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의 희곡

프리드리히 실러 희곡 『군도(群盜)』

by 언덕에서 2024. 2. 7.

 

프리드리히 실러 희곡 『군도(群盜)』

 

 

독일 시인·극작가 J.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1759∼1805)의 처녀작 5막 15장의 희곡으로 1781년 발표되었다, 다음 해 [만하임 극장]에서의 초연으로 일약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 시대의 대표작이 되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은 1770년에서 80년에 걸쳐 독일에서 일어난 문학운동이다. ‘질풍과 노도(怒濤)를 뜻하는 이 운동은 계몽주의 사조에 반항하면서 감정의 해방ㆍ독창ㆍ천재를 부르짖었으나, 당시 사회적 기반이 부족한 탓에 그 영역은 문학에만 국한된 채 단 기간에 소멸되었다.

 이 작품은 1871년에 발표한 프리드리히 실러의 대표희곡으로 순진하고 용감한 주인공 지방 영주 모어 백작의 장남인 카알은, 친동생 프란츠의 모략으로 말미암아 집에서 쫓겨나고 순정을 짓밟히게 된다. 이후 그는 마침내 속세에 반기를 들고 도적단의 두목이 되어 주먹과 실력으로 썩은 사회를 개혁하려 든다. 하지만 그의 이상은 약탈과 만행을 일삼는 부하들에 의해 훼손되고 카알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번민하며 극이 전개된다. 실러가 카를학원 재학 때부터 집필한 희곡이며, 통렬한 사회 비판, 자유를 향한 불타는 동경,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프랑켄 주(州)의 영주 막시밀리안 백작에게는 카를과 프란츠라는 두 아들이 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 중이던 큰아들 카를은 본래 자유분방한 성격이나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지금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동생 프란츠의 음모로 부친의 노여움을 산 카를은 집안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귀향하지 못하고 절망한다.

 그러던 중 사회의 악에 대항해서 세상을 바로잡자는 목적으로 대학생들이 도적단을 결성하고 카를은 그 도적단의 두목이 된다. 한편, 프란츠는 거짓으로 카를의 죽음을 알리고, 이 소식에 백작은 비관과 후회로 나날이 야위어간다. 그러자 프란츠는 아버지를 기아의 성(城)에 가두어 버리고 형의 약혼녀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거절당한다.

 카를 일당은 보헤미아 숲을 근거지로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 중 의적(義賊)으로서의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이익을 위해 약탈과 폭행을 자행하는 사람이 있어 카를은 괴로워한다. 결국 지방 군대에게 포위된 카를은 아슬아슬하게 포위망을 뚫고 도나우 강에 이르렀는데, 이때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고향으로 향한다.

 카를은 기아의 성에서 임종 직전인 부친을 구해내며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듣고 동생에게 복수하려고 결심하지만, 프란츠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약혼녀 아마리아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 카를은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맹세했던 부하들로부터 변절한 것에 대해 추궁당한다. 이에 아마리아는 카를의 명예 회복을 위해 죽기를 희망하며, 그는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찔러 죽인다. 그러나 카를은 도적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파괴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자수하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불안정한 청년시대의 모든 결점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천재 극작가의 수완이 도처에 엿보인다. 열렬한 자유의 정신, 속박에 대한 반항심은 청년 실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천성의 극작가임을 보여주는 구성의 묘와 긴장된 줄거리, 카를과 프란츠에게서 훌륭히 표현된 서로 정반대 되는 성격의 갈등, 또한 집단 묘사에 나타난 놀라운 수완 등은 세상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22세의 청년의 글솜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1782년 [만하임 극장]에서의 초연 이래, 그 무대상의 성공과 더불어 실러의 이름은 일약 독일에 드날리게 되었다. 이 책 제2판 면지(面紙)에 쓰여 있는 “제압에 저항하여”란 말은 이 작품의 혁신적 정신을 말하는 것이며, 첫머리에 인용된 “약이 이를 고치지 못하면 검(劍)이 이를 고친다. 검이 이를 고치지 못하면 불이 이를 고친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은 이 드라마의 기분, 즉 통렬한 사회비판, 자유를 향한 불타는 동경,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1782년 1월 13일 첫 공연, 독일 연극사의 새 이정표 세웠다.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문학의 2대 문호로 알려진 실러는 처음에는 법률과 의학을 공부했으나 처음으로 쓴 희곡 「군도」가 성공을 거두자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시·소설·희곡 등 많은 작품을 썼다.

 

 

「군도」는 1780년 완성된 작품으로 열렬한 정의와 자유에의 욕구, 낡은 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반항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국(小國)들로 분리된 봉건 체제의 독일 사회가 전제군주를 받들면서 벌어지는 질식할 듯한 상황에 대해 실러가 격정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군도 슈트름 운트 드랑 정신에 가장 투철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순진하고 용감한 주인공 카를은 자기의 친동생 프란츠의 모략으로 집에서 쫓겨나고 순정을 짓밟히게 되자, 마침내 속세에 반기를 들고 도둑단의 두목이 되어, 주먹과 실력으로써 썩은 사회를 개혁하려 든다. 그의 넘쳐흐르는 격정은 비열과 불의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고, 상대자가 왕후이든 승려이든 또는 자기 자신의 부하이든 그 자리에서 처치하고야 만다. 한편 그와는 정반대 되는 성격의 대표인 동생 프란츠는, 모략과 중상에 능할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도 서슴지 않고 희생시킨다. 그는 아버지를 속여서 형 카를을 모함하고 나중에는 아버지마저 쫓아 버리고, 자신이 영주가 되어 무서운 탄압정치를 시행한다.
 저자가 여기서 프란츠의 모델로 오이겐 공작을 암시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결국 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어서 프란츠는 갖가지 악행 끝에 무서운 보복을 받게 된다, 카를도 그 동기는 동정할 여지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은 인명을 살상하였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희생자 아말리아를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자기가 저지른 죄의 값을 받는 것이다. 자기 행위에 대한 벌을 받고, 파괴된 사회의 질서를 보상하려는 카를의 태도는 실러 자신의 독특한 도덕적 입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카를은 18세기 후반 독일 전역에 풍미했던 혁명적인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모순되고 부도덕한 사회의 악습을 뿌리 뽑을 목적으로 친구들과 도적단을 만들었다. 그 일당은 의적으로서 그들의 본분을 착실히 수행하지만, 나중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적 행위를 일삼고 있다. 카를이 원래의 목적을 상실해 가는 데 절망하며, 결국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취했던 절도(節度) 없는 불법 행위를 반성하고 혼란에 빠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