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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광식 단편소설 『고목의 유령』

by 언덕에서 2024. 4. 29.

 

 

김광식 단편소설 『고목의 유령』

 

 

김광식(金光植. 1921∼2002)의 단편소설로 1959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단편소설로서 그의 '213호 주택'과 같은 유형의 작품이다. 두 편 모두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정신적 방황을 다루고 있다.

 작가가 주로 다루고 있는 소재는 도시인의 생태이다. 도시라는 구조적인 사회 안에서 자기라는 것을 잊고 살아야 하는 서민의 표정을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다. 매스컴의 소용돌이, 교통기관의 폭주, 바쁜 시간생활, 실업의 불안, 기계적인 직장, 특색 없는 주택가에 살아가는 소외된 존재로서의 서민을 그리고 있다. 변질적인 정신 현상을 통해서 도시생활의 삭막함이 나타난다. 또, 거점을 찾지 못해 항상 오리로제 상태에 있는 도시인의 표정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소재에 대한 취향은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도시인다운 감각에서 우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나'가 뜰 안에 서 있는 은행나무를 아내의 전남편의 망령이 아닌가 하는 망상에 빠져 있다는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아내를 싸고도는 전남편에 대한 질투를 담고 있으나, 심층에 있어서는 돈의 노예가 된 인물의 병적 심리를 그리고 있다. 즉, 가정적 삶의 황폐와 사회 현실의 영향으로 가정이 애정과 이해의 집단이 아닌, 경제적 집단으로 변모되어 버린 인간 의식을 다루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상처(喪妻)한 후, 지금의 아내 미영과 재혼을 했다. 나는 미영의 전남편이 살던 흉가에 살고 있다. 나는 이 집에 계속 산다면 미영이가 자신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새집으로 이사갈 생각만 가진 채 계속해서 그 집에서 살고 있다. 나는 대학 강사이고 미영은 약사이다.

 나는 명동에서 친구들과 헤어져 거나한 기분으로 합승을 하러 시청 앞으로 갔다. 합승을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더니 선선한 바람이 가로수를 우수수 몰아쳤다. 구름이 낮고 무겁게 드리운 찌푸린 날씨다. 합승 정류장에는 나 혼자만 홀로 서 있었다. 통금 예고 싸이렌이 울렸다. 효자동행 합승이 왔다. 내가 타자 정원이었다. 그런데 차장 꼬마는 자꾸 손님을 부르더니 또 한 사람을 억지로 태우고서야 차는 떠났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몽롱해졌다. 종점에서 칠팔 분을 또 걸어야 한다.

 나는 집 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정원 안에 서 있는 고목이 된 은행나무 아래서 까만 우산을 받쳐들고 레인코트를 입은 한 사내가 서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요새 부정이 없는가하여 아내의 애정을 다시금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아내는 예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나에게는 묘한 버릇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아내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마다 아내의 전남편에 대한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러한 자신을 '우습지 않은가, 한국에서 가장 지식층에 있는 교수라는 자가 말이다.'하고 개탄한다.

 번갯불이 방 안을 비치고 꺼졌다. 미영은 말없이 그 자의 앞을 서서 방을 나가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방 안을 뛰어나가며,

 "미영이! 미영이!"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불렸다.

 집을 흔드는 권총 소리에 나는 눈을 떴었으나 정신을 잃고 말았다. 기절하는 순간 나는 까만 우산의 레인코트가 희뜩 나타났다. 나는 지금 누워 있지만 권총에 맞아 누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위층에서 미영을 부르짖는 소리와 넘어져서 꽝 하는 소리와 권총 소리에 미영은 기절하며 넘어졌다.

 

 

 『고목(古木)의 유령(幽靈)』에서는 이야기가 유령과 관련되어 있다. 대학강사 ‘나’는 친구와 술을 먹고 거나해져 귀가한다. 비가뿌리는 음산한 날씨다. 대문 앞에서 ‘나’는 멈칫한다. 대문의 철책 사이로 보이는 정원 안 고목 은행나무 아래에 ‘까만 우산을 받고 레인코트를 입은 한 사내’의 환영을 본 것이다. 어디서 한 번 본 사람 같기도 하다…… 이때부터 그의 맘속에 진작부터 잠재해 왔던 아내의 전남편에 대한 콤플렉스가 표면화된다. 약제사(藥劑士)인 아내는 그의 증상을 노이로제로 보고 신경 진정제를 권하지만, 남편의 신경증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그렇다고 ‘나’는 그 원인을 아내에게 말할 수도 없다. 만일 말해 버리면, 아내와의 애정에 금이 갈 테니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나’는 아내의 전부(前夫)의 유령 망상에 눌려 지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처음 그 고목 아래의 유령을 봤을 때 그가 어딘지 ‘한 번 본 사람의 모습’ 같다고 느꼈다는 사실이다(그 후 딸 연희와 놀러 간 처남의 집에서 본 앨범의 사진 ―아내의 전남편의 사진의 모습도 그 유령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같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전남편을 ‘나’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이건 재미있는 관찰이다. ‘나’는 재혼 당시부터 아내의 전남편의 영상에 괴롭혀졌을 것이고, 은연중 그의 모습도 이모저모로 상상해 봤다. 단 막연할 수박에 없었을 그 모습이 고목 아래의 유령이나, 사진첩의 그 시진을 보자 순간 피동적으로 확인되었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우연의 일치다. 물론 어디까지나 우연인데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애써 생각했을 것이고, 이건 그의 맘속에 축적된 콤플렉스가 시킨 일이다.

 우연의 일치는 친구 오학준 교수를 아침에 갑자기 생각했는데, 몇 시간 뒤 길가에서 그를 만났다는 일에서도 나와 있지만, 그때 느낀 이상한 느낌도 유령이나 사진의 경우처럼 평소 불안한 ‘나’의 정신상태가 일으킨 과잉반응이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매우 상징적인 도적의 틈입(闖入)과 도적이 쏜 권총소리에 ‘나’가 기절하는 것도 그 과잉반응의 결과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기 쉬운 일상 속의 우연적 요소들을 그처럼 추구해 본 김광식의 이 단편은 비록 그 작중에 산견(散見)되는 심층의식(深層意識)의 관찰이나 묘사가 좀 더 집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역시 한국소설에서 특이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