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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차범석 단막 희곡 『고구마』

by 언덕에서 2024. 4. 2.

 

 

차범석 단막 희곡 『고구마』

 

 

차범석((車凡錫.1924∼2006)의 단막 희곡작품으로 1964년 발표되었다. 해방 이후 젊은 작가들이 서구의 전위예술에 심취하거나 그 모방에 급급했지만, 차범석은 사실주의 연극 확립을 꾸준히 추구했다. 그의 극은 섬세하고 등장인물들도 평범하다. 그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생활을 과장 없이 차분하게 펼쳐 나가며, 때로는 비극적으로 또는 희극적으로 엮어 놓는다. 대사에는 흔히 쓰는 속담이 많다. 속담이란 보편성이 많기 때문에 대중의 환영을 받는다. 대표작 <산불>은 원색 짙은 사랑과 6ㆍ25전쟁의 비극을 그렸고, <장미의 성>은 억류된 성(性)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의 연극에 대한 정열과 고지식한 성격은 연극계에 정평이 있다.

 『고구마』는 1960년대 후반 농촌이 가난한 이유는 재래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농민들이 모르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아온 보수적인 아버지는 은순이 밤에 야학에 다니는 것이 못마땅하여 호통을 친다. 그러나 은순은 잘못을 빌기는커녕 농촌 사람들도 배워야 잘 살 수 있다며 아버지에게 야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때 야학 교사인 오영택이 등장하고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그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오영택은 공손한 태도로 자신들이 봉사활동을 나선 것은 일시적인 허영이 아니라,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양식을 나누어주고 싶어서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농촌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자신감을 가지며,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진실된 태도와 열의에 감동한 아버지는 생각을 바꾸게 되고, 그를 손님으로 맞아들인다.

 

극작가 차범석 (( 車凡錫 .1924 &sim; 2006)

 

 차범석은 작품활동과 함께 1956년에는 [제작극회]를 창단해 소극장운동을 벌였으며, MBC 창립에도 관여한 일을 인연으로 삼아 방송극 창작에도 손을 댔다. 극단 미추의 손진책 대표는 고인에 대해 "희곡을 통해 한국의 현대연극을 본궤도로 올려놓은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희곡작품도 여러 편 쓰시고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해 국내 현대희곡 문학을 정립한 극작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극작가협회 회장, 예술원 회장, 한국문화예술원장 등 단체장도 두루 지냈고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예술원상, 서울시문화상 등 상도 많이 받은 고인은 최근 별세한 원로 연극배우 김동원 씨의 장례위원장을 맡으면서 연극계 맏어른 역할을 해 왔다.

깐깐한 성품에 지독한 원칙주의자로 통하는 그는 이런 성품 때문에 제자나 연극계 후배 또는 배우들이 매우 어려워했다고 한다.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대표는 "후배들을 야단치는 마지막 스승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젊은 후배들이 연극을 적당히 하고 어물어물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입바른 소리를 하고야 말았고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석에선 술도 잘 마시고 노래도 즐겨 불렀으며 살풀이춤도 잘 췄다. 이런 그가 좌우명으로 삼은 문구는 '빚 없는 인생'이었다고 한다.

 

 

 보수적인 농촌을 대표하는 인물은 아버지이며, 교육을 받아 농촌에도 새로운 농사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딸 은순이다. 이러한 은순을 깨우치고 지도하는 사람이 바로 지식인 오영택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은 변해야 하며, 농촌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은순과 영택의 설득에 완고하기만 하던 아버지는 결국 감동하고 만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가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버지를 감명시키고 변하게 한 것은 그들의 지금까지의 생활을 이해하는 진지한 태도와 정신적인 양식을 나누어주겠다는 확고한 봉사정신을 지닌 대학생들이다. 진지한 자세와 열의로 농촌의 무지함을 일깨우고,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