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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순원 단편소설 『땅울림』

by 언덕에서 2024. 4. 25.

 

황순원 단편소설 『땅울림』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의 단편소설로 1985년 [세계의 문학]에 발표되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 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동남아에 널리 퍼져 있는 '금기(禁忌)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어찌 보면 완결된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쓰기 위한 작가 자신의 구상을 미리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작가가 전면에 나서서 남북 이산가족의 슬픔을 '금기(禁忌)'라는 대명제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가 황순원 ( 黃順元 , 1915 ∼ 200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금기(禁忌)를 깨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예로부터 이를 표현하고 있는 설화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 설화’, 중국의 ‘담생(談生) 설화’, 일본의 ‘우라시마다로 설화’는 모두 금기를 소재로 한 것들이다.

 '나'는 대학을 정년 퇴임한 작가로서, 금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 중이다. 모델이 될 인물은 이웃에 사는 '강 노인'이다.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며, 바둑이를 데리고 어린이 놀이터 벤치에 나와 '나'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강 노인'이 어느 날부터인가 바둑이 없이 혼자 나와 시무룩해 있다. 사연인즉, 바둑이를 팔았다는 것이다.

 그는 6ㆍ25 때 북(北)에 처자를 두고 남(南)으로 와서 곧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살지만 결국에는 새살림을 차린다. 그리고는 결코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두 아들을 둔 그는 지금 둘째와 함께 사는데, 손주들이 졸라서 사 온 바둑이와 친구가 된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그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는다.

 그러나 남북 회담이 열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기대와 함께 결코 해서는 안 될,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을 하게 된다. 술, 담배 생각에 바둑이도 팔아 버린다. 그는 지금까지 지켜 온 금기를 깨면서 힘들게 유지해 왔던 안정을 잃고 만 것이다. '나'를 만난 그는 술과 담배 그리고 한숨을 섞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마침 대학의 영문과 교수가 건네준 영자(英字) 신문에서, 사할린에서 죽은 어느 노인의 사연을 읽게 된다. 그 노인은 사할린에서 지금까지 고향의 소식을 모른 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40년 만에 고향에서 처와 아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읽고 난 그 노인은 심장마비로 죽는다. 한국 친척들의 편지가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좀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딸의 편지 내용도 신문에 실려 있었다. '나'는 문득 '강 노인'을 모델로, 금기에 관해 쓰려고 했던 소설의 결말을 구상한다.

 

 

 본래 황순원 단편의 특징은 <목넘이 마을의 개>, <소나기>, <별> 등에서 보듯이 시적인 압축성ㆍ상징성과 함께 잘 짜인 구성이다. 그러나 이 「땅울림」은 그렇지가 않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소설의 갈래에 포함시켜도 좋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왜냐 하면, 서술자(작중화자)는 누가 보아도 작가 황순원 자신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작가의 나이, 직업 등이 이를 말해 준다. 따라서 혹자는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수필 혹은 소설 구상 노트로 읽을 수도 있다. 프롤로그가 그렇고, 도입부에 나타나는 우리나라ㆍ중국ㆍ일본 등의 금기 설화 소재와 작가 나름의 비평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소설의 서술과 구성 방식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소설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 주는 낯섦 때문일 뿐이다. 말할 것도 없이 「땅울림」은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이다. 프롤로그와 도입부에서 설화가 소개되고, 서술자 나름대로의 비평이 가해진 부분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바로 '강 노인'의 삶을 소설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강 노인'에 관한 이야기는 전체 분량의 반도 안 되지만, 금기 설화를 바탕으로 '나'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모델로 선택되었다.

 

 

 문제는 결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그런데 이 결말은 작가가 직접 그리지 않는다. 신문 기사를 이용한다. 영자(英字) 신문에 난, 사할린에서 죽은 어느 노인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사할린에 가서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새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오던 한 노인이 40년 만에 처와 아들로부터 소식을 듣는다. 그 순간 그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는다. 사할린에서 낳은 딸은 한국에서 온 편지만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 말한다.

 이 기사를 읽으며 작가는 '강 노인'을 모델로 한 소설의 결말을 암시받게 된다. 즉, 두 편의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어 들려주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 놓는다. 그리하여 작가는 독자들 앞에 소설의 틀만을 제시하고 독자는 이를 통해 나름대로 한 편의 소설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