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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박조열 희곡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by 언덕에서 2024. 6. 8.

 

박조열 희곡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박조열(朴祚烈. 1930∼2016)의 희곡 작품으로 1967년 드라마센터에서 극단 <탈>에 의해 공연되었다. 가공의 허허벌판을 무대로 분단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다른 작품 <흰둥이의 방문>에 이어지는 추상 연극 계열의 작품으로, 사뮤엘 베케트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 있다.

 박조열의 작품은 독특한 성향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열정과 냉정 - 영원히 서로 마주 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극의 두 성향이 서로 우열을 다투지 않고 함께 그의 작품 속에 녹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을 하고 있으되 여유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힘은 열정과 냉정의 조화로움에 있다. 그의 작품에서 반짝이는 ‘소살’(笑殺)의 멋도 바로 거기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

 박조열은 한국의 대표적 극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힐 뿐만 아리라 연극 시평 논객으로서, 또한 대학 강단의 교육자로서, 또한 대학 강단의 교육자로서 우리 연극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토끼와 포수>, <오장군의 발톱>의 작가로 더 유명한 박조열의 위상은, 국내학자들의 연구논문과 석ㆍ박사 학위 논문 목록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과작인 박조열은 작품마다 고유한 희극정신과 새로운 양식의 시도로 우리 극 문학의 표현 영역을 넓혔다. 연극 논객으로서의 박조열은 1986년 공연법의 위헌성을 최초로 공개 제기하고, 이후에도 수년간 그 강도를 높여가면서 꾸준히 공연법 개폐운동을 주도함으로써 1991년의 공연법 개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한국극작워크숍을 통해서, 1980년대 말기부터 20년 가까이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했고, 많은 문하생들이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허허벌판 가운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A와 B가 골프케이스 비슷한 무기를 둘러맨 채 마주 서 있다. 그들 옆에는 의자가 하나씩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대장(大將)들이 와서 회담할 자리이다. 그들은 지루함을 덜기 위해 서로 욕설을 해 보고, 의자에 앉아 대장들의 위엄과 회담 흉내도 내 본다.

 얼마 후 C가 철조망을 가랑이로 타고 무언가 찾듯이 땅을 살피며 가까이 온다. 그들은 서로 C가 자기 측의 대장인 줄 알고 벌벌 떤다. 그러나 C는 성(性)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하고 주름투성이에다 빈사상태(瀕死狀態)에 이른 사람이다.

 C가 그들의 대장인 줄 알고 철조망 때문에 20여 년간 앉지도, 자지도 못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곧 A와 B는 그가 대장이 아님을 알고, 다시 방황의 길을 떠난다.

 C 때문에 그들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이뤄진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그들은 기다림에 지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 서로 기대고 잠이 든다. 그러는 사이 철조망은 그들의 뇌리에서 잊혀 있다.

 

 박조열의 작품은 분단 현실을 배경으로 군대 생활과 관련된 것이 많다. 박조열의 삶의 과정 자체가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으로서 민족 분단의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으며, 월남 후의 군대 생활이 그러한 체험 위에 겹쳐져 있다. 그에게 있어서 민족분단이라는 상황은 삶의 기반을 모두 붕괴시킨 비극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이데올로기와 민족 분단의 한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 가운데 분단 현실의 문제성을 다루고 있는 경우를 살펴보면, 자칫 관념적으로 빠질 수 있는 소재들을 지적이고 해학적인 방법으로 다루고 있어 예술적 성취를 거두고 있다. 그는 또한 풍부한 상상력과 희극성, 그리고 문제의식의 포착 등에서 뛰어나며 현대인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부조리적인 특성으로 잘 드러내 준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꼽히는 <오장군의 발톱>(1974)은, 막(act)을 사용하지 않고 15개의 장(scene)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극의 주제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군대의 비인간적인 메커니즘의 반대편에 순진성의 세계를 대비시킨 점이 특색이다. 그 외 <관광지대>(1963),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1966) 등이 있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A와 B가 언제 올지 모르는 대장을 기다리는 모습을 극화한 단막극이다. 1967년 극장 드라마센터에서 이효영 연출로 극단 [탈]이 초연했다. 무대 중간을 가르는 철조망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인물들의 모습이나, 등장인물 A, B, C가 서로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대사 등을 통해 이 작품이 남북문제라는 작가의 관심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작가가 작품 말미에 언급했듯이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부조리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연극 형식으로, 무의미한 대사와 행동, 인과관계를 무시한 플롯이 특징이다. 주로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드러낸 작품들을 가리킨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기다림에서 시작해 기다림으로 끝나는 반복 구조, 끈과 사탕을 다른 주머니로 끊임없이 옮기는 무의미한 행위, 이어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대화 등을 통해 부조리극의 특징을 적절히 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