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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이근삼 희곡 『국물 있사옵니다』

by 언덕에서 2024. 2. 2.

 

이근삼 희곡 『국물 있사옵니다』

 

 

이근삼(李根三. 1929∼ )의 희곡으로 1966년 발표되었다. 한 청년의 출세기를 통해 배금주의 풍조를 아이러니하게 그려 낸 작품이다. ‘국물도 없다’는 표현을 반어적으로 활용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향해 전진하는 인간상을 서사극적 요소로 다룸으로써 풍자 효과를 냈다. 1966년에 양광남 연출로 [민중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현실적 가치질서를 왜곡, 전도시켜 현대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는 허점을 풍자한 소극(笑劇)이다.

 이 작품을 대할 때 우리가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특징은 풍자와 아이러니, 그리고 다분히 문명비평적인 그의 희극정신이다. 희극성이 비극성에 비해서 다소 뒤지고 있는 우리나라 희곡문학계에서 그의 희극세계는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1966년 [동아연극상] 수상 기념공연작품으로 쓴 『국물 있사옵니다』는 평범한 회사원 김상범이 주인공이다. 상식적인 사고와 행위와 미덕에서 살던 그가 상식 대신에 인생의 지름길을 발견한다.

 

극작가 이근삼 (李根三 .1929 ∼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상범의 독백으로 극은 시작한다. 서른하나에 가진 것 없는 평범한 회사원 상범. 평생 연애라곤 해본 적 없는 그는
같은 동에 사는 여자 용자 씨가 수시로 관심을 표하지만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그는 일요일에 심심해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예배당의 장로가 회사 사장이었다. 그는 덕분에 사장과 꽤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

 더군다나 그는 사장과 우연한 인연 덕분에 한 번에 진급하게 된다. 술에 취해 사고를 친 직원을 해고시키면서,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말단 사원 상범을 대신 정식 직원에 올려놓은 것이다. 진급도 하고,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그는 운 좋게도 사장과 친해지며 스파이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용자와 용자의 어머니는 저녁에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한다. 마침 그의 형 상학이 와있었는데, 보려고 했던 영화가 자신이 봤다는 이유로 눈치 없이 형을 보내 버린다.

 뭣도 모른 채 용자와 결혼을 꿈꾸며 김칫국 마시던 그는, 형으로부터 용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거기다 결혼 준비로 바쁘다면서 아버지 환갑잔치 준비와 비용 등을 모두 떠맡겨버린다. 용자를 뺏겼다는 상실감에 그는 흑화 한다. 평생 어리숙하게 손해만 보고 무시당했던 그는 이제 '새 상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장과의 친분을 이용하며 하나씩 쳐내기 시작한다.

 경리과장이 회삿돈을 가불하고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하면서 그가 잘리고 대신 경리과장 자리에 앉게 된다. 옆집 남자 탱크의 아내 현소희가 탱크를 기다리고 있자, 관리실에 전화를 해 그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상심한 현소희를 집으로 들여 위로를 하며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사장의 며느리이자 경리인 과부 성아미와 박전무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것을 이용해 더 큰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출세 길도 열리고, 여자도 생긴 상범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 날 집으로 가보니 현소희와 탱크가 자신의 집에서 뒹굴고 있고, 현소희는 이미 상범 몰래 혼인신고를 하고 이혼하고 싶으면 위자료를 요구한다. 탱크는 소희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큰 거액을 요구하고 회사에 강도인 척 잠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지게 해 준다는 건 현소희를 죽였다는 것이었고, 이에 상범은 사장의 소총을 들고 따라나가 그를 죽인다. 상범은 강도로부터 회사와 돈을 지켰다는 명예를 얻어냈고, 본격적으로 성아미에게 본심을 드러내며 협박을 한다.

 결국 성아미와 결혼을 하고 이사로 승진한다. 동생 상철도 새 상식을 습득한 덕에 행정 직원이 되었고, 큰 형은 국민학교 선생으로 내려왔지만 가정에 행복을 느낀다. 모든 걸 가진 상범은 그럼에도 행복하지가 않다. 성아미의 임신 소식은 자신의 아이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신혼여행 도중 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사장의 지시에, 그는 성아미에게 부산 대신 먼저 서울로 올라가 있으라고 한다. 그의 예상대로 그녀는 박 전무에게 전화를 걸고, 상범은 복잡한 심경으로 부산행에 몸을 싣는다.

 

 

 주인공 김상범의 변화는 개발이라는 집단적인 열망 속에 빠르게 변화하던 1960년대 시대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처음에는 소심하고 어리숙한 젊은이로 등장한다. 하지만 우연히 출세하는 법을 깨달은 뒤로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 된다. 특히 그의 처세술은 양심과 도덕규범을 쉽게 위반하게 만든다. 결국 김상범은 상대방 약점을 이용해 회사 중역 자리까지 오르지만 내면은 이를 데 없이 공허한 인물로 전락한다.

 이근삼 특유의 희극적인 언어를 바탕으로 서사극 요소가 두드러지면서 연극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백이나 설명 역의 해설을 통해 사건 중간 과정과 인물의 심리를 보조 설명한 것은 전 시대의 리얼리즘 극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방식이다. 이렇게 「국물 있사옵니다」는 서사극, 소극, 우화극 요소를 두루 활용해 개방적이고 익살스러운 사회 풍자극을 완성한다. 1966년 5월 극단 [민중극단]이 양광남 연출로 초연했다. 1998년 [이근삼 희극제]에서 정진수 연출로 [명보아트홀]에서 재공연 했다.

 

 

 주인공 김상범은 상사를 모함함으로써 출세가도를 달리며 마침내는 상무가 되지만, 만족감보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김상범의 저돌적인 행동은 외면상으로는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실은 현실의 비극성과 허무감이 더 짙게 감돈다.

  “장면마다 전개되는 희극도 즐겁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인생의 비극성을 음미해 주기 바란다.”는 그의 말은 곧 그이 작가정신이기도 하다.

  이근삼의 작품에 비상식적인 인물이나 의식적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소극적(笑劇的)인 요소가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일 수 있다. 작자는 이 극에서 독특한 화술과 간략한 무대장치로 빠른 템포를 유지, 세태풍자극이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을 극복하였다. 주인공 김상범은 평범한 사회인으로 정직하게 살아오는 동안 늘 실패와 손해만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사장의 눈에 들게 되자, 출세의 지름길이 있음을 깨닫고 과감히 행동을 개시한다. 작자는 김상범의 어처구니없는 생활태도 속에서 현대인의 비애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