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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O. 헨리 단편소설 『마녀의 빵(Witches' Loaves)』

by 언덕에서 2024. 4. 12.

 

 

O. 헨리 단편소설 『마녀의 빵(Witches' Loaves)』

 

 

미국 소설가 O. 헨리(O Henry. 1862∼1910)의 단편소설로 1904년 발표되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O. 헨리는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졸업 후에는 숙부의 잡화상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1882년 텍사스로 가서 농장, 국유지 관리국을 거쳐 오스틴에 있는 제1 국립은행의 은행원으로 일했다. 1887년 애설 에스티스와 결혼했으며, 이 무렵부터 습작(習作)을 시작했다. 1894년 주간지 [롤링 스톤(The Rolling Stone)] 지를 창간했으나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휴스턴 포스트(Houston Post)]에 기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가끔 만화도 기고했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다. 그러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스틴으로 돌아왔고, 당국의 배려로 재판은 아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되었다. 그는 최소한의 형을 받고 1898년 오하이오의 콜럼버스에 있는 교도소에 갇히었으며 모범적인 복역으로 형기는 3년 3개월로 줄어들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야간에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 마거릿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다. O. Henry라는 필명을 쓴 것은 딸에게 자기가 옥살이를 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빵집 주인 마더 미첨은 상당한 재산을 모아둔 성공한 자영업자지만, 40세의 나이에도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이다. 어느 독일계 중년 남자가 오래된 빵만 사가는 걸 보고 가난한 화가라고 생각한다. 그 남자에게 호감이 생긴 미첨은 경매에서 좋은 그림을 사다 걸어놓고 예술에 관심이 많은 척하며 그가 화가가 맞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남자가 그림의 원근법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하게 된다.

 미첨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단옷을 입고 화장을 곱게 하곤 했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어느 날 가게를 들른 남자가 한눈파는 사이에 묵은 빵을 갈라 버터를 듬뿍 발라놓았다. 자존심 강한 가난한 예술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 남자가 나중에 찾아와서 미첨에게 마구 화를 내었다. 사실 그는 건축설계사였는데, 오래된 빵을 고무지우개 대신으로 쓰고 있었다. 사실 그 중년 남성은 새 시청사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건축가들은 설계도를 그릴 때 연필 지우개로 묵은 식빵을 쓰곤 했는데, 하필이면 오늘 막 잉크 선 따기를 완성한 건축가는 언제나처럼 구매한 식빵으로 연필 선을 지웠고, 결국 설계도가 완전히 버터 범벅이 되면서 3개월에 걸친 건축가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된 것이다. 그러니까 버터 때문에 중요한 작품을 망쳐버린 것이다.

 진상을 알게 된 마더는 비단옷을 낡은 갈색 옷으로 갈아입고 그간 준비했던 화장품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만다.

 

 

 O. 헨리는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숙부의 잡화상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1882년 텍사스로 가서 농장, 국유지 관리국을 거쳐 오스틴에 있는 제1국립은행의 은행원으로 일했다. 1887년 애설 에스티스와 결혼했으며, 이 무렵부터 습작을 시작했다. 1894년 주간지 [롤링 스톤(The Rolling Stone)]지를 창간했으나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휴스턴 포스트(Houston Post)]에 기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가끔 만화도 기고했다. 18962월 은행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다. 그러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스틴으로 돌아왔고, 당국의 배려로 재판은 아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되었다. 아내 사후, 최소한의 형을 받고 1898년 오하이오의 콜럼버스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모범적인 복역으로 형기는 33개월로 줄어들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야간에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 마거릿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다.

 대부분의 그의 소설은 수감 중에 구상한 것들로 미국 남서부와 중남미를 무대로 한 그의 모험소설은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그는 출감하면서 이름을 W. S. 포터에서 O. 헨리로 바꾸었다. 

 

 

 1902년 O. 헨리는 스스로 '지하철 위에 건설된 바그다드'라고 묘사했던 도시인 뉴욕에 도착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그는 뉴욕의 [월드(World)]에 매주 글을 쓰면서 동시에 잡지에도 기고했다. 최초의 소설집 <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은 온두라스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이며 <400만(The Four Million)>(1906) <The Trimmed Lamp>(1907)는 뉴욕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낭만과 모험에 대한 추구를 묘사했고, <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은 텍사스 산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O. 헨리의 말년은 자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악화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사후에 <Sixes and Sevens>(1911) <뒹구는 돌(Rolling Stones)>(1912) <Waifs and Strays>(1917) 등 3권의 선집이 나왔다. 나중에 즉흥적으로 쓴 소설과 시를 모은 <O. 헨리 선집(O. Henryana)>(1920) <Letters to Lithopolis>(1922)와 초기의 작품을 모은 2권의 책 <Houston Post, Postscripts>(1923) <O. Henry Encore>(1939)가 출간되었다. 문학사적으로는 중요한 작가가 아니지만 <경찰관과 찬송가(The Cop and the Anthem)>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 등의 단편에서 보이는 따뜻한 휴머니즘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다. 제럴드 랭퍼드가 쓴 전기 <앨리어스 O. 헨리(Alias O. Henry)>가 1957년에 나왔다. 장편 <케비지의 왕>을 제외하면 거의 단편뿐으로서 그 수는 270여 편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