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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흥남철수(興南撤收)』

by 언덕에서 2024. 6. 25.

 

김동리 단편소설 『흥남철수(興南撤收)』

 

김동리(金東里.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55년 발표되었다. 작가는 작중 주인공 및 시정과 간질을 앓는 수정이라는 두 여자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윤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의 상황을 극적으로 재현해 보려 했다. 이 작품은 흥남 철수라는 상황에 주인공과 두 여자의 멜로드라마가 혼합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김동리의 문학은 오랜 기간 동안 보여준 한국적 주제의 강렬함과 향토적 미학의 색채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다그의 문학 세계는 보통 한 작가에 대해 말할 때 거론하는 소재의 특이성과 강렬한 주제 의식작가 정신의 변모 등을 통해서 보더라도 중요한 문제들을 제시해 왔다일반적으로 그외 문학 세계는 크게 샤머니즘의 세계향토적인 토속의 미종교적 주제그외 일련의 작품 등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단편소설「흥남 철수」는 마지막 계열에 속한다.

 작가는 일제하에서 문인보국회(文人報國會) 등의 가입을 거부했고, 만주 등지로 여행했으며, 해방 후에는 민족주의적 순수문학을 옹호하기 위하여 조연현 등과 협력하여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했으며, 언론계에 몸담기도 했다. 6ㆍ25전쟁시에는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부대장 등을 맡았으며, 이때를 전후하여 <혈거부족(穴居部族)> <역마> <인간동의(人間動議)> <밀다원시대(蜜茶苑時代)> 등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철수 직후, 폭파되는  흥남항  부두를 관측하는 USS begor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계속해서 북진을 하던 유엔군은 중공군의 대거 침입으로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철의 일행 세 사람은 북으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일단 흥남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사회단체연합회」에서 파견되어 수복 지구의 동포들에 대한 계몽, 선전, 그리고 위안을 주는 임무를 맡았었다.

 그래서 흥남에서 정훈 책임을 맡고 있는 강 대위의 부탁으로 흥남 사람들에게 신뢰감과 희망을 가지도록 ‘위안의 밤’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 ‘위안의 밤’이 시작되던 날에 정인수라는 사람의 소개로 알게 된 윤시정이라는 소녀의 ‘봉선화’ 독창은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

 이를 계기로 일행 셋은 시정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거기에는 윤 노인과 시정의 언니 수정, 그리고 시정, 이 세 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언니 수정이는 병을 앓고 있어 방문 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술에 만취한 철은 새벽녘에 수정을 안고 자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밤중에 일곱 사람의 손님이 와서 그들은 주인 식구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수정을 본 철은 그녀가 앓는 병이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게 된다.

 십이월 초이튿날, 흥남으로 돌아온 철과 그 일행은 동북 전선의 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강 대위에게 그들 세 사람이 서울로 갈 수 있도록 일단 원산까지 차편을 부탁한 뒤, 다시 윤 노인 집으로 돌아왔다.

 철은 취중에 했던 ‘시정이를 서울로 데려가겠다’던 말에는 상관없이 정훈대에서 차편을 기다렸다. 사흘이 지난 후에 차가 도착하여 그들 셋은 표를 얻어 타려 했으나, 정인수가 남게 되었다.

 철은 정인수 뒤에 서 있는 그 어머니, 부인, 딸을 보며 자기 표를 양보하고 억지로 타려 했으나, 결국 놓치고 다시 윤 노인 집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철을 따라 서울로 가려던 시정을 다시 만나게 되고, 철은 그들을 위로하며 피난을 갈 수 있으리라 확언한다. 그러던 중 수정이의 병이 발작 증세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열흘이 지나서 함흥과 흥남은 동북 전선의 후퇴에 있어서 결정적인 지점이 되었다. 11일에서 14일 사이에 흥남은 자유 전선의 ‘교두보’가 되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피난이 시작되고, 철은 강 대위의 도움으로 시정이와 수정이를 군인 가족으로 등록시켜 20일 엘 에스 티(LST) 수송선에 오르게 되었다. 그 동안 연락이 없던 윤 노인은 일반에다 추가 등록을 시켰으나, 그냥 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부둣가로 걸어가던 중, 수정이가 발작을 일으키게 되자, 철은 그녀를 부축해 가고, 이어 윤 노인이 쌀자루와 옷보퉁이를 들고 갔다. 힘들게 걸어가던 윤 노인은 그대로 바다에 몸을 떨어뜨렸고, 그것을 본 시정이는 아버지를 부르며 부두로 달려가는 동안 배는 출발하게 된다.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김동리는 8ㆍ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金東錫)ㆍ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 <민족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ㆍ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 경향은 광복 전에는 한국적ㆍ토속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신비적ㆍ허무적 색채를 띠었으나, 광복 후 후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성 옹호와 생의 근원적 회의를 곁들여 사상적 깊이를 더했다. 문학의 순수성, 예술성을 주장해 오고, 민족문학 정립에 기여함. 그의 문학은 종교와 결부되어 있고, 인간의 운명과 구원의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루고 그러면서 작품의 예술성을 추구한 것이 특색이다.

 

 

 김동리의 문학은 ‘허무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는 허무를 온 인류가 짊어지고 있는 공통된 운명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허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니힐리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의 허무는 ‘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렬한 인생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허무가 인류의 운명이라면 이것을 타개하는 것이 인류의 과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종하기도 하며 도전ㆍ반항하기도 한다. 김동리의 문학이 종교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은 허무를 해결하는 노력의 표현이며, 지금까지 허무를 해결하는 가장 큰 몫을 종교가 해왔기 때문이다.

 단편소설「흥남 철수」에서 김동리는 박철이라는 주인공과 윤시정 그리고 간질을 앓는 윤수정이라는 두 자매와 그들의 아버지 윤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의 상황을 극적으로 재현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흥남 철수라는 커다란 역사적 현장을 리얼하게 재현해 냈다는 데는 의의가 있지만, 문학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김동리의 다른 작품에 비해 뒤떨어지는 감이 있다. 그것은 두 자매의 이야기와 흥남 철수 상황이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마치 흥남 철수라는 상황에 주인공과 두 여자의 멜로드라마가 혼합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