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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현덕 장편소설 『경칩(驚蟄)』

by 언덕에서 2024. 4. 22.

 

현덕 장편소설 『경칩(驚蟄)』

 

월북작가 현덕(玄德. 1912∼?)의 단편소설로 1938년 [조선일보]에 발표되었다. 현덕의 처녀작으로 <남생이>(1938)가 있긴 하지만, 소설적 구성으로 보면 「경칩」이 <남생이>의 앞 이야기처럼 보인다.

 현덕은 서울 출생으로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했다가 중퇴하였다.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아동문학부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한때 [조선문학가동맹] 출판부장을 맡기도 했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이념노선은 조선공산당의 문화운동 노선에 따라 규정되었다. 그러므로 현덕의 월북은 이념에 따라 실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덕은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경칩」(조선일보. 1938) <층(層)>(조선일보. 1938) <두꺼비가 먹은 돈>(조광. 1938) <골목>(조광. 1939) <잣을 까는 집>(여성. 1939) <녹성좌>(조선일보. 1939) <군맹>(매일신보. 1940) 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그는 단편소설과 함께 아동소설도 여러 편 발표하였다. 곧, 1938년 [소년]에 <하늘 맑건만> <권구시합(拳球試合)>, 1939년 같은 잡지에 <고구마> <강아지> <두포전> <집을 나간 소년> <잃었던 우정>을 발표하였다.

 그는 월북 후에도 한동안 창작 활동을 계속하였음이 확인되었다. 한국동란이 끝난 다음에 발표한 <부싱쿠 동무>(1959) <싸우는 부두>(1961) 등의 단편소설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도덕이나 의리보다는 생존의 본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동물의 논리가 삶을 지배한다는, 지극히 비관적인 작가의 전망을 담고 있다.

 

월북작가 현덕 ( 玄德 .1912 &sim;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인 노마의 아버지가 병이 들어 몸져눕게 되었다. 그래서 노마네가 부치던 소작의 땅에 대해 그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 홍서는 그 땅을 소작하여 농사 지을 수 있다는 욕심에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경칩이 가까워 오자, 노마네가 부치던 아홉 마지기 땅을 노리는 이웃 경춘이는 서둘러 거름을 져다가 노마네 논에다 뿌리면서 은근히 지주로부터 소작권을 얻기를 기대하였다. 그것을 안 홍서가 경춘에게 호통을 치고 나무라지만, 그다음 날 홍서 역시 노마네 논에다 거름을 뿌리면서 몸져누워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며 자위를 한다.

 한편, 노마네의 논 소작권에 욕심이 생긴 홍서의 아내가 지주 댁으로 찾아들더니 결국에는 그 땅을 부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노마 아버지의 생계 수단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으로 주인공인 홍서는 '골수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낀다.

 

▲ 1939.3.5 동아일보 현덕 동화 출처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http://www.kihoilbo.co.kr)

 

 현덕은 1938[조선일보]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문단에 정식 데뷔하였다. 이 작품은 안회남에 의하여 우리의 전문학적 수준을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극찬을 받았다. 현덕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최하층의 생활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경험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으며, 김유정과의 각별한 교우관계 역시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현덕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올바른 삶의 지향처를 상실한 채 나날이 피폐해 가는 모습을 비관적으로 형상화했다. 원초적 삶의 본능 앞에서 의리니 도덕이니 하는 고상한 인격적 덕목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고 서술한다. 또는 소극적으로나마 약육강식의 동물적 논리만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자기를 잃고 사는 동족들에게 일제강점기의 질곡에서 벗어나야 함을 촉구하는 담론으로 읽힌다. 

 현덕이 발표한 작품은 소수이긴 하나, 처녀작 <남생이>를 비롯, <두꺼비가 먹은 돈>(1938), <골목>(1939), <잣을 까는 집>(1939), 「경칩」 등은 그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거의 완벽한 것으로 당시 한국문학이 도달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현덕은 원초적 삶의 본능 앞에서 의리니 도덕이니 하는 고상한 인격적 덕목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고 서술한다. 또는 소극적으로나마 약육강식의 동물적 논리만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자기를 잃고 사는 동족들에게 일제강점기의 질곡에서 벗어나야 함을 촉구하는 담론으로 읽힌다. 이처럼 생존 본능 앞에서는 인간의 도덕이나 의리가 한갓 하찮은 것임을 나타내는 지극히 비관적인 작가의 전망은 다음에 발표된 <남생이>에 오면, 더욱 발전적 형태로 나타나 노마네 집은 가난에 허덕이고, 노마의 어머니는 정부를 얻어 남편을 빨리 죽으라 말한다.

 남생이를 매개로 하는 이 작품은 약육강식의 논리 위에 더욱 윤리적 빛깔의 윤색 역할을 하여, 비극적 삶의 논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노마 아버지가 병마(病魔)로부터 노동력을 빼앗겼고, 이어서 아내마저 잃게 된 절망적 한계 상황에서, 적극적인 자기 각성이 없다는 점은 서사적 비극의 요건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도를 지닌 작가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