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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윤후명 단편소설 『원숭이는 없다』

by 언덕에서 2024. 6. 20.

 

윤후명 단편소설 『원숭이는 없다』

윤후명(尹厚明. 1946~)의 단편소설로 1988년 [문예중앙]에 발표되었다. 1980년대에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의 작품세계는 1980년대의 일반적인 소설 경향과는 뚜렷이 구별되어서 직접적인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시적인 문체와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환상과 주술의 세계를 자유롭게 비상한다. 또한 1980년대의 시대적 부채감에서 자유로웠다. 특히 『원숭이는 없다』에는 직접적인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일상성을 벗어나기 위해 주변의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중편소설 <돈황의 사랑>(1982)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1983)와 단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1984) <누란>(1984) <엉겅퀴꽃>(1985) <귀>(1987) 「원숭이는 없다」(1988) 등의 작품은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와 구도를 갖는데, 무미건조하고 숨막힐 것 같은 일상생활로부터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인 고대의 풍경이나 관념적인 환상세계로 탈출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파트에 정기적인 소독날이 되어 세 남자가 공원에서 모인다. 이른바 등처가, 마누라를 등쳐먹고 산다는 의미로 변변한 수입원이 없는 남자들이다. 구성원은 연출가 김형, 배우 김형 그리고 나다.

 세 사람은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찮게 원숭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원숭이를 보러 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 원숭이를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배우 김 형은 목표가 원숭이를 보는 것이었지만, 나는 사실 보고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원숭이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의붓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원숭이를 보았고, 원숭이가 자신의 외로운 처지와 같아 보여 손을 내밀었으나 거절당했다. 그 다음부터 나는 자신이 외로워도 남에게 함부로 나타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세 사람이 원숭이를 찾아 장터로 왔으나 원숭이도 약장수도 보이질 않자 분노를 느낀다. 장터아주머니로부터 언덕너머에 원숭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원숭이를 찾아나선다. 돌산을 지나 황량한 개펄에 도착했으나 한 사내가 여기는 위험한 곳이니 돌아가라는 위협을 한다.

 그때 ‘나’와 배우 김 형은 서로가 원숭이로 변해버린 사실을 알게된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 나의 눈에 김 형이 원숭이로 보인다. 김 형 역시 내가 원숭이로 변했다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두 사람은 마술이 걸린 것처럼 원숭이로 변한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했다는 카프가의 [변신]처럼.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어떤 힘에 의해 봉쇄되고 무력하게 되었으며 진실로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일상으로 사력을 다해 발걸음을 옮긴다.

 

「원숭이는 없다」는 작품을 쉽게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곱씹어 읽다보면 원숭이의 말을 듣게 되고, 그 원숭이가 내가 아닌가 하는 해석으로 돌아보게 한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원숭이라는 이국적인 존재를 통해 일상의 권태와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이들은 결국 자신 안에 존재하는 원숭이를 발견하고, 그들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었던 일상에 그래도 살만한 그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 작품은 술에 의지해 평범하고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술에서 깨어나면 평범했던 일상이 행복한 시간이었음이 느껴지듯 지겹기만 한 나의 일상이, 어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살고 싶고 갖고 싶어했던 그 날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의미깊게 다가온다.

 

 

 작품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나’와 연출가 김 형, 배우 김 형이 있는데 줄거리와 수록된 앞 부분을 읽어보면 세 명 모두 경제력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에 가는데도 명분이 필요하고,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며 아내의 이른 퇴근을 좋아하지 않고, 정상적인 취업 상태가 아니고 당당한 공무원을 때려치고 연극을 하러 온 것은 이를 나타낸다.

 그러나 장으로 원숭이 구경을 간 ‘나’와 배우 김 형은 진짜 원숭이를 본 것이 아니라 서로를 원숭이로 보기 시작한다.이후 그렇게 무능력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현대의 도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여 ‘원숭이 찾기’를 통해 일상에서 소외된 무기력한 사람들이 자아 찾기를 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이 없는 인물들은 그 자체로 삶에 소외된 존재로 자아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원숭이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원숭이가 되어 일상으로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