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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일남 단편소설 『서울 사람들』

by 언덕에서 2024. 6. 1.

 

최일남 단편소설『서울 사람들』

 

최일남(崔一男. 1932∼2023)의 단편소설로 1975년 1월 [한국문학]에 발표되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진 이 시기에 이른바 '출세한 촌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토착어의 풍부한 구사와 건강한 해학성을 바탕으로 삼은 개성적인 문체로 표현하였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고향의 모습과 그 고향의 희생을 딛고 출세한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등이 그의 소설의 주류를 이룬다.

 최일남은 1980년대 들어 해직의 아픔을 겪고 1984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직하면서 <고향에 갔더란다>(1982) <거룩한 응달>(1982) <서울의 초상>(1983) 등에서 날카로운 역사적 감각,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면에 드러내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함축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이 아니라 해학적인 문체를 살려 건전한 상식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최일남이 추구하는 바와 같이,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인간의 가치 역시 정비례일 수 없는 문명 비판론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잃어가는 자연에의 향수를 그리면서, 또 이 시대에 순박한 향수를 추구하는 자체가 얼마나 허위스러운가를 비판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들이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모두 시골 출신의 고교 동창생들로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하여, 이제는 어엿한 직장과 가정을 가진 30대 후반의 사내들이다.

 어느 날 TV상회를 하는 최진철의 제안으로 그들은 3박 4일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서울 생활이 안정될수록 짙어가는 것은 고향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들은 무작정 시외버스 터미널에 모여 가장 먼 버스를 타고 나흘 동안의 정처 없는 시골 생활을 경험하기로 했다. 잠시 동안이나마 토장국과 호박쌈을 먹던 옛 농촌 생활로 돌아가 보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어렵게 시간을 마련해, 서울에서 네 시간가량 걸리는 읍내로 간다. 목적지 없는 여행이다. 그들은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들떠 있다. 다시 읍내에서 산골로 가는 막차에 오른다. 해가 저물어 산골에 도착했으나 여인숙 하나 없다. 그들은 이장 집으로 찾아가 숙식을 부탁한다. 그들이 받은 저녁 밥상은 김치와 우거짓국의 단출한 반찬이다.

 그들은 막걸리로 반주하며 허겁지겁 먹는다. 모두들 옛 고향의 맛이라고 좋아한다. 남포불을 밝히고 고향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그들은 점점 답답해진다. 막걸리 대신 찬 맥주 생각을 하고, 커피가 지겹다던 김성달은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진다. 그들은 결국 예정된 날을 앞당겨 상경을 하고, 그 길로 다방에 들러 커피 한잔, 다시 생맥주 한잔씩을 나누고 귀가한다.

 

 일인칭 화자에 의해 서술되는 이러한 여행담은 "출세한 촌놈"들의 귀향기라 할 만하다. 그들은 모두 도시 생활자이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경험한 고향의 체취는 이내 이질적인 것, 비록 나의 뿌리이지만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나'는 우리들의 등뼈 밑에 매달려 있는 ‘속물의 꼬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고 그들의 삶이다. 그들이 속물이라면 대부분의 도시인들 역시 그러한 셈이며, 그것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고향을 상실해 버린 70년대 도시인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므로 고향의 기억을 찾아 나서는 여행 끝에는 어김없이 환멸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이며, 결국 고향의 기억은 이미 그들 안에서 흔적만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쓸쓸한 고백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땔나무를 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도시의 직장인으로 변모한 '촌놈'들, 70년대식 장년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졌던 이 시기에 이른바 '출세한 촌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토착어의 풍부한 구사와 건강한 해학성을 바탕으로 삼은 개성적인 문체로 표현하였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고향의 모습과 그 고향의 희생을 딛고 출세한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등이 그의 소설의 주류를 이룬다. 도시민들의 삶 속에 내재하고 있는 문명화 사회의 각박함과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요소들이 이 한 편의 작품에 그려져 있다. 또한, 도시민의 삶의 허위성과 현실의 냉혹한 사실은, 문명화된 인간의 가치관을 얼마나 잘못 이끌어 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갖는 문학적 의의는 인간과 괴리된 이상, 혹은 삶의 건조함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등을 잘 구사하고 있다. 자체적인 문학의 주류에서 살펴본다면, 1970년대 이후 도시 산업화 사회의 몰가치성과 도시 소시민의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