하고 순결한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한 사랑을 단지 막연한 추상명사로 여길 뿐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랑도 윤리도 거부한 채 순간의 의미만을 찾아 방황하며 살아가는 이러한 인물이 전후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