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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발자크 중편소설 『샤베르 대령(Le Colonel Chabert)』

by 언덕에서 2024. 2. 14.

 

 

발자크 중편소설 『샤베르 대령(Le Colonel Chabert)』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Honore de Balzac.1799∼1850)의 중편소설로 1832년 발표되었다. 발자크가 청년기를 막 끝내고 본명으로 첫 소설 <올빼미당원>(1929)을 발표한 후, <인간극>을 구상하기 시작한 시기에 쓰여진 초기 대표 단편들이다.  삶의 총체성을 드러내어 풀어내는 그의 장편소설과 달리, 중·단편소설에서 발자크는 기이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과 반전을 빠르게 증폭시키며 삶에 대한 통찰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중편소설「샤베르 대령」에서는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자라는 익숙한 수식어 뒤에 가려진, 재기발랄한 이야기꾼 발자크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남편이 살아돌아온 걸 알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하는 ‘패로 백작부인’, 그녀의 계획을 알아채고 삶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 사회적 매장을 택하는 ‘샤베르’의 이야기다.

 출간 이후 ‘샤베르 신드롬’(그가 죽은 줄 알았을 땐 눈물을 흘리다가 막상 살아돌아오면 반기지 않는 심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반향이 컸다.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죽었다 생환한 인물이 다시 어떻게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지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샤베르 신드롬’(그가 죽은 줄 알았을 땐 눈물을 흘리다가 막상 살아돌아오면 반기지 않는 심리, 즉 환영받지 못하는 귀환 혹은 부활)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살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은 자이며, 이름도 호적도 없이 사는, 말 그대로 난파선의 잔해 같은 낙오자가 바로 샤베르 대령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10년대 루이 18세의 집권 초기, 한 법률 사무소에 추레한 옷차림의 노인이 찾아와 소송 대리인 데르빌과의 면담을 요청한다. 노인은 본인이 수년 전 아일라우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샤베르 대령이라고 주장한다. 배우자인 페로 부인과 연락이 닿지 않으니, 그녀가 상속받은 막대한 유산을 돌려받고 예전의 삶을 되찾는 일을 도와 달라며 간곡히 부탁한다. 마침 페로 부인의 소송 대리인이기도 했던 데르빌은 노인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심사숙고하며 둘의 만남을 주선한다.

 과거 샤베르 대령의 아내였던 이 여인은 현재는 귀족과 재혼해 아이들까지 두었다. 데르빌은 샤베르 대령이 죽음으로 해서 그녀에게 귀속된 재산과 사회적 명성 때문에 페로 백작부인이 남편의 생환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의심은 적중했다. 페로 백작부인은 남편이 자인은 물론 재산까지 깨끗이 포기하고 파리를 떠나도록 간계를 꾸몄기 때문이다.

 

1994년 이베스 안젤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샤베르 대령>.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샤베르 대령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여섯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우리 사회에는 사람을 존경 못하는 인간이 세 종류 있지. 그것은 성직자, 의사, 법조인이라네. 그들은 모두 검은 옷을 몸에 두르고 있네. 왜냐하면 아마도 모든 미덕과 모든 환상을 애도하기 때문일 거야. 세 사람 중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이가 소송대리인이네. 사람이 사제를 만나러 오는 것은 후회와 양심의 가책과 신앙에 끌려서 오게 되는 일이네. 그런 것이 이미 마음에 있으면 상대방의 흥미도 끌어서 그 사람은 위대한 인간도 될 수 있는 거지. 중재하는 사제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성직자의 의무에는 향락이 수반되네. 마음을 정화시키고, 죄를 사하고, 화해시키는 것이니까. 그런데 소송대리인인 우리는 똑같은 악한 감정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걸 보고 있지. 아무것도 그런 것들을 바로잡지 못하네. 우리 연구는 결코 정화시킬 수 없는 시궁창이라네. 내가 맡았던 사건들을 수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네! 두 딸에게 4만 프랑의 연 수입을 올리는 재산을 건네준 아버지가 자신의 두 딸한테 버려진 채 다락방에서 무일푼으로 죽어 가는 것을 보기도 했네. 유언장이 불태워지는 것도 보았지. 자식의 재산을 강탈하는 모친, 아내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남편, 연인과 평화로이 살려는 목적을 위해 자신에 대한 남편의 애정을 이용해 상대편을 미치거나 바보로 만들어 없애 버리는 여자들도 보았어. 사랑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한재산을 만들어 주겠다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목숨에 치명타가 되는 기호들을 심어 주는 여자도 보았네. 여기서 내가 보았던 걸 남김없이 자네에게 얘기할 수는 없지. 왜냐하면 재판소가 섣불리 손댈 수 없는 범죄들을 보아 왔으니까. 어쨌든 소설가가 고안했다고 여기는 끔찍함 따위는 모두 여전히 사실보다 못하지. 자네도 이제부터 참으로 한심한 그런 면들을 알게 될 걸세. 난 아내와 시골로 살러 가려네. 난 이제 파리가 무섭네.  --- 본문에서

 

 

 중편소설 「샤베르 대령」은 역사가로서의 발자크의 면모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실각 후 복고 왕정이 구축되던 혼돈과 격변의 시대를 맞이한 당시 프랑스의 ‘벼락 출세자’ 중 한 명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샤베르는 고아원에서 태어나 오직 자신의 힘으로 나폴레옹을 따르며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게 된 후 추락은 출세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되어 힘겹게 쌓아 올린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모두 잃게 된다. 그의 유산을 상속받은 후 재혼으로 신분 상승의 욕망을 실현한 페로 백작 부인은 그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발자크는 꿈, 명예, 사랑뿐 아니라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샤베르 대령의 실존적 좌절의 과정으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마다의 이상을 향해 발버둥치던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을 기록한다. 진정한 사랑과 고결한 성품을 상실해 가는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해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준다. 「샤베르 대령」은 잃어버린 정체성에 관한 헛된 탐구와 나폴레옹 제국이 몰락한 뒤 복고 왕정 밑에서 승승장구하는 부르주아의 위선과 이기심을 고발하는 역사적, 사회적 회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