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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나도향 단편소설 『자기를 찾기 전』

by 언덕에서 2024. 5. 27.

 

나도향 단편소설 『자기를 찾기 전』

 

나도향(羅稻香. 1902∼1926)의 단편소설로 1924년 [개벽] 3월호에 발표되었다.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전향한 작품이다. 나도향은 1922년 현진건, 홍사용, 이상화, 박종화, 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도향의 초기작은 대체로 환상적, 감상적이며 낭만적인 경향을 보인다. <젊은이의 시절>,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등이 그것인데 특히 이 계열에서는 우발적인 생충동(生衝動)이 강하게 드러나며 환상적인 처리가 돋보인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신변잡기적 성격이 지나쳐서 수식의 과잉, 감정 편향성 등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자연주의적 경향의 작품과 계급주의적 색채는 서로 혼합되어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계집 하인>, <벙어리 삼룡이>, <뽕>, <지형근> 등 후기 그의 작품이 대체로 이 경향에 속한다. 이 시기 작품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등장인물의 신분 변화를 들 수 있는데, 행랑 자식, 하녀, 머슴, 창녀, 벙어리 등 사회적 하층 계층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실의 어두운 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사회적 하층 계급의 삶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이들 소설은 타고난 운명의 문제, 본능의 문제(성), 가장의 문제(결손 가정), 가난으로 대표되는 현실의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등장인물의 행위는 이러한 작가의 관심이 인물 형상화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가난으로 인한 성(性)의 매매 현장에 대한 주목은 인간 내면에 잠재한 야수성에 대한 천착과 아울러 성(性)을 타락시키는 주체로서의 사회에 대한 고발 의식가지도 확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는 자연주의적 인생관과 계급주의적 세계관의 연결 고리로 파악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분소 여공 수임(守任)은 순진한 소녀로, 사생아 모세를 낳으면서부터 더한층 생활고에 시달리고, 모세는 장질부사로 죽는다.

 그 뒤부터 그녀에겐 이제까지 굳게 믿었던 예수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모세의 아버지에게서까지 버림받는다.

 소리를 지르고 사면을 돌아볼 때, 하얀 눈 위에 밝은 달이 차디차게 비치었는데, 고요한 침묵으로 둘린 가운데 다만 자기 혼자 외로이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그렇게 분명히 외로운 가운데서 자기를 찾아내기는 지금이 자기 일생에 처음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자기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나도향은 1902년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의 13남매 중 장남이었다. 조부가 한방 의원이었고, 부친이 새로운 의학을 공부한 의사 집안이었던 탓에 집안에서는 그를 의사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 뜻대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나도향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 문단에 이름이 높았던 최남선이나 춘원 이광수처럼 유명한 문필가가 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자연히 그는 학과 공부보다는 문학 수업에 온갖 정열을 기울였다. 시와 소설을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작품을 써서 여기저기 투고하기도 했다. 문학에의 열병에 빠진 그는 마침내 의학전문학교도 중퇴하고 몰래 일본으로 건너갔다. 문학 수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된 집에서 학비를 보내주지 않아 할 수 없이 귀국하고 말았다.

 약관 20세부터 세상에 단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해 21세 되던 1922년에 [백조]에 <젊은이의 시절>이란 작품을 실어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같은 해에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환희>를 연재해 역시 호평받았다. 초기 작품은 대체로 환상적이고 달콤한 분위기를 풍기는 낭만주의 계열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낭만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현실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 작품으로 나아갔다. 24세 때인 1925년 그의 대표작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 등의 우수한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같은 해에 문학 수업을 위해 다시 한번 일본에 건너갔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했다. 다음 해인 1926년 25살의 나이에 급성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자기를 찾기 전」에서는 주인공인 제분소의 여공 수님이가 순진한 소녀의 몸으로 사생아 모세를 낳는다.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하게 된 생활고에다가 모세는 장질부사로 병원에서 죽게 된다. 수님이 이제까지 그렇게 굳게 믿었던 예수도 아랑곳없었고 드디어는 모세 아버지에게까지 배반당한다. 이때 수님이는 비로소 자신을 찾는다. 주인공 수님이가 바로 나도향이라고 믿을 수 있을 때 지금까지의 센티멘탈한 낭만 세계에서 벗어나 직접 현실과 대결하여 리얼하게 묘사하는 자기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하튼 자기 세계를 분명히 찾아든 나도향은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의사의 고백><계집 하인> 등을 통해서 그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것은 <계집 하인> 등에 나오는 양철집이란 식모의 심리 묘사만 보더라도 충분히 수긍된다. 여기서 보여주는 세련된 심리 추구는 플로베르나 모파상의 사실법에 별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어리석음의 생리가 가장 알맞게 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만을 갖고 나도향 문학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어쨌든 나도향의 문학에서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수법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