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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유현종 장편소설 『들불』

by 언덕에서 2024. 4. 24.

 

 

유현종 장편소설 『들불』

 

유현종(劉賢鍾, 1940~)의 장편 역사소설로 [현대문학] 1972년 11월∼1974년 5월에 연재되었다. 1961년 <뜻있을 수 없는 이 돌멩이>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음으로써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처음엔 <거인> <섬진강> 등을 통해 부조리한 상황에 대결하는 초인적 의지의 세계를 추구했다. 1975년 <연개소문>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역사소설 작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여, 이후 <임꺽정> <삼별초> <천년한> <서경별곡> 등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이 작품 역시 이 계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민족사의 최대 민중운동이었던 동학농민운동을 다루었다. 조선조 말 고종 조를 배경으로,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조선 땅 농민들의 통한(痛恨)을 다룬 이야기이다.

 작가의 고향에서 마을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구전되어 온 임여삼을 주인공으로 하여 민중 스스로 겪고 자각하여 들불처럼 일어선 과정을 한국적 가락으로 담아내었다. 서구적인 발상에서 벗어난 우리 양식을 시도한 소설로, 그리고 남사당 등 서민사(庶民史)를 통해 민중 의식의 원류를 찾아 우리 것을 재발견하고자 한 소설로 평가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웃 농민이 받는 관폐(官弊)의 학정을 못 이겨, 순박한 농민이자, 씨름의 장사인 임호한은 민란을 일으키고, 현감을 죽여 재물을 나눠 준 후, 도망을 가게 된다. 그로 인해 임호한의 아들인 여삼과 딸 상녀, 아내 등 셋은 관노(官奴)가 된다.

 여삼은 신관 사또의 개돼지 취급받으며, 잘 길든 짐승처럼 아무런 저항감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명령에 순복하는 충실한 관노로 살아간다. 그 후 여삼의 어머니는 시체 방치장에서 굶어 죽고, 누이 상녀는 사또 최동진의 몸종 겸 첩이 된다.

 한편, 사또의 심부름으로 왜싸전에 비단, 금 등의 물품 구매 청구를 위해 달려간 여삼은, 그곳 주인 전풍과 일종의 교분을 트게 된다. 다시 관아로 돌아온 후 관내에는 또다시 변화를 겪는데, 여삼의 친구 곽무출이 관내로 침입하여 사또 암살을 기도하다 잡히고, 누이를 만난 임여삼은 방화를 일으킨 후 잡힌 무출을 도피시킨 죄로 태장(笞杖)을 맞는다.

 결국, 여삼은 옥을 부수고 궐기하여 관을 뛰쳐나온 후 다시 왜싸전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나락(볏섬) 나르는 일을 하다, 최동진의 돌연한 출현으로 추격전을 벌이다 강을 헤엄쳐 도주하게 된다.

 어느덧 도착한 곳은 율치 고개. 여기에서 여삼은 이진악과 김개팔, 원소공 일당을 만나게 된다. 이진악은 대원군의 밀서를 김병순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고, 원소공 무리는 동학교도가 아닌 화룡산 패였다. 이들과 친하게 된 이진악은 대원군의 동학도 옹호와 포섭의 취지를 전하기 위해 대장 전봉준을 만나고자 한다.

 이진악은 대원군의 뜻을 받들어, 그리고 화룡산 패의 요구를 위해 개화 신사 곽무출을 통해 총기 40정을 사들이게 되는데, 곽무출은 당시 야소교(예수교)를 위한 성서 매서인 겸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동학교 소탕을 위해 군산 앞 바다에 청국 군함 ‘평원 호’와 ‘청룡호’를 이끌고 경군(京軍)과 함께 정박한 홍계훈은 먼저 전주성에 입성하게 된다. 단숨에 전주로 진격하자는 동학도 부관 김계남의 강론에, 전봉준은 그들의 신식 화포에 대한 두려움과 더 많은 교도 포섭을 위해, 또 그를 통한 교도의 사기를 위해 남쪽으로 들이치게 된다.

 그로부터 한참을 홍계훈의 경군과 숨바꼭질을 벌인 후, 경군이 전주성을 비운 틈을 타서 전주성을 공략하게 된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홍계훈은 지연작전을 벌이고, 이어 초토사의 관군이 밀어닥친다.

 3만의 동학교도들은 산비탈에서 대포를 가진 홍계훈의 관군과 접전을 벌이게 되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봉준은 패배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교도들 앞에서 숱하게 죽어 누운 동학교도들이 ‘시천주 조화정 영제 불망 만사지’의 13자 부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음 전투에서 여삼은 신들린 듯 주문을 외며, 적지를 향해 혈혈단신으로 달려가 바위를 들어 기관 포수와 조수를 쳐 죽이고, 기관포 총구를 대포 쪽으로 돌렸다. 이리하여 전투는 동학군의 대승으로 끝나고, 여삼은 보졸 기총으로 특진된다.

이어 동학군은 호남의 제1성 전주성을 탈환하고, 탐관오리와 벼슬아치들에 대한 과감한 숙청을 단행한다. 이때, 조정은 동학란으로 인한 민영준의 반청 반명 격으로 청국을 끌어들이게 되고, ‘통지 후 진격’이란 조약에 맞추어 일본군이 진입하게 된다.

 동학군은 전주성 북부의 검두봉 탈환 작전을 위하여 성문을 열고 반격을 개시한다. 청․일 양국의 내란 간섭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전봉준은 ‘녹두장군은 죽었다’라는 소문을 내고 심복에게 자진 해산을 명한다. 그러나 전봉준은 신화 속에 부활하고, 전라 좌․우도에 집강소를 설치한다.

 한편, 여삼은 옥이와 단꿈에 젖게 되고, 이진악은 훈련장에 있는 전봉준을 찾아와 대원군의 동학교도 서울 진입의 뜻을 전달한다. 이때 일본은 내정 간섭 및 대원군을 허수아비 삼아 정계에 끌어들이고, 그의 손자 이진용 역시 내무대신 서리가 된다. 이에 이진악은 경악하여 진용에게 찾아가지만, 진용은 진악을 가두어 버린다.

 동학군 남접의 두목 전봉준은 북접의 교주 최시형에 밀사를 보내어 거사를 위한 양측 합거를 요청한다. 다음 날 새벽, 출진한 이들은 삼례에서 남ㆍ북접 10만의 대군이 되어 공주성을 공략할 준비한다.

 공부에 이른 여삼은 양반 차림을 하고 상노의 강권으로 색주가에 들게 되지만, 거기에서 누이 상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기다리라는 여삼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상녀는 자살하고, 여삼은 상녀가 만난 일이 있는 곽무출을 만나게 된다. 무출은 왜놈 첩자의 브로커가 되어 있었다.

 여삼이 본진으로 돌아온 뒤, 동학군은 왜병에게 처참히 무너진다. 여삼은 절룩이며 걷지만, 옥이는 여삼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1855~95)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압송사진 출처 : 서산시대(http://www.sstimes.kr)

 

 유현종의 작품은 대개가 저변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투쟁과 그 현실 의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장편 <불만의 도시>에서도 밀수 재벌을 통한 사회악의 통속적인 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현실 의식과 초인적 의지의 추구로 <거인> <섬진강> 등이 이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그의 현실 의식은 대체로 부조리의 상황에 대결하는 밑바닥 인간의 투쟁으로 그려진다. 장편 <불만의 도시>는 밀수 재벌을 둘러싼 사회악의 통속적 구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주제와 형상화 양면에 걸쳐 재치 있게 성공한 작품은 첫 작품 <뜻있을 수 없는 돌멩이>이다. 이 외에도 <호질> <허생전> 등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동학 농민 전쟁은 우리나라 근대 민중 항쟁사에 있어서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역사학계에서도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따져보고, 역사적 진실과 실체를 제시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동학혁명은 아직도 미해결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만∼50만 명이 죽고, 청ㆍ일 두 나라가 이 땅에 들어와 전쟁을 벌여 조선의 봉건제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이를 주제로 다루고, 그림, 판소리에서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작품들에는 그 실상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형상화한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더욱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정의 부정부패에만 초점을 맞춘다든지, 농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리기에만 열중한다든지, 동학 교단을 전적으로 그 추진의 주체로 이해한다든지 하는 등, 그 사건 자체의 전개 과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작품에 손대는 미숙성을 보였다.

 현재 동학 농민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거의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어, 역사소설로서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어도 역사소설은 현대 소설보다 또 다른 제약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그 역사적 사건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서, 허구를 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그 당시의 생활, 풍속, 언어가 생생히 살아나야 한다. 이런 소도구들이 제대로 어우러져야 역사소설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유현종의  장편소설「들불」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