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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영하 단편소설 『흡혈귀』

by 언덕에서 2024. 5. 31.

 

김영하 단편소설 『흡혈귀』

 

 

김영하(金英夏. 1968~ )의 단편소설로 2010년 [문학동네] 간행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게재되었다. 남편을 흡혈귀라고 믿는 여자의 이야기로 흡혈귀라고 의심받는 남자의 시니컬한 통찰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소설가인 ‘나’는 어느 날 장문의 편지를 받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이후 편지를 보낸 김희연이라는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 내용을 글로써 소개한다. 김희연은 대학 재학 중에 그녀가 ‘늪’이라고 이름 붙인 바람둥이 남자를 만난다. 그러나 그의 무책임한 행동에 염증을 느낀다. 이후 우연한 술자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불과 석 달 만에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그녀는 남편의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행동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남편이 흡혈귀라는 놀라운 결론을 얻는다. 이상이 편지의 내용이다. 편지를 다 읽은 소설가 ‘나’는 ‘사실은 편지를 보낸 그녀가 흡혈귀가 아닐까’하는 의미심장한 짐작을 한다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여자 김희연은 지금까지 네 명의 남자를 만났다. 첫 번째는 대학교 2학년 때 평범한 남자를 만났다. 이 남자는 있는 그대로 보고 만났다.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곧 지겨워져 헤어졌다. 두 번째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난다. 영화를 만드는 운동권 출신의 남자였다. 운동권 사람은 경찰에 쫓겨 도망 다니면서 희연이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을 하는 영웅처럼 보였다. 김희연은 이 남자를 사랑했다. 이 남자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운동권 출신의 영화학도라는 가상적인 인물을 좋아했다. 없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가상적인 인물이 바로 흡혈귀이다. 이 가상의 인물이 김희연의 모든 것을 다 빨아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딴 여자와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다음 여자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 만난 남자는 평론가이자 시인이고 시나리오 작가인데, 김희연은 이 남자를 사랑했다. 이 남자가 자신이 할 수 없는 문학작품을 쓸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김희연은 자연인으로서의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이 남자에게 덧 씌워진 ‘문학가’라는 허상을 사랑했다.

 김희연은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은 흡혈귀이었다. 김희연은 갑자기 자기 남편이 흡혈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김희연은 이 순간 남편에게 씌웠던 ‘문학가’의 허상을 벗기고, 흡혈귀라는 허상을 덧씌운다. 김희연은 이 남자와 결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자살을 하거나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희연이 만난 네 번째 사람은 작품의 화자인 작가이다. 김희연은 화자가 쓴 장편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살 안내자를 화자(작가)라고 혼동한다. 김희연은 화자에게 자살 상담을 하기 위해서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한다. 화자인 작가는 본의 아니게, 자신이 쓴 작품의 주인공으로 여겨져, 김희연에게 ‘흡혈귀’가 되었다.

 

 

 김희연은 사람을 만날 때 자연인 그대로의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본래의 사람 위에 자신이 매력을 느끼거나, 위협을 느낄만한 가상의 인물을 덧씌워서 그 사람으로 잘 못 본다. 가상의 인물은 사실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허상’이다. 이런 허상은 없는 것이면서 있는 것보다 강하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을 대신해서 ‘김희연’을 지배한다(스스로 지배당한다). 이렇듯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된 ‘가상의 인물’이 바로 흡혈귀이다. 이런 것이 사람의 생명과 정신과 시간을 빼앗아 간다. 이렇게 되면 이 허깨비에게 누구나 파괴당하고, 이혼, 살인, 자살하게 된다. 김희연이 만난 사람 중에서 흡혈귀가 붙지 않은 사람은 대학에 들어가서 만난 첫 번 째 남학생이다. 매력이 없고, 재미가 없던 그 사람 하나뿐이다. 그 남학생이 자연 그대로의 본래의 사람이다.

 

 

 인간은 본래의 사람을 볼 때, 실망한다. 흡혈귀가 붙어 있는 사람을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매력이 곧 마력이다. 진정한 사람을 만나려면 ‘매력’이 떠났을 때의 사람(본래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

 화자인 작가는 김희연의 남편이 아니라, 김희연이 ‘흡혈귀’라고 생각한다. 화자(작가)가 생각하는 김희연은 실제 만나본 여자가 아니고, 편지와 전화 통화를 통해서 상상한 여자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김희연’은 가상의 인물이다. 따라서 작가에게 진정한 ‘김희연’이라는 여자는 없다.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만들어진 김희연이라는 여자 역시 ‘가상의 인물’로서, 작가에게는 김희연이 ‘흡혈귀’이다. 화장하고, 성형하고, 패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행위는 흡혈귀적 행위의 변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