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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이오네스코 장편소설 『외로운 남자(Le Solitair)』

by 언덕에서 2024. 4. 8.

 

 

 

이오네스코 장편소설 『외로운 남자(Le Solitair)』

 

 

루마니아 태생 프랑스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1912∼1994)의 단편소설로 1973년 발표되었다.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이오네스코는 1950년 첫 희곡 <대머리 여가수>를 발표하여 프랑스 문학계와 연극계에 큰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의자>, <코뿔소> 등 20여 편의 희곡을 발표하며 원숙기에 이르렀고 1970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발표한 여러 산문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통찰하기 시작한다. 『외로운 남자』 역시 이런 통찰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작품으로, 이오네스코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인간 사이 의사소통의 어려움, 인간의 존재 조건인 고독과 죽음의 문제,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이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다.

『외로운 남자』는 공연을 위한 초고 수준을 넘어서 독립된 소설 형식을 취하는 유일한 작품으로 <난장판!>이라는 제목의 희곡으로 각색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이오네스코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진흙>, <난장판!>과 더불어 자전적 3부작을 이룬다. 이오네스코는 20세기 후반 50년간 파리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작품을 올리며, 프랑스어로 쓰인 희곡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공연된 보편적 작가이다.

 

루마니아 태생 프랑스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1912∼199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예기치 않았던 유산을 상속받은 주인공은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 삶과 주변 여건, 더 나아가 인간이 처한 근원적 조건을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된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동료들과 작별한 뒤, 그때까지 살아오던 누추한 호텔을 떠나 도시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어 생활한다. 새로운 거처에서의 생활이 자리 잡히자 주인공은 이 우주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을 쉽사리 찾지 못해 좌절하면서 일상의 삶에 매몰되어 간다. 여인과의 사랑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전화로 예전에 알던 철학과 대학생과 상담도 해보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성공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동안 바깥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사람들은 서로 비방하고, 죽이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건설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느 쪽이 옳다는 확신을 갖지도 못하고 한쪽에도 가담하지도 못한다. 그의 내면 역시 변한 것이 없고, 그의 형이상학적 질문 역시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부조리극의 효시라 불리는 외젠 이오네스코는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창조해 낸 ‘나’라는 인물이 겪는 인간과 인간, 자아와 자아 사이의 인간성 결여 혹은 자몰(自沒)을 섬세한 필체로 그려놓고 있다. 일인칭 시점 소설이지만 일인칭마저도 삼인칭의 관찰자가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데 마치 무대 위에서 빈 관람석을 향해 자신을 선전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나'를 서술하는 게 '나'이지만 '나'처럼 여겨지지 못한다.

『외로운 남자』는 홀로 있고자 했지만 홀로 있지 못해 발버둥 치다가 망연자실했을 무렵 외로움의 가능성을 얼핏 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삶의 비의(悲意)를 깨달은 현자도 아니고, 열반에 다다른 선승도 아니다. 주인공의 이러한 모습은 바로 살아생전 “나는 지혜를 갖지 못했다. 앙드레 지드가 말했듯 나는 절망에 빠져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 이오네스코 자기 모습일 것이다.

 

 

 아무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광장과 인도 위에 기이한 난장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트럭과 더불어 머리통이 부서져 날아갔다. 난 소리쳤다.

 '소리 없이 편안하게 파멸할 수 있고 좀 더 부드럽게 죽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자, 선택은 자유예요.'

 싸움꾼 한복판에 들어가 군중과 휩쓸렸다. 난 얻어맞진 않았다.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난 그들에겐 유령에 불과했다. 그들 역시 유령이지만 난폭하고 흥분돼 있었다. 난 그들의 팔과 다리를 잡으려 했고, 곤봉, 방패, 투구로 무장한 경찰이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누가 누구인지 모를 상황이었다. 오직 만인이 만인의 적일 따름이었다. -본문에서

 작중 주인공은 예기치 않았던 유산을 상속받은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고 동료들과 작별한 뒤, 그때까지 살아오던 누추한 호텔을 떠나 도시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어 생활한다. 새로운 거처에서의 생활이 자리 잡히자 주인공은 이 우주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을 쉽사리 찾지 못해 좌절하면서 일상의 삶에 매몰되어 간다. 다양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그의 형이상학적 질문은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다. 작가는 그의 삶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에 대한 조롱과 저항을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