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의 희곡

유치진 희곡 『원술랑(元述郞)』

by 언덕에서 2024. 4. 9.

 

유치진 희곡 『원술랑(元述郞)』

 

 

유치진(柳致眞, 1905~1974)이 쓴 계몽사극으로 1950년 작품이다. 1950년 5월에 중앙국립극장 개관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진 5막의 희곡이다. 문일평(文一平)의 역사책 <호암전집(湖巖全集)>에 기술돼 있는 ‘나당교전사(羅唐交戰史)’를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의 배경은 시대가 신라 문무왕 때로 되어 있다. 문무왕 때의 나당관계는 광복을 전후한 시기의 열강과 한국과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관점에서 쓰였다.

 문무왕 때라면 신라가 당나라의 협력을 얻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다시 당나라와 마주치게 된 때로서, 6∼7년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당나라 세력을 물리치고 비로소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한 시기이다. 바로 그때의 주역 중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를 격퇴하는 데 용맹을 떨쳤던 소년낭도 원술랑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자명고(自鳴鼓)>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을 빌려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낭만적인 계몽사극으로, 당시는 민족대서사시로 불릴 만큼 웅장한 규모였다. 허석(許碩) 연출로 [신협]에 의해서 공연되었으며, 1주일 동안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여 연극중흥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극작가 유치진 ( 柳致眞 , 1905~197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때는 문무왕 12년, 당 나라에 유학갔던 원각 대사가 고구려와 백제의 땅을 다시 돌려주라는 당 나라 황제의 서한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때 원술랑은 출전하려던 아버지 김유신을 만류하고 대신 전장으로 나간다. 그러나 당 나라 군에게 크게 패하고, 군사가 원술랑의 투구를 가져오자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한 줄 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분노한 김유신은 단칼로 원술랑의 목을 베려고 하였으나, 그의 부인이 한사코 말리고, 또한 왕명도 있어 그만 집을 영원히 나가라고 명령한다. 그 뒤 원술랑은 진달래라는 소녀와 둘이서 품팔이하며 살아가다가 문득 아버지가 중환이라는 소식을 듣고 집 근처까지 왔으나, 차마 들어가지 못한다.

 끝내 김유신은 죽었으나, 그의 어머니마저 아들을 집안에 들여놓지 않는다. 그 뒤 2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당 나라와의 싸움에 크게 이기고 당 나라 장수의 목을 벤다.

 왕은 원술랑의 승전 무공을 기려 그에게 공주를 출가시켜 부마로 삼겠다고 한다. 원술랑은 사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진달래는 대궐 우물에 투신 자살하려다가 그녀를 찾던 신하들에게 발견된다. 결국 원술랑과 진달래는 다시 만나게 되고, 굳게 포옹을 한다. 왕은 원술랑에게 소판이라는 직위를 내린다.

 

 

 이 작품은 원술랑의 모진 고행을 통해 부자지간의 차원 높은 모럴의 세계를 진지하게 파고들었다.일제강점기에는 사극(史劇)이 주로 사건 중심이나 줄거리 위주로 흘러 야사(野史)가 아니면, 정사적(正史的)인 기록성에 흔히 빠져 버렸었다. 그런데 이 「원술랑」은 차원 높은 사랑과 인간의 존재를 역사의 정의감을 통해 일종의 휴머니티의 세계로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당 나라와의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왕으로부터 복권되어 부마(왕의 사위)까지 권유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함께 고생한 ‘진달래’라는 여인과 시골에서 살도록 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은 휴머니티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달콤한 이상주의적인 결과이기도 하나, 이를 단순한 문학적 감상으로만 볼 것이 이니라, 한낱 벼슬이나 영화(榮華)보다는 진달래를 향하는 애정을 소중히 여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만약 진달래를 버리고 왕의 사위가 된다면, 아버지 김유신에 대한 두 번의 배신 행위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시극 희곡에서 이처럼 인간성을 파고든 작품도 드물어 보인다.

 

 

 이 희곡은 김유신의 아들 원술랑을 주인공으로 하여 화랑정신을 통해 국가관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을 통해 국가관과 애국정신을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장막극이며 역사극이다. 주제는 임전무퇴의 화랑정신(호국 정신)이며 대사는 생략법을 써서 간결하게 표현하였고, 인물들의 동작 지시는 해설적으로 표현하였다.

 김유신의 아들인 원술랑의 불타는 애국심과 무용담, 구슬아기와의 로맨스가 곁들여 짜인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화랑도 원술의 개인적 운명비극인 동시에 유치진의 주체적 민족주의사상이 표출된 작품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협조한 당나라가 신의를 저버리고 한반도를 정복하려고 했던 역사적 사실을 극화함으로써 미ㆍ소가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독립을 결의한 카이로선언과 포츠담 4국 회의를 어기고 분할, 군정통치를 한 사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한국인은 신라사람들이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싸웠듯이 외세와 용감하게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