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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발자크 중편소설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

by 언덕에서 2024. 3. 5.

 

 

발자크 중편소설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Honore de Balzac.1799∼1850)의 중편소설로 1831년 발표되었다. 역자에 따라 <거친 가죽>으로도 번역되었다. 장편소설 <철학적 연구> 속에 포함된 소설이다. 저자는 물질적 쾌락을 좇는 시대의 경향을 풍자하고, 고학의 무력을 희화화하여 체관(諦觀)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 라파엘은 원대한 야심을 품고 부와 명예, 사랑을 갈구하지만 자신을 외면하는 비정한 사회 속에서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전 불가사의한 노인에게서 마법의 가죽을 얻게 되면서 새로운 운명을 맞는 라파엘의 인생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라파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주는, 그렇지만 욕망이 실현될 때마다 가죽을 소유한 자의 운명도 단축시키는 마법의 가죽을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이런 점에서 중편소설 『나귀 가죽』은 한 편의 ‘철학 소설’ 혹은 ‘테제 소설’로서 ‘생의 에너지’의 총량을 의미하는 ‘가죽’을 통해 ‘욕망을 위해 존재의 파멸을 부를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지속을 위해 욕망을 억제할 것인가’라는 선택이 불가능한 모순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작품은 19세기 전반 격변하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당대의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환상의 요소를 가미해 욕망과 모순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영화 [나귀 가죽],201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30년 10월의 어느 날 오후, 20대 후반의 젊은 귀족 라파엘은 유일하게 남아 있던 금화를 도박장에서 잃고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다.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전 수수께끼 같은 골동품상 노인에게서 신기한 힘을 발휘하는 나귀 가죽 한 조각을 건네받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게 된다.

 가죽을 손에 쥔 라파엘은 그것을 이용해 부자가 되고 다시 폴린을 만나 한동안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소원이 이루어질 때마다 가죽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그는 가죽이 줄어들지 않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가죽은 욕망 실현의 마력을 가진 것인데, 효력을 발휘할 때마다 작아지면서, 동시에 소유자의 생명까지도 단축시킨다.

 주인공은 그것에 의해서 실현된 현세적 행복에도 불구하고 폐병에 걸려 욕망을 품을 수가 없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는 애인의 육체적 매력에 의해서 각성된 욕망 때문에 죽는다.

 

영화 [나귀 가죽],2010

 

『나귀 가죽』은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1831년 ‘철학 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되어 발자크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발자크가 자신의 소설 작품 전체에 이름 붙인 '인간극'은 발자크가 현실의 세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 또 하나의 우주라 할 수 있는데 『나귀 가죽』은 '인간극'의 목록에서 ‘철학 연구’의 맨 앞자리에 배치되어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나귀 가죽』의 원제인 ‘La Peau de chagrin’에서 'chagrin'은 ‘가죽’이라는 의미 외에도 '슬픔, 번민'이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어 ‘슬픔이 갉아먹는 목숨’이라는 의미를 감추고 있다.

 개별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발자크는 자신의 작품 전체를 묶어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삼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하여 <인간극>을 출간한다. 이처럼 야심차게 기획한 <인간극>은 어느 정도 일관된 체계에 따라 인간사의 다양하고 특수한 양상을 탐구하고 이어 그 ‘결과’의 ‘원인’을 규명한다. 그다음,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입각해 보편적인 원칙을 세우는 세 개의 하위 연구, 즉 ‘풍속 연구’(66편) ‘철학 연구’(20편) ‘분석 연구’(3편)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총 89편의 작품이 들어 있다. 개별 작품들은 한 인물이 여러 작품에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의 재등장 수법’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독립적인 주제와 줄거리를 갖고 있다.

『나귀 가죽』은 ‘철학 연구’ 가운데 첫번째 자리에 배치되어 있는 작품으로 작가 자신이 <인간극>의 서문에서 “『나귀 가죽』은 거의 동양적인 판타지의 고리로 ‘풍속 연구’와 ‘철학 연구’를 잇는 역할을 한다. 거기에는 삶 그 자체가 모든 열정의 원칙인 욕망과 드잡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라고 밝힌다. 그처럼 이 작품은 당시의 정치경제 상황과 사회상, 당대의 지식 등 현실세계를 충실하게 반영한 동시에 현실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발자크는 평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의 기대를 안고 법학 공부를 시작하지만, 문학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야망을 품고 작가의 길을 걷는다. 홀로 다락방에 칩거하며 완성한 첫 작품 <크롬웰>에 대해 혹평이 쏟아지고 이후 발표한 작품들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자 인쇄업, 출판업 등에 뛰어들지만 사업 실패로 막대한 금액의 빚을 지게 된다. 그 후 다시 글쓰기에 매진,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여 수많은 걸작을 남기며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청년시절 그는 데카르트, 말브랑슈, 스피노자, 돌바크의 저서를 읽으며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취향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취향은 향후 발자크의 작품 세계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발자크는 1830년대에 이 작품을 비롯하여 신비스러운 색채를 띠는 여러 편의 철학 소설을 발표한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를 거친 뒤 상층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늘리는 데 기여할 뿐인 ‘7월 왕정’의 등장으로 일반 시민들이 허탈감에 빠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주인공 라파엘은 원대한 야심을 품고 부와 명예, 사랑을 갈구하지만 자신을 외면하는 비정한 사회 속에서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전 불가사의한 노인에게서 마법의 가죽을 얻게 되면서 새로운 운명을 맞는 라파엘의 인생 이야기이다. 이 가죽을 갖고 있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지만 욕망이 실현될 때마다 가죽이 오그라들면서 가죽을 소유한 자의 수명도 단축되는 것이다. 작품 제목이자 중요한 상징물인 나귀 가죽은 이른바 ‘생의 에너지’를 구현한 것으로, 발자크는 줄곧 이 생의 에너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인간은 ‘생의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에너지는 아껴 쓰면 오래 가고 무절제하게 쓰면 바닥나고 마는 것이다. 점점 크기가 작아지는 이 ‘슬픈 거죽’에는 금전욕과 명예욕, 성욕과 갖가지 탐욕 등 삶에 대한 욕망이 삶을 파괴시킨다는 역설이 담겨 있으며, 이 작품은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욕망을 잘 다스려 생의 에너지를 지혜롭게 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