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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선우휘 단편소설 『단독 강화』

by 언덕에서 2024. 6. 21.

 

선우휘 단편소설 『단독 강화』

 

 

선우휘(鮮于輝. 1922~1986)의 단편소설로 1959년 [신태양]에 발표되었다. 한국전쟁 와중에서 낙오된 인민군과 국군의 하룻밤 사이 동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선우휘의 작품 활동은 앙드레 말로의 행동주의적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관조의 세계’보다는 ‘행동의 세계’를 선택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평온한 현실과 무위에 가까운 선량한 서민성’이 아니라, ‘현실을 남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의 절실한 문제로 보고, 힘을 다하여 부딪쳐 가는 성실과 정열’이라 말해야 할 듯하다.

 따라서, 그가 즐겨 묘사하는 부분은 역사의 급격한 변동기에 그것과 과감하게 부딪친 행동은 대부분 우익적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러한 행동인은 ‘좌익의 도식적 이론과 그 이름 뒤에 숨어있는 허위의 삶을 투철히 인식한 지식인’이다. 그가 좌파를 혐오하는 이유는 ‘인간다운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그 도식적인 이론과 보안경찰로 대표되는 그 굳어진 기구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한국전쟁 중이다. 산을 헤매다가 두 병사가 서로 맞닥뜨리게 된다. 한 명은 국군 병사 양 씨, 또 한 명은 인민군 병사 장 씨다. 둘은 미군 수송기에서 떨어트린 시레이션을 보게 되고 동시에 달려들게 된다.

 이 와중에서 양 씨는 장 씨가 "동무"라 하는 것을 보고 인민군임을 알아채고 양 씨는 장 씨에게 총을 들이댄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잠을 자게 되었고 나중에 각자의 진지로 다시 돌아가기로 약속한다.

 그 후에 그 둘은 C레이션을 나눠 들고 인사는 하지 않은 채 헤어지자 말자 갑자기 중공군 무리가 나타났다. 양 씨는 중공군에게 총을 들이댔고 장 씨는 이것을 보고는 뛰어든다. 얽힌 두 몸에서 뿜어 나오는 피는 서로 섞이면서 희디흰 눈 속으로 배어들어 갔다. 한참 후 중공군 다섯 병은 옷에 묻은 눈가루를 털면서 천천히 동굴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작가 선우휘가 살아있을 때 그의 명성은 부침이 심했다. 그가 <불꽃>을 처음 발표했을 때 그의 명성은 정말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불꽃> 이후의 그의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강렬한 리얼리즘에 목마른 자들은 그의 글에 역사성이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더욱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와서 일부 사람들은 그를 진보주의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보수주의자로 낙인을 찍기까지 했다.

 그러나 선우휘는 처음부터 혁명가도 아니었고 이념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작가였고 휴머니스트였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가면을 쓴 변신주의자라고 말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 결코 역사의 도구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까지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우리가 처해 있는 불완전한 역사적 상황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졌다.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정말 완전무결하고 객관적이었던가. 혹시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보다는 역사와 상황적인 인식을 지나치게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생각하면, 그의 문학은 실향민의 문학과도 같은 것이었다.

 '단독강화'의 사전적 의미는 한 국가가 그 동맹에서 이탈하여 교전상태에 있던 적대국과 단독으로 맺는 강화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여러 국가가 동맹하여 공동의 적과 전쟁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단독 휴전이나 강화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는데, 이를 어기고 한 국가가 적대국과 단독으로 맺는 강화를 말한다. 이는 전면강화 및 다수강화에 대응하는 말이다. 역으로 적국이 다수 상대국 중 한 국가와만 단독으로 맺는 강화도 단독강화이다. 널리 알려진 예로, 제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독일과 러시아 간에 맺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이 있다.

 선우휘 작가의 회고록에 따르면, 실제로 중국군이 제압한 어느 동굴에서 인민군과 국군 시체가 발견되었고 인민군을 사살했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이 중국군 당국에 항의했다는 기록을 보고 떠올렸다고 알려져 실화를 바탕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작가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했던 단편소설「단독 강화」를 통해서 그의 사상적 기저를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월남한 그로서는 공산주의와의 싸움의 기록이며, 동시에 인간다움의 북돋움이다. 행동적이라기보다는 휴머니즘의 반경 안에서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 점에서 국방군과 인민군, 우연한 두 동반자의 동시 죽음으로 작품을 귀결시키는 이 작품은 매우 행동적이다. 다만 소품이기 때문에 극적인 드라마의 성격을 갖추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비극적이긴 하되 동포애의 주체로서 인민군 병사가 너무 어린 나이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 무슨 이데올로기적인 논리가 침입할 틈이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족상잔의 분단 비극을 어두운 동굴의 무대 배경하에서 그리고 있다는 점과 본능적 인간의 행동적 모습이 가차 없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 등은 작품성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이 「단독 강화」가 발표되기 이전까지는 우리의 전후 문학사에는 전장의 휴머니티를 다룬 작품으로 이만한 작품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