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김주영 단편소설 『도둑견습』

by 언덕에서 2024. 6. 3.

 

김주영 단편소설 『도둑견습』

 

 

김주영(金周榮. 1939~)의 단편소설로 1975년 [한국문학]지에 실린 작품이다. 김주영의 작품은, 농촌을 배경으로 할 때는 토속적인 공간을 무대로 하여 향토색 짙은 언어와 현장감 있는 비어·속어·해학을 구사하고, 도시를 배경으로 할 때는 소외된 인간에 대한 니힐한 묘사와 동물적인 환경 속에서의 생존에 대한 진한 회의, 이를 통한 비극적인 정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도둑견습』은 이상한 부자간의 이야기다. 서울 변두리의 폐품 집적소, 폐차 안에서 의붓아버지의 존재에 불만을 갖는 아들이 의붓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희한한 가족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고철장수인 의붓아버지는 빈 집에서 물건을 훔쳐 파는 행위로 생계를 유지한다. 아들 역시 의붓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도둑질을 배우고 쇠꼬챙이로 사람을 위협하는 짓을 서슴없이 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폐품 집적소의 최 씨에 의해 폐차가 철거되고 집을 잃는 극한 상황에서도 의붓아버지가 가족 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들은 감동한다.

 

소설가 김주영 ( 金周榮 . 1939~)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 이름은 이(李)원(源)수(洙), 웬수가 아닌 원수다. 어머니는 내 이름이 좋은지 시도 때도 없이 '이 원수야, 이 원수놈아'라고 즐겨 부른다. 올해 나이는 대략 열 서너살, 문교부 혜택을 받을 사이는 없었지만 눈치 하나는 왔다다. 특별히 배운건 없어도 어딜가더라도 내 몸 하나는 건사할 자신이 있다. 구두통 하나 달랑 매고 '딱새, 따악새'를 외치고 다녀도 되고, 만원버스에 올라타 볼펜을 팔아도 된다. 차안에서 노래를 '미아리 눈물 고개‘를 한 곡 뽑고 나면 일이백원은 쥐고 내리기 마련이다.

 친아버지는 술에 취해 돌아가셨다. 친아버지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지금 세 사람의 거처가 되고 있는 폐차 마이크로버스를 확보한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언제나 호시탐탐 어머니를 노리던 고물상 최주사가 어머니를 데리고 여인숙에 가서 하룻밤 자는 일을 눈감아 준 일이 전부다,

 새로 어머니 옆을 차지한 인간은 '케이에스 렛데루 왕자표 X'가 가장 큰 자랑거리인 강씨로 저녁마다 어머니와의 시끄러운 방사로 나의 단잠을 깨우거나 잠들었는지 확인한다고 눈두덩을 후벼파기 일쑤인 고물장수 강두표다. 강씨는 말이 고물장수지 사실은 낮도둑이다.

 그런 그가 도둑도 생업이라고 의붓아들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겠다고 해서 나는 할 수 없이 따라나섰다. 내 역할은 망잡이다. 그 사람이 빈집에 들어가면 문밖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남자가 오면 "사이다병 삽니다아", 여자가 오면 "헌 대야 삽니다아"를 외치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의붓아버지는 아이들이 타고 노는 큰 철마를 몰래 해체하여 고물로 팔겠다고 한다, 이를 고깝게 여긴 나는 '찰슨 브론슨 같이 어깨가 딱 벌어진 두 사나이'가 나타났는데도 암호를 외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의붓아버지를 때렸고 이후 그 날 의붓아버지는 도망치느라 바빴다. 나는 리어카 속에 들어 있던 조그만 쇠꼬챙이 하나를 꺼내들고 두 사내를 향해 돌아서며 배 째라며 들이댔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그 사내 둘이 슬그머니 돌아선 것이다. ‘시골장터에 붙들려온 고슴도치라도 구경하듯’ 쇠꼬챙이를 치켜든 나 주위를 빙빙 돌며 웃다가 사라졌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고물리어카와 가위를 물려받은 나는 철컥철컥 가위질 하며 골목을 누비면서 “사이다병, 콜라병, 헌 양재기 삽시다”하고 외치는 강단이 생겼고, 심지어 대문을 열어놓고 낮잠에 빠진 식모를 위협해서 고철로 쓸 만한 것을 다 털어내 올 배짱도 생겼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자, 그동안 아버지의 서슬에 눌려 어머니를 어떻게 해보지 못하던 최가 놈이 보금자리인 마이크로버스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우리 세 식구가 기거할 집이 헐리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머니를 음흉한 최가 놈에게 넘겨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거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에 감동하였고 또한 자랑스러웠다. 나는 그때 주머니에 쑤셔넣었던 쇠꼬쟁이를 꺼내서 저쪽 하늘 멀리 멀리로 던져버렸다. 이 따위 거추장스럽고 비겁한 것쯤은 가지지 않아도 최가 하나쯤은 거뜬하게 때려누일 수 있다는 자신이 불끈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야 이 새캬, 이리 나오라구, 썅!”

 나는 이렇게 소리지르며 최가 놈을 향해 사냥개처럼 달려나갔다.

 

 

 폐차된 버스 안에는 어린 ‘나’, 어머니, 의붓아버지가 산다. 이 버스는 어머니가 최가에게 몸을 바친 결과로 얻은 것이다. 아주 가난하여 사생활이라고는 조금도 보장되지 않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는 틈만나면 나의 존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고 나는 이를 그냥 받아들인다. 어머니는 자신의 관계하는 모습을 자식에게 들켜도 꽤나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조금 있다 다시 시도하자고 의붓아버지에게 제안할 뿐이다. 이러한 본능적 삶의 공간은 이들 가족에게는 기본적인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절실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마저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어머니의 몸을 탐하고자 하는 최가의 추악한 본능과 도둑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나’의 본능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의붓아버지와 ‘나’를 도둑질의 길로 몰고 가고 그들에게 도둑질은 윤리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밑바닥 인생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수단일 뿐이다. 결국 마지막에 폐차도 빼앗기고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내려앉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밑바닥 인생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자긍심을 얻게 된다. 욕망에 사로잡혀 더러운 거래를 요구한 최가의 제안을 거절한 데서 ‘나’는 쇠꼬챙이를 던져버릴 수 있었고, 비겁한 거래에 대항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하층민들의 타락한 삶을 통해 1970년대 사회를 엿보는 문제작! 「도둑 견습」은 도시 변두리의 ‘폐품 집적소’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밑바닥 인생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작가는 도시의 쓰레기가 모이는 ‘폐품 집적소’를 통해 하층민들의 빈곤한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빈부 격차가 극심한 당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또 고철을 훔쳐 생계를 유지하는 의붓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도둑질을 배우는 아들을 통해 현대인들의 물질중심적인 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을 빼앗기는 극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끈끈한 가족애는, 도둑질을 하는 이들의 행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한다. 김주영 특유의 날카롭고 통쾌한 풍자가 잘 녹아 있는 「도둑 견습」은, 고등학교 작문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