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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톨스토이 희곡 『어둠의 힘(Власть тьмы, Vlast ' t'my)』

by 언덕에서 2024. 3. 12.

 

톨스토이 희곡 『어둠의 힘(Власть тьмы, Vlast ' t'my)』

 

러시아 대문호 레프 N.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1828∼1910)의 5막의 휴머니즘적인 자연주의 희곡작품으로 1886년에 발표되었고 1888년 파리에서 초연(初演)되었다. 「어둠의 힘」은 톨스토이가 1887년에 발표한 희곡 작품으로 뚤라 주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작품의 줄거리는 주인공 니키타가 병약한 부농의 아내인 아니시아와 불륜의 사랑을 시작하면서 절도, 근친상간, 살인 등의 온갖 범죄를 저지르지만, 훗날 의붓딸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참회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5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품의 검열 단계에서 4막이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연극 무대 상연으로 다소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아 4막의 뒷부분에 대한 이본(異本)이 추가되었다. 톨스토이가 58세에 쓴 이 작품은 자신의 종교적 '회심이후 인간 본성 및 종교적 구원에 대한 성찰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19세기 러시아 극을 대표하며 현재에까지 많은 무대에 오르고 있다. 니키타라는 머슴이 농장의 젊은 여주인과 불륜의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 여러 죄악이 발생된다. 그는 의지가 약하여 타락해 가는데 마지막에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을 자백함으로써 어둠 속에 하나의 희망의 빛이 비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머슴(니키타)과 주인(아니시아)의 간통 및 후취(後娶)와 불의(不義)의 관계, 남편(표트르) 독살, 영아(嬰兒) 압살, 마지막으로 머슴(니키타)의 참회와 속죄로 끝난다. 엄중한 검열을 거쳐 발표된 초판은 3일 만에 25만 부가 매진되었다. 국내에는 1936년에 [동양극장]에서 유치진의 각색·연출로 [극예술연구회]가 제9회 공연으로 소개하여 근대극운동으로 정착시킨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니키타의 여주인 아니시아가 어둠의 힘이라는 상징으로 나타난다. 아니시아는 병약한 부농 표트르의 재혼한 아내이다. 아니시아는 주인공 니키타의 어머니 마트리요나가 구한 독약으로 늙은 남편을 죽여 재산을 가로채고 미혼남 니키타와 결혼하려고 한다.

 니키타는 어머니와 여주인 아니시아의 부추김을 받아 애인 마리나를 버리고 아니시아와 결혼한다. 그러나 니키타는 자기의 아내가 된 아니시아의 딸(의붓딸) 아쿨리아를 임신시키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니시아는 니키타를 부추겨 아기를 죽게 한다. 겁에 질린 니키타는 아니시아와 자기의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고 하는가 하면, 흐느껴 울며 애원한다. 그는 죽인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듯한 전율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니키타는 아버지 아킴을 따라 의붓딸 아쿨리아의 결혼식에 맨발로 들어와서 모든 이들에게 무릎을 꿇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신적 상징인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는 그를 격려하고 비통한 미소를 지으며 경찰에 잡혀가는 아들을 지켜본다.

 

러시아 대문호 레프 N. 톨스토이((Tolstoi.Lev Nikolaevich, 1828∼1910)

 

 톨스토이는 제목에서 이미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원제는 <발톱만 걸려들어도 새의 몸 전체가 빠져든다>였다. 남자 주인공 니키티의 5막 대사를 차용한 이 제목은 인간이 죄를 짓기 시작하면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가 불가능함을 설명하고 있다. 이후 톨스토이는 성경 말씀에서 가져온 '어둠의 힘'으로 제목을 교체하고 원제를 부제로 변경하는데, '어둠의 힘'은 누가복음 22장 53절 "그러나 이제는 너의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구절은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는 순간 예수가 한 말로써,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어둠의 힘이 창궐하는 시대를 예언한다. 톨스토이가 '부활' 등에서 제목으로 하여금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다소 비관적 어조를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막에서 보여주는 니키타의 회개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예수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어둠의 권세 속에도 한 가닥 희망의 빛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즉 예수가 죽은 후 다시 부활하였듯이 인간 심연에 존재하는 악의 뿌리에도 희망이 존재함을 역설하고 있다. 여주인과의 불륜, 지주 살해, 의붓딸과의 불륜, 친자 영아 살해 등 용납하기 힘든 갖은 죄악 속에서 니키타는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자살이 아닌 고백과 회개를 선택했다. 이것은 어렴풋이 구원의 가능성을 비춰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을 도스또옙스끼의 대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비교하도록 한다. 친부 살해와 친자 살해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두 작품은 일면 상통하는 점이 있다. 즉,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인간의 탐욕과 죄악의 본질을 친부 살해를 통해 보여주며 종교의 힘으로 속죄를 통한 구원을 암시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이 작품에서 많은 죄악의 결정체로 그려진 친자 살해는 니키타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뚤라 주의 지방재판소 검사인 지인으로부터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의지가 약한 주인공 니키타는 아니시아와 어머니의 부추김에 이끌려 죄악에 빠져들게 되고, 불륜·살인·절도·영아살해 등을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죄악은 인간 본능의 탐욕과 욕정에 기반한 것으로서, 인간의 탐욕과 죄악이 어떻게 인간을 붕괴시켜 가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자연주의 작품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보여주며 탐욕, 성적 본능과 자기기만 등을 금기에 얽매이지 않고 솔직하게 실험해 보인다. 그러나 자연주의 작품과는 결말이 다르다. 작가는 주어진 환경과 알지 못하는 본능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 인간을 통해서 속죄를 통한 구원의 결말을 그리며 어둠의 힘에 대항하는 휴머니즘의 힘을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모스크바의 [민중극단]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쓴 작품인데 준열한 사실성 때문에 검열에 걸려 러시아에서 무대에 올리지 못하였다. 1888년에 프랑스에서 공연되어 작가에게 최초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소재는 툴라 법정의 한 사건에서 빌려온 것이며 자연주의 형태로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대의 압력하에서 가부장제가 빠르게 무너져가는 농촌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무지와 빈곤이 지배하던 그 무렵 농촌에서의 근친상간과 사생아 살해를 주제로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어둠의 힘이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신의 힘에 대항하는 난폭함을 그렸다. 어둠이란, 인간 본능의 지극히 파괴적인 것, 여러 악의 근원이라고 할 성욕 그 자체를 가리킨다. 「어둠의 힘」 또는 <손톱 하나가 덫에 걸려도 작은 새의 목숨은 벌써 끝이다>가 말해 주듯이,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라는 것에 대해서 과실이 과실을 낳고, 결국 어쩔 수 없는 파멸로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더러운 영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정화·구제하는 신의 위대한 힘을 찬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