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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광수 장편소설 『개척자(開拓者)』

by 언덕에서 2024. 6. 19.

 

이광수 장편소설 『개척자(開拓者)』

 

이광수(李光洙. 1892∼1950)의 장편소설로 1917년 10월 10일부터 1918년 3월 15일까지 [매일신보]에 76회에 걸쳐 발표되었다.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무정>과 <재생>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봉건적인 인습의 타파와 자유 연애관, 민족을 위한 청년의 사명 등을 강조한 그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장편소설 <무정>에 강조된 과학입국을 위해 가재를 바쳐 헌신하는 김성재의 조선주의와 그를 도우면서 화가이며 기혼자 민을 사랑하는 성순의 자유연애 사상, 부를 빙자로 성순을 원하는 함사과(咸司果), 그를 돕는 이일우 변호사의 순응주의가 얽혀 성순이 순애와 구도덕 타파의 절규를 남기고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발표된 그 당대에서는 드물었던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실험과 발명에 몰두하는 젊은 과학도의 험난한 고투의 과정을 그리려는 의욕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의 이와 같은 의도는 작품의 전반에만 짙게 나타나 있을 뿐, 후반에서는 애정 문제가 주조를 이루었다. 그것도 기혼 남자와 미혼 처녀의 사랑에 얽힌 복잡한 사연으로, 작품의 주류가 바뀜에 따라 작품의 주제 및 구성에 통일성의 결여를 가져왔다.

 이 작품은 과학자로서의 개척자도, 그리고 기성 윤리의 타성을 깨뜨리려던 자유 애정 실천의 선구자도 모두 좌절되고 마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개척자』는 이 시기의 시대상의 단면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25년 이경손에 의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학자 김성재는 7년 동안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가산을 담보로 잡히고 얻은 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 함사과(咸司果)에게 가산을 모두 압류당한다. 이에 성재는 대대로 교분이 있는 함사과와 그의 법률대리인 이 변호사에게 눈물로 호소하지만 외면당하고 인격적인 모욕까지 당한다.

 끝내 저당 잡힌 재산은 다른 이에게 팔리고 가정은 파산지경에 이른다. 이에 따라 성재의 아버지 김참서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내는 실의에 빠진 남편을 버리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오빠를 하늘처럼 존경하는 여동생 성순은 오빠의 성공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한다. 그런데 파산해 노동자로 전락한 성재는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여동생 성순을 부자인 변이라는 청년과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성순은 집안의 일방적인 요구로 약혼한 변이라는 청년을 거부한다.

 성순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화가 민은식을 사랑하게 되어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봉건적인 사회 인습은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이다. 성순은 오빠가 변 씨에게 자신의 결혼을 허락하자, 황산을 마시고 민은식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영화 [개척자], 1925년

 이 소설은 계몽성을 띤 일종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 소설로서 봉건사상과 자유 연애관이 대립하던 근대화 시기를 배경으로, 봉건적 인습의 타파와 신사상의 고취를 주제로 다루었다.

 과학입국을 지향하는 동경 고등공업학교 출신 젊은 과학도 김성재와 자유연애에 의한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여동생 김성순, 자연을 사랑하는 화가 민은식 등, 당시 사회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가부장적인 봉건사회의 폐습을 타파해가는 모습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이광수의 문학 활동기를 4단계로 나눠볼 때 인도주의적 계몽사상기인 제1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근대적 형태의 계몽소설인 <무정> <선도자> 등과 함께 개성에 눈을 뜬 주인공들이 개화와 계몽을 외치며 유교적 전통과 인습에 저항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대중적인 성향과 더불어 계몽주의적·이상주의적 경향의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의 소설은 개화기 소설의 형태를 완벽히 탈피하지는 못했지만, 일상어를 사용한 산문 문장과 소설구조의 확립, 장편소설의 가능성 등을 보여 준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개척자」는 과학에 의한 입국(立國)을 지향하려는 김성재와 오빠를 도우면서 사랑의 잉태로 자유연애에 의한 삶의 성취를 지향하는 김성순의 인습과 세속으로 뒤얽힌 현실을 초극하려는 삶의 현실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광수는 그 현실을 전지적 시점으로 분석하여 제시하며, 감화적 체험보다는 인식에 의한 작중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 서두의 김성재 실험에 관한 서술에서부터 설화자의 개입은 시작되어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심리 등을 신(神)과 같은 전능의 시각에서 진행해 나간다.

 여기에서 설화자의 개입은 직접 인물을 논평하거나 사상이나 사실을 설교하는 진술을 하게 된다. 결국 7년간의 실험은 실패하고 재산가 함사과(咸司果)에게 저당된 재산이 방매되고, 이로 인하여 아버지 김참서는 죽는다. 성순은 오빠의 성공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데 실험을 계속하려는 오빠가 부자인 변 씨에게 허혼하자 사랑하는 민은식 선생의 품에 안겨 죽는다. 「개척자」는 과학발흥에 대한 집념, 조선주의의 신장, 자유연애 사상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 <개척자>

 

 이광수(李光洙) 원작, 이경손(李慶孫) 감독의 영화. [고려키네마사] 제1회 작, 7권. 1925년 7월 10일 단성사에서 개봉된 무성영화시대 영화작품이다. 니시가와(西川秀洋) 촬영, 김정숙ㆍ주인규(朱寅奎)ㆍ남궁운(南宮雲)ㆍ윤봉춘(尹逢春)이 출연하였다.

 원작은 이광수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동일제목의 「개척자」로 근대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학자인 주인공 김성재를 통해서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를 개척한다는 내용이다. 그 주제는 민족사상을 교화하고 따라서 민주주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것으로서 봉건시대를 탈출한 젊은이들이 애정의 자율성까지 선언한다는 내용의 차원 있는 주제극이다. 특히 퇴폐적이고 유치한 통속소설만을 피상적으로 적당히 윤색하여 연극으로, 혹은 영화로 흥행에만 치중하고 있던 당시의 편협한 세풍과는 달리 문예 소설을 선택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어제의 낡은 시대는 가고 이제 오늘의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오늘의 시대는 현재를 살아가는 정신이 중시된다.”라고 주장한 감독 이경손은 새로운 민족 개척의 정신을 이 작품 가운데서 실현해보려고 애썼다.

이러한 그의 작가정신이 이광수의 문학과 그 접촉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 초기영화사상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의 영화 수준으로서 이러한 문예 작품을 기획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으며,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좌절되었다.

 만약, 이 작품이 성공하였더라면 아마 오늘날 한국 영화는 상당히 발전되었을 것이라고 후세들은 말하고 있다. 그 뒤 얼마 동안 수준 있는 문학작품과의 접촉은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