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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현진건 단편소설 『빈처(貧妻)』

by 언덕에서 2024. 6. 14.

 

 

현진건 단편소설 『빈처(貧妻)』

 

현진건(玄鎭健,1900∼1943)의 단편소설로 1921년 [개벽(開闢)]지에 발표하였다. 현진건은 김동인과 함께 한국의 단편소설을 개척한 선구자로 꼽히며, 흔히 ‘한국의 모파상’이라 불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염상섭과 사실주의 소설의 개척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아내와의 사랑에 연결시켜 놓았다. 사회적 궁핍을 소재로 한 빈궁소설의 범주에 드는 이 작품은 지식인의 무력함과 일상적 쇄말성(瑣末性)을 섬세하고도 정치한 필치로 그려놓고 있다. 가난한 무명작가와 양순하고 어진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물질적인 가치를 따지는 경쟁적인 인물들과의 대조를 통해서 가난한 지식인 부부의 정신 추구의 생활을 형상화한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로서 사실상의 데뷔작이며 사실주의 경향이 짙은 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은 정신적인 내면 가치를 지향하는 무명작가와 양순하고 헌신적인 아내의 일상생활 중의 사소한 사건을 통해 가난에 허덕이는 아내가 남편의 입신을 위해 정신적으로 내조하려 애쓰지만, 인간의 본능인 물질적 욕망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문제점으로 제기한 작품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신변 소설로 자신의 아내를 표본 삼아 쓴 글로 당대 문단의 주목을 받아 문인들과 교류하게 되고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전당포에 잡힐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처량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한성은행에 다니는 T가 찾아와 처에게 줄 양산을 샀노라고 자랑한다. 그것을 본 아내는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아내의 모습에 '나'는 불쾌한 생각이 든다. '나'는 6년 전 결혼하여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변변치 못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곱던 아내의 얼굴에는 주름이 나타나고 세간과 옷가지는 전당포에 잡혀 있었다.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밖에 모르는 '나'의 생활이었다. 처가에서 장인의 생일이라고 할멈이 데리러 왔다. 그런데 막상 입고 갈 옷이 없다. 비단옷 대신 당목옷을 입고 나서는 아내를 보고 '나'의 마음은 쓸쓸했다.

 장인 집에 모인 처형과 아내의 모습을 보니 너무 대조적이었다. 부유한 모습의 처형과 초라한 아내. 처형은 인천에서 기미(期米: 쌀 투기)를 하여 돈을 잘 버는 남편을 만나 비단옷을 입고 부유하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쓸쓸하고 괴로운 생각을 잊으려 술을 마셨다. 그때 처형의 눈 위에 시퍼런 멍이 든 게 보였다. 그날 '나'는 술을 여러 잔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처형의 멍든 눈자위 이야기를 하며, 없더라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란 아내의 말에 '나'는 흡족해한다. 처형이 사다준 신을 신어 보며 좋아하는 아내, 물질에 대한 욕구를 참고 사는 아내에게 '나'는 진정으로 고마움과 사랑을 표시한다. 이에, 아내의 눈과 '나'의 눈에 눈물이 넘쳐흐른다.

 

 특별히 극적인 어떤 사건의 전개도 없이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현실적으로는 전당포행이나 하는 정신 가치 지향의 무명작가와 그의 양순하고 가난한 아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물가의 폭등과 월급의 상승 및 주식의 이익과 같은 물질적인 가치를 따지는 경쟁적인 인물들을 그 주변에 배치시킴으로써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연중에 반영시키면서, 고등유민으로밖에 머물 수 없는 지식인의 현실 소외의 문제를 다룬, 다분히 자전적인 고백 문학이다.

 이 작품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무명작가의 아내, 즉 현진건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초라한 아내가 생계를 위해 장롱 속의 옷가지를 전당 잡히면서도 서로 위로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무명작가의 신변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20년대이고, 공간적 배경은 서울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직업이 없는 실업자라는 생활환경이 또 하나의 배경이 된다. 1920년대는 식민지적 상황이라는 역사적 조건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이다. 경제적으로는 궁핍상이 극도에 달했고, 인텔리들은 정신적 지주를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작중 화자인 나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생활 조건을 그대로 반영하는 소위 인텔리 계층이며, 아내는 그런 무능한 사람을 남편으로 둔 인물이다. 이들 두 사람은 모두 이 작품의 배경에 의해 삶의 조건이 제한된 인물들이다. 배경은 이처럼 뒤에 원경(遠景)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이 아니라, 직접 인물의 생존에 관여하고 그것을 결정하기도 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창작 능력을 문단에 인식시켜준 사실상의 데뷔작이며 정신 가치 지향의 가난한 무명작가의 고민을 자전적 서술 방식으로 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