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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양귀자 단편소설 『모순』

by 언덕에서 2024. 4. 26.

 

 

 

양귀자 단편소설 『모순』

 

 

 

양귀자(梁貴子. 1955∼)의 장편소설로 1998년 발표되었다. 작가는 1995년 소설 <천년의 사랑>으로 ‘귀신도 책을 읽게 만든다’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이 소설은 소설시장의 최대 독자층인 20대 여성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어,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작가는 <원미동 사람들>88년에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하고, 92년에는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단편소설 <곰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시상되는 중요한 문학상을 받으면서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그러나 그 동안 우수한 중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적지 않은 문학상을 도둑맞았다는 평도 함께 듣고 있다.

 이 작품은 쌍둥이로 태어나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엄마와 이모, 그리고 인생의 모순을 향해 달려가는 여주인공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작가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문체와 인생을 통찰하는 시선도 책을 읽는 재미를 준다. 전작인 <천년의 사랑>이 시공을 넘나드는 신비주의적 사랑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삶의 불가해한 모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설가 양귀자 ( 梁貴子 . 1955 &sim;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다섯 살의 사무직 여직원 안진진이다. 아버지가 참 '진(眞)'자를 둘씩이나 붙였지만, 성이 '안'씨여서 그 의도가 굴절되고 만다.

 그녀와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어머니와 이모는 거의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으며, 진진 자신도 안정적이고 계산적인 남자 나영규와 불안하지만, 인간적인 남자 김장우 사이에서 고민한다.

 꽃피는 3월 어느 아침, 안진진은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전 생애를 걸고라도 인생을 탐구하며 살겠다’라는 각오를 세운다.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으며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적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게 된 계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다는 어렴풋한 자각 때문이다.

 진진에게 구혼해 오는 두 남자가 있다. 야생화를 찍는 가난한 사진작가 김장우와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기차처럼 인생을 완벽한 계획표에 따라 운행하는 전문직 샐러리맨 나영규다. 장우는 특별한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그 사랑이 감옥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며, 영규는 사랑을 느끼지는 않되 편안한 상대이다. 마치 TV 코미디프로그램의 선택게임처럼 ’처음에는 비슷해 보였으나 나중에는 아주 다른 길이 되고 말‘ 두 개의 길 앞에 서 있는 진진에게는 참고로 삼을만한 흥미로운 교과서가 있다.

 결혼이라는 단 한 번의 선택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 자매이면서도 주정뱅이 남편의 매 맞는 아내와 성공한 사업가의 사모님으로 판이한 인생을 살게 된 엄마와 이모. 두 사람의 삶만큼이나 달랐던 진진 남매와 사촌 주리 남매의 인생이다.

 늘 행복의 절정에 있는 것 같던 이모가 어느 날 ‘나는 늘 지루했어.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라는 유서를 진진에게 남기고 자살한다. 진진은 이모가 단 한 번도 결핍을 경험해본 일 없이 무덤 속처럼 평온했던 자기 삶보다는 알코올 중독 남편과 가출하는 딸 툭하면 주먹질로 파출소에 끌려가는 아들 뒤치다꺼리에 늘 씽씽 바람을 내며 사는 것 같던 진진의 어머니를 부러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는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대요’라고 이모의 삶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고 말하는 진진은 말한다.

 진진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자신에게 한없는 불행이었고 모든 사람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동류의 인생인 장우 대신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종류의 삶인 영규를 택한다. 작가는 때로 위악(僞惡)을 가장하며 세심한 관찰자로서 진진과 주변의 삶을 그려낸다.

 

 

 양귀자는 설문조사 때마다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조사 대상이 여성독자들일 때는 좋아하는 순위가 1위로 선정될 때가 많다. 평소에 사람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그를 이렇듯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책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책이 많이 읽히는 작가라고 해서 독자들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양귀자가 특별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책을 읽는 동안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읽는 행위는 일방적이지만 책 속에 깊이 몰입하다 보면 마치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의 선택은 작가의 의도된 포석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천년의 사랑>에서 시공을 넘나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던 작가는 신작에서 아예 소설시장의 최대 독자층인 이십 대 여성 직장인으로 ‘시점’을 이동해 독자들에게 육박해 들어간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그러나 소설의 흡인력은 구성이나 인물형, 문체의 완성도보다는 진진의 입을 빌어 중년의 작가가 한마디씩 던지는 이런 말들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