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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양귀자 단편소설 『한계령』

by 언덕에서 2024. 6. 17.

 

 

양귀자 단편소설 『한계령』

 

양귀자(梁貴子, 1955~ )의 단편소설로 1987년 발표된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수록되어 있다. 단편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의 마지막 작품인 「한계령」은 25년 만에 연락 온 은자와 소설가인 '나'와의 통화로 시작된다. 은자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그 시절 속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그에 반해 '나'는 추억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볼 수 있는 표지판으로 그 시절을 남겨두고 있다. 동생들의 큰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그들을 위해 늘 최선을 다했던 큰 오빠, 그리고 그런 큰 오빠의 신화 속에서 자라나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동생들. 과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모습은 제각각이겠지만, 모두가 잊어버릴 수 없는 과거의 물줄기 앞에서 그들은 각자만의 의미를 두며 새로운 물줄기를 뻗어나가게 된다. 작품은 은자의 '한계령'을 들은 '나'가 그 노래를 꿈속에서 만나며 다시금 인생을 되짚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사흘 뒤 걸려온 은자의 퉁명 어린 연락과 나의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단편소설 「한계령」은 70년대 도시 인구로 유입된 시골 사람들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떤 형태로 유랑하고 있는가를 다룬 작품으로서, 고도화된 현실에 대해 부정적 가치관을 지닌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삶에 적응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 지난 기억의 아름다움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작가 특유의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로 독자에게 신선감을 주는 이 작품은 물질 만능화된 현대 사회에서 주변 인물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따뜻한 눈으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걸려온 옛 친구의 전화 때문에 '그녀'는 고향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전화의 주인공인 박미화는 전주에서 철길 옆 동네 친구다. 미화의 집은 찐만두 가게를 했는데,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무척 좋아했던 친구였다. 그 미화가 결국 지금은 밤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천에서 멀지 않은 밤무대니까, 9시쯤 되어 놀러 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지 못하고 고향 생각에 잠긴다. 큰오빠가 세 명의 오빠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그녀'를 먹여 살렸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아버님 추도 예배에 소홀히 하는 동생들을 섭섭해하기도 했다.

 그 후, 두세 번 걸려오는 미화의 전화에서는 미화가 넘어지고 또 넘어져 지금의 밤무대 가수 미스 박이 되었다고 한다. 이젠 제법 돈을 모아 신사동에 카페를 하나 개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미스 박을 찾아간다. 그러나 어디서 들은 듯한 노래에 흠뻑 취해 있다가 그냥 돌아오고 만다. 집에 와서야 그 노래가 '한계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가수가 바로 미스 박이란 것을 확신한다.

 

 

 이 작품은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1982년 부천 원미동으로 이사하여 겪게 된 일들과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묶어 <원미동 사람들>을 냈는데, 이 창작집은 1980년대의 한국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변두리 소시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그에 바탕을 둔 꼼꼼한 묘사로 1988년에는 제5회 [류주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중 '나'와 형제들은 든든한 장남의 울타리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큰오빠는 몇 해 전의 대수술로 건강이 악화된 노쇠한 남자일 뿐이다. 큰오빠의 변해버린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 더 이상 위로를 받을 수도 없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이러한 ‘나’의 불안감은 ‘은자’의 가게를 찾아가 여가수가 부르는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평범하지만 힘겹게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연민으로 변모한다.
「한계령」은 큰오빠와 은자를 비롯한 당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단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한계령’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세상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위로의 시선을 상징하는 노래이다.

 

 

 단편소설「한계령」은 연작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작품으로, 서술자 '나'가 옛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어릴 적 단짝 동무였던 은자, 그리고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큰오빠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정신적 여유를 잃어 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아울러 '나'는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나고 싶은 욕구와 그 만남으로 인해 소중한 추억이 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작가는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로 교차되는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큰오빠와 은자를 통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힘들고 고단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대중가요 '한계령'과 절묘하게 어울려 감동 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