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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클라이스트 희곡 『깨어진 항아리(Der Zerbrochene Krug)』

by 언덕에서 2024. 6. 18.

 

 

클라이스트 희곡 『깨어진 항아리(Der Zerbrochene Krug)』

 

 

독일 극작가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1777∼1811)의 1막 희곡으로 1806년작이며, 1808년 바이마르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하고 1811년 책으로 간행되었다.

 네덜란드의 농촌을 무대로 하여 교활하고 욕심쟁이에다 호색가인 촌장 아담이 마을 처녀 에페에게 구애하는 현장을 들켜서 도망치다가 그 처녀 집의 가보인 항아리를 깬다. 마을에서 법정이 열렸는데, 재판관이자 범인인 아담이 처녀의 약혼자 루프레히트가 범인으로 고소당한 것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자기의 범행을 은폐하고 벗어나려고 하는 꼴이 익살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클라이스트는 평소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소재로 하여 희곡을 쓰고 싶어하였는데, 친구의 방에서 본 <깨어진 항아리>란 동판화가 계기가 되어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 비극과 희극의 차이는 있으나, 진범이 점차 폭로된다는 무대 위의 진행은 양자가 마찬가지이다. 클라이스트의 작품치고는 보기 드문 유쾌함과 명쾌한 사실적 정경이 특색이다. 클라이스트 사후인 1877년 작품이 재간행될 때 독일 화가 아돌프 멘첼의 목판화가 실렸다. 19세기 가장 뛰어난 독일 화가 중 한 명으로 거명되는 멘첼의 삽화들에선 이후 등장할 인상주의의 특징이 엿보인다. 클라이스트 생전에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서 영화와 오페라로 각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드라마 중 독일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담은 네덜란드의 어느 농촌 마을의 촌장 겸 재판장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대머리에다 추남인데,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정도의 상처투성이로 출근해서는 서기 리히트에게 어젯밤에 넘어져 다쳤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리히트가 그날 법률 고문관이 방문할 것이라는 말을 하자 아담은 그 동안 엉터리로 처리한 일들을 걱정했다.

 그때 고문관은 도착하고, 설상가상으로 그날이 재판하는 날이라 고문관 앞에서 재판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러던 중 아담이 고소인들 사이에서 마르테 부인을 발견하면서 그의 근심은 더욱 가중되었다. 사실은 마르테의 딸 에페에게 흑심을 품은 아담이 어제 저녁에 에페의 방에 잠입해 그녀의 약혼자인 루프레히트를 동인도 행(行)의 군대 징집에서 빼주겠다며 구애했었다. 그때 루프레히트가 갑자기 나타나 질투에 휩싸여서 그를 습격하자 당황한 아담이 도망치다가 항아리를 깼던 것이다. 마르테는 전후 사정을 모르고 루프레히트가 항아리를 깼다고 소송을 했다.

 아담은 고소당한 루프레히트를 진범으로 몰아 자기의 범행을 은폐하려고 하며, 이를 미심쩍어하는 고문관 앞에서 끝도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루프레히트는 아담이 떨어뜨린 가발을 증거물로 제시하게 되고, 겁을 먹은 아담은 어떻게든 루프레히트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려고 했다. 보다 못한 에페가 모든 것을 고백해 버리자 아담은 추한 몰골로 법정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이 작품은 1막으로 된 희극으로 1808년 바이마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클라이스트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유쾌함이 서려 있다. 아담은 농촌 마을의 촌장이며 재판장으로, 교활하고 욕심쟁이에다 호색한이다. 그는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우롱하며 그들의 눈을 속이고 엉터리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또한 약혼자가 있는 마을 처녀를 노려 그녀를 찾아가서 약혼자의 군대 징집 여부를 조건으로 해 사랑을 요구한다. 색정적인 모습과 함께 자신이 범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서 그의 추악한 본색을 엿볼 수 있다. 용어는 청신발랄하고 성격 묘사 또한 사실적인 뛰어난 명작이다. 1808년 전 1막인 이 희곡을 괴테 스스로가 연출하여 바이마르 극장에서 상연하였을 때 고전풍의 3막물로 고쳐 상연했기 때문에 극적 긴장을 상실했다는 나쁜 평을 받아 두 사람 불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독일 문학 사상 가장 대표적인 희극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상연되었다.

 

 

 이 작품은 클라이스트의 가장 성공한 코미디 중 하나로 소재가 된 건 장자크 르 보의 동판화였다. 그에 앞서 같은 모티프로 제작된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깨어진 항아리를 든 관능적인 소녀”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클라이스트는 이 에로틱한 소재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떠올렸다고 한다.
 희곡은 네덜란드의 작은 시골 마을, 후이줌의 법정에서 항아리를 깨트린 범인을 고소한 사건 중심으로 전개된다. “항아리를 누가 깼는가” 하는 질문에 고소 고발인의 진술, 피고소인과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항아리를 누가 깼는가 하는 질문은 곧 밤늦은 시각 마을 처녀 이브의 방에 있었던 낯선 남자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깨어진 항아리’는 사건의 증거인 동시에 위험에 처한 또는 이미 금이 간 이브의 명예에 대한 상징이다.
 오이디푸스, 고전 비극의 영웅이 그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진실에 다가가려 애쓰는 반면 클라이스트의 주인공인 작은 시골 마을의 그저 그런 판사 아담은 처음부터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은폐하고자 애쓴다. 재판을 지연시키고, 수시로 말을 바꾸고 이야기를 꾸며 대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 준다. 여느 때 같으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아담 판사의 일탈은 고문관 발터의 이례적인 방문으로 새 국면을 맞는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마을 판사 아담의 어수룩함이 빚어내는 희극성 이면에 진지한 주제, 즉 작가가 살았던 시기, 프로이센 법 제도의 과도기적인 상황과 혼란함을 바라보는 작가의 비판적인 시선이 투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