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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주영 단편소설 『도둑견습』

by 언덕에서 2024. 6. 3.

 

김주영 단편소설 『도둑견습』

 

김주영(金周榮. 1939~)의 단편소설로 1975년 [한국문학]지에 실린 작품이다. 김주영의 작품은, 농촌을 배경으로 할 때는 토속적인 공간을 무대로 하여 향토색 짙은 언어와 현장감 있는 비어·속어·해학을 구사하고, 도시를 배경으로 할 때는 소외된 인간에 대한 리얼한 묘사와 동물적인 환경 속에서의 생존에 대한 진한 회의, 이를 통한 비극적인 정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도둑견습』은 이상한 부자간의 이야기다. 서울 변두리의 폐품 집적소, 폐차 안에서 의붓아버지의 존재에 불만을 갖는 아들이 의붓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희한한 가족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고철장수인 의붓아버지는 빈 집에서 물건을 훔쳐 파는 행위로 생계를 유지한다. 아들 역시 의붓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도둑질을 배우고 쇠꼬챙이로 사람을 위협하는 짓을 서슴없이 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폐품 집적소의 최 씨에 의해 폐차가 철거되고 집을 잃는 극한 상황에서도 의붓아버지가 가족 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들은 감동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원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구두를 닦고 버스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 수 있는 강한 생존력을 지닌 아이다. 그의 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가 남긴 유산은 가족이 거처로 쓰는 폐차 마이크로버스뿐이다.

 이원수의 어머니는 고물상 최주사와 관계를 맺은 적이 있고, 이후 강두표라는 고물장수와 동거하게 된다. 강두표는 이원수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며 생업에 끌어들인다. 이에 따라 강두표가 도둑질할 때 이원수는 집 밖에서 망을 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어느 날 강두표는 아이들이 타고 노는 철마를 훔쳐 고물로 팔려고 한다. 이를 반대하는 이원수는 강두표의 계획을 돕지 않고 암호도 외치지 않는다. 이 일로 강두표는 외부 사람들에게 제재를 당하고 도망친다. 이원수는 그들을 막아보려고 쇠꼬챙이를 들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그를 우습게 본다.

 강두표가 아프면서 그동안 그의 서슬에 눌려 있던 최주사가 마이크로버스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원수는 의붓아버지 강두표가 비록 결함이 많지만 모자를 위해 노력해 왔음을 깨닫고 감동받는다. 이원수는 쇠꼬챙이를 하늘로 던져버리며 내면의 강함과 자부심을 키운다.

  “야 이 새캬, 이리 나오라구, 썅!”

 나는 이렇게 소리지르며 최가 놈을 향해 사냥개처럼 달려 나갔다.

 

 폐차된 버스 안에는 어린 ‘나’, 어머니, 의붓아버지가 산다. 이 버스는 어머니가 최가에게 몸을 바친 결과로 얻은 것이다. 아주 가난하여 사생활이라고는 조금도 보장되지 않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는 틈만 나면 나의 존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고 나는 이를 그냥 받아들인다. 어머니는 자신의 관계하는 모습을 자식에게 들켜도 꽤나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조금 있다 다시 시도하자고 의붓아버지에게 제안할 뿐이다. 이러한 본능적 삶의 공간은 이들 가족에게는 기본적인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절실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마저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어머니의 몸을 탐하고자 하는 최가의 추악한 본능과 도둑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나’의 본능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의붓아버지와 ‘나’를 도둑질의 길로 몰고 간다. 의붓아버지와 나에게 도둑질은 윤리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밑바닥 인생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수단일 뿐이다. 결국 마지막에 폐차도 빼앗기고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내려앉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밑바닥 인생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자긍심을 얻게 된다. 욕망에 사로잡혀 더러운 거래를 요구한 최가의 제안을 거절한 데서 ‘나’는 쇠꼬챙이를 던져버릴 수 있었고, 비겁한 거래에 대항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 소설은 하층민들의 타락한 삶을 통해 1970년대 사회를 엿보는 문제작이다. 「도둑 견습」은 도시 변두리의 ‘폐품 집적소’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밑바닥 인생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작가는 도시의 쓰레기가 모이는 ‘폐품 집적소’를 통해 하층민들의 빈곤한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빈부 격차가 극심한 당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또 고철을 훔쳐 생계를 유지하는 의붓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도둑질을 배우는 아들을 통해 현대인들의 물질중심적인 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을 빼앗기는 극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끈끈한 가족애는 도둑질을 하는 이들의 행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한다. 김주영 특유의 날카롭고 통쾌한 풍자가 잘 녹아 있는 「도둑 견습」은 고등학교 작문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