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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헤르만 헤세 단편소설 『바그너와 클라인』

by 언덕에서 2024. 4. 30.

 

 

헤르만 헤세 단편소설 『바그너와 클라인』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단편소설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에 쓰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히는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 <크눌프>, <게르트루트>, <청춘은 아름다워라> 등 그가 젊은 시절에 쓰인 소설에 한정되어 있으나 이 작품은 <로스할테>, <유리알 유희> 등과 함께 중년에 쓰였다. 이 소설은 헤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매우 암담하고 우울한 분위기여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클라인’은 성실한 40대의 은행원으로 처자와 함께 평범하지만 평화스러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충동에 이끌려 거액의 공금을 횡령해서 남부 스위스의 작은 호반 도시로 도망쳐 온다. 단조로운 직무와 결혼생활의 고역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그를 미지의 곳으로 가게 만든 것이다. 또한 ‘바그너’라는 사내가 저지른 사건이 그의 탈출 욕구를 더욱 부추겼다고도 볼 수 있다.

 바그너는 남부 독일에서 근무하는 중학교 교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처자를 살해하고 자살해버렸다. 클라인은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고 마음 한구석으로 바그너의 행위를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바그너처럼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서둘러 탈출을 감행한 것이었다.

 클라인은 아름다운 호반에서 어느 무용수 여인과 짧은 사랑을 나눠보기도 하고, 풍요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호수에 나가 물속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 &sim; 1962)

 

 이 소설은 중년의 고독과 절망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동시에 작가가 지닌 실존주의적 체취를 풍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면과 외면에 이국풍적인 요소를 함께 지닌 그는 신학생으로, 방랑아로, 탑시계공장 수습공으로, 서점 점원으로 젊은 시절을 불안 속에 헤매며, 27살이 되어서야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하고 작가로서의 첫 성공을 거둔다. 그 후 그는 10년이나 연상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여 보덴호수가의 가이엔호펜이란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자유 작가로 사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안정된 정착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헤세는 로맹 롤랑과 친교를 맺고 사랑과 평화를 주장하며 반전 문학운동을 전개한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그는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 체재하면서 세계시민 관점에서 창작활동을 계속한다. 얄궂은 운명은 잠시도 그를 내버려 두지 않고 계속 휘몰아간다. 그동안 작가는 아버지의 사망, 첫 부인의 정신질환, 사랑하는 아들 마르틴의 죽음 등을 감당해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독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시민이요 조국을 배반한 작가로 낙인찍히게 된다. 나치 당원들의 집요한 박해와 추적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결국 그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23년에 영원한 스위스 국민이 된다. <청춘은 아름다워라>, <방랑>, 「바그너와 클라인」 등 인생에 비관적인 시선을 담은 작품들은 이즈음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불안에 떨며 스위스의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헤세는 첫 부인과 이혼하고, 47세에 20살이 나 아래인 루트 벵거와 두번째 결혼을 하지만,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1년이 지나자 다시 별거생활을 시작하고 곧 법적 이혼을 한다. 50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작가는 스위스 남부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 몬타뇰라에 있는 새 집으로 이사하여 은둔자적 생활을 하며, 그의 세 번째 부인이 된 오스트리아의 예술사가 니논 돌빈과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이해심 많은 니논 부인의 따스한 애정과 배려로 헤세는 테신의 자연에 침잠하여 시와 소설을 쓰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만년의 안정을 찾아 조용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쉴러문학상], [라베문학상], [괴테문학상]을 비롯하여 1946년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헤세는 이듬해에 베른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으며,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인해 85세를 일기로 이 세상에서의 방랑을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