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 희곡 『소』
극작가 유치진(柳致眞, 1905∼1974)의 3막 희곡으로 1934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작품이다. 일제하 가난한 농부 국서네 집의 소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근대희곡의 이정표를 세웠으며 식민지 치하 농촌의 구조적인 모순을 고발하고 농민들의 희망과 좌절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극예술연구회]의 공연극본으로 쓰인 작품이나 일제의 검열로 상연되지 못하고, 1935년 6월 일본 유학생들로 구성된 [동경학생예술좌]의 창립공연으로 동경의 축지소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이 작품은 그 해 11월 한국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지만, 검열에서 통과되지 못하여 1937년 2월 <풍년기>로 개제되어 [부민관]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표제인 ‘소’를 작품의 중심에 두고서 극 전체가 구상되었다는 데 있다. 유치진은 이 극으로 해서 일제경찰에 구속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리얼리즘으로부터의 후퇴라는 그의 작가경력의 큰 전환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 『소』에 있어 그 결말이 비극으로 끝을 마치게 하면서 그 극의 진행에 있어서는 전막을 통해서 관중을 웃음으로 포복절도시키려는 야심적 의도가 있었다."라고 작가가 말하였듯이 이 작품은 극 전체를 즐겁게 이끌어가는 인물들 간의 관계, 말똥이를 중심으로 한 이웃들의 우직하고 향토적인 익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픔을 느끼게 한다.
1935년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비극적 결말의 초판본 이후 작가에 의해 텍스트가 여러 번 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희극으로 만들어졌다. <토막>(1932) <버드나무 선 동네 풍경>(1933)으로 이어지는 유치진의 농촌극의 대표작으로, 사실주의 계열의 한국연극 가운데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수년 동안 가물다가 풍년이 찾아든 농촌 타작마당. 완고한 시골 농부 국서는 착한 아내와 두 아들 말똥이와 개똥이를 두고 살아가는데, 그에게는 사람 이상으로 아끼는 소 한 마리가 있다. 장님인 말똥이는 이웃집 귀찬이에게 장가를 들려고 안달을 하지만, 그녀는 갚을 수 없는 빚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로 팔려간다.
국서네가 귀찬이네 빚을 다 갚기로 하고 말똥이는 귀찬이에게 장가를 들게 된다. 이 자리에 마름이 와서 소작료로 추수한 몫을 전부 가져가려고 한다. 빚 주인은 소를 담보로 한다면 빚을 연기해 주겠다고 하나 국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막상 부채 연기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이미 그 소가 다른 사람에 팔렸음이 드러난다. 개똥이의 짓으로 알고 흥분한 말똥이는 개똥이를 친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이런 판에 마름이 나타나서 소를 끌고 가 버린다. 국서는 소리치고, 마름은 당연한 조치임을 주장한다. 국서는 마름에게 빼앗긴 소를 찾기 위해 재판을 걸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재판에 이겨 소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지주에게 집이며 세간까지 모두 빼앗기고 결국에는 소작논까지 떼일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재판은 무산되고 소와 빚이 상쇄되고 만다. 국서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울음을 한다.
▶제1막 : 국서네 농촌 마을은 오랜만에 풍년이 들어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타작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서는 소를 가진 것을 긍지로 삼고, 아들보다 더 애지중지한다. 둘째 아들 개똥이는 만주에 가서 일확천금을 모을 궁리를 하면서 소를 팔아 노자를 마련해 달라고 부모에게 조른다. 맏아들 말똥이는 마을 처녀인 귀찬이와 결혼할 사이이나, 그녀는 농사 빚 때문에 일본으로 팔려 가야 할 신세다. 그래서 소를 팔아 그 빚을 갚고, 귀찬이와 결혼시켜 달라고 조른다.
▶제2막 : 국서네는 결국 빚을 얻어 귀찬이네 빚을 갚아 주기로 하고 말똥이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개똥이는 소를 몰래 팔아 만주로 떠날 궁리를 한다. 국서네는 돈을 빌리기가 어렵게 되자, 결국 소를 팔기로 결심을 한다. 그때, 소장수가 그 소는 이미 팔리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고 말해, 국서와 말똥이는 개똥이를 의심하게 되고, 이에 집안에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그러나 개똥이는 소를 팔 생각은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때, 마름이 나타나 밀린 빚 대신에 소를 끌고 가 버린다.
▶제3막 : 귀찬이는 결국 일본으로 팔려가고, 국서는 소를 찾기 위해 마름과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로 하나, 소송을 해 봤자 소작인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면서 극도로 절망한다. 말똥이는 지주네 곳간에 불을 지르고 주재소에 붙잡혀 간다. 잡혀간 소는 마름을 들이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
이 작품은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 희곡이다. 일제 강점하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의 현실을 사실감 있게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학생예술좌]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신협] 등에 의해서 수차 상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소작농 국서의 가족은 소 한 마리가 유일한 재산이다. 이것을 몰래 팔아서 한몫 장만하려 드는 둘째 아들, 소를 저당 잡혀서 서울로 팔려갈 위치에 처한 이웃집 처녀를 구하고 나아가 그 처녀에게 장가들고 싶어하는 큰아들, 끝내는 밀린 소작료의 대가로 소를 몰아내려 드는 마름과의 옥신각신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끝내는 이 집안(그리고 마을 전체)의 비극으로 끝나는 이 작품은, 작가의 현실고발과 연극적 재치가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 민족항일기 농촌의 현실과 삶의 비참함 속에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소작인과 마름과의 관계에다 빈곤 때문에 도회지로 팔려가야 할 궁지에 몰린 동네 처녀, 마을을 탈출하여 새로운 기회를 엿보려는 아들, 서울서 타락하여 돌아온 동네여자 등 여러 등장인물이 전체적으로 매우 잘 짜여 있다.
소를 에워싼 농촌 생활의 비참한 현실을 이토록 리얼하게 표현한 작품은 드물다. 이 작품을 두고 일본 경찰이 작가를 매우 괴롭혔을 정도로, 소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절박함을 그려내고 있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 중 최초의 장막극으로 일제치하의 우리 농민의 암담한 생활상을 그렸다고 해서 상연이 저지되고, 작가가 검거되었다. 이 작품이 현실 고발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 연설조의 절규 같은 것은 없고, 페이소스와 유머가 적절하게 처리되어 있다. 즉, 비극적인 내용에 소극적인 요소를 부여하여 ‘웃음으로 장식된 비극’을 성립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더 애절하고 절실한 비극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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