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원 단편소설 『모반(謀反)』
오상원(吳尙源. 1930∼1985)의 단편소설로 1957년 [문학예술] 지에 발표되었다. 1958년 제 3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해방 후 혼란한 사회 현실 상황 속에서 ‘민’이라는 한 테러리스트의 전향을 다루고 있다. 즉, 해방 직후의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여, 애국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갖가지 조직적 폭력 속에서 한 테러리스트가 겪는 인간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정치로부터의 이탈이 인간의 회복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이 소설에서 정치와 인간은 적극적 대립 항이다.
오상원의 작품세계는 <유예> <백지의 기록> [모반]을 비롯한 그의 작품 곳곳에서 인간의 실존적 존재 의미를 탐구하는 치열한 작가 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이러한 작가 의식은, 인간 존재에 관한 본질적 탐구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실존적 의미를 기저에 깔고 있음을 뜻한다. 그는 전쟁 이후의 소설 문단을 대표하는 전후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실존적 행동을 생생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는 데서, 한 세대의 대변자로 평가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민'은 중학을 마치고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가 중학교 동창인 '세모진 얼굴'에 여러 번 자극 받아 비밀 결사에 가담한다. 그러나 막상 상대편을 암살하기로 한 날, 병석에 누워 있던 노모는 위독한 상태에 빠진다. 그렇지만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동료의 강압에 못 이겨 '민'은 암살 현장에 나서고, 노모는 동료의 손을 아들의 손이라 믿고 잡은 채 운명한다.
'민'은 차츰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민'이 두 번째로 암살해야 할 사람은 X였다. 장소는 으슥한 골목길, 시간은 하오 4시. 민이 X를 쏘고 달아나면 부근에서 서성거리던 동료들이 지나가던 청년 하나를 때려눕혀 실신시키고 범행 누명을 씌우게끔 계획이 짜였다. '민'은 거사를 강행하였다. 일은 각본대로 진행되었다. 호외를 보고 아연실색하는 시민들, 누명을 쓰고 구속된 청년, 결사 대원들은 구석진 방에서 축배를 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감쪽같이 피신한 '민'은 가책을 느낀다. 자기 대신 누명을 쓴 청년의 집을 찾아가 그의 여동생에게 병으로 위독하다는 그녀 어머니의 약값을 준다. '민' 은 자기의 행동과 조직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조국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암살을 일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어진다. 이윽고 '민'은 자기를 처형해 버리고 말겠다는 동료들의 협박을 뒤로하고 결사대를 떠난다.
정당 난립과 좌우익의 혈투가 치열했던 해방 직후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정치적 테러리스트의 휴머니티를 빈틈없는 구성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서사는 주인공 '민'이 비밀 결사에서 탈퇴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주인공 '민'이 비밀 결사를 탈퇴하는 이유가 이 소설에서 다루려고 한 중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이 비밀 결사에 들어가는 동기는 '세모진 얼굴에 여러 번 자극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비애국자를 사전에 제거해 버린다는 비밀 결사의 목적에 동의한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탈퇴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 비밀 결사의 목적에 의심하게 되어서다. 즉, 그가 하는 행위는 '하나의 의의가 있지만 하나의 의의를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의는 그 결사의 목적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양심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과 자기 대신 체포된 청년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우연한 사정으로 그럴 수 있고, 또 청년의 가족에 대찬 죄책감의 경우 결사의 목적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마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진짜 이유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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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이유는 그러한 개인적인 문제들에 전혀 무관심한 조직의 비정한 생리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민'은 비정한 조직 세계에 대하여 '모반'한 것이다. 여기에서 개인과 조직의 관계는 단절된 관계로 나타난다. 개인은 조직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만 있고, 조직은 그 조직의 목적에만 관심이 있다. 개인은 조직 내지는 정치에 휘둘릴 뿐이고, 그것은 개인에게 비인간적 삶을 강요한다.
결국, 이 작품은 해방기 정치 세력 간의 갈등보다는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길을 걷는 한 개인의 선택에 중심을 두고 있다. 드디어 '민'은 비윤리적, 비인간적 테러 행위의 실체를 깨닫고 인간성을 회복한다.
정당 난립과 좌우익의 혈투가 치열했던 해방 직후의 혼란기를 포착하여, 정치적 테러리스트의 심중(心中)에 사는 휴머니티를 빈틈없는 구성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의 작품의 중심 내용은, 역사적 상처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굳센 의지와 인간애를 다루고 있으며, 행동적 휴머니즘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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