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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무영 단편소설 『제1과 제1장(第1課 第1章)』

by 언덕에서 2024. 5. 24.

 

 

이무영 단편소설 『제1과 제1장(第1課 第1章)』

 

 

이무영(李無影. 1908∼1960)의 단편소설로 1939년 [인문평론]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작품 <흙의 노예>에 이어지는 일종의 연작 소설로, 이무영 자신의 자전적 체험을 기록하고 있다.

 이무영은 1939년을 고비로 하여 인생과 문학의 일대 전환을 꾀하여 서울을 떠나 농촌인 경기도 군포(軍捕)로 가서 직접 농업에 종사하면서 이 작품을 발표하여 본격적인 농민작가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이어 <속 제1과 제1장(흙의 노예)>, <농민> 등을 발표하여 농민문학의 선구자로서 농촌 소설을 집필해 나갔다. 6ㆍ25 전쟁 이후에는 그 농촌 세계가 도시를 제재로 한 시정소설(市井小說)로 바뀌어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덜크럭덜크럭 - 퍼언한 신작로에 소마차 바퀴소리가 외로이 울린다. 사양에 키만 멀쑥하니 된 가로수 포풀러의 그림자가 느른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을 뿐 별로 행인도 없는 호젓한 신작로다.

 수택이 그의 가족- 젊은 아내와 양복 입은 머슴애, 대여섯 살 먹어 보이는 여자아이 -을 데리고 시골 신작로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수택은 얼마 전까지 일금 80 원을 받는 신문사 기자였다. 또한 그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는 기자 생활이 작가 생활을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고, 농촌 생활에 뜻을 두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별안간 내려온 그의 가족을 김 노인과 친척 일가들이 몰려와 에워싼다. 김 노인은 흙냄새를 싫어하는 놈이 사람이냐고 했었으나 아들을 용서한다. 수택이 고향집을 둘러보니 자신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집의 모양이 많이 퇴락해 있었고 얼마 안 되는 농토도 이미 남의 것이 되었다. 또한, 수택이 도시 생활을 하는 동안의 그는 그의 아버지 김 노인과 많이 서먹서먹해져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많이 달라진 것을 실감하면서도 수택은 드디어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우선 퇴직금 150원으로 면장의 첩이 쓰던 집을 살림집으로 구입한다. 그리고 아버지 김 노인이 시키는 대로 꼴베기도 해보고 밭일도 해본다. 그 모두가 힘에 겹고 도시에서 생각하던 것보다 낭만적이지도 않다. 수택은 고향의 산수가 너무 보잘것없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맡는다. 아버지 김 노인은 수택에게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처박게 하고는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야단을 치는 것이다.

 농촌생활을 하는 수택은 어느 날 새벽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내는 시골에 내려온 후 아이들과 자신이 설사를 한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이에 수택과 그의 아내는 김 노인의 역정이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벼가 익고 볏단이 쌓이는 것을 보며 수택은 시골에 내려온 보람을 잠시 느끼나 추수한 속에서 비료대와 설사 치료비, 지세가 제하여지는 것을 보고 착잡한 심정이 된다.

 그의 몫으로 남은 벼 여나믄 섬이 가마니에 채워지고, 그걸 다른 사람들은 거뜬히 지고 가나 근 이백여 근이 되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수택은 코피를 쏟는다.

"저 피! 코필 쏟는군. 내려놓게!"

하는 동리 사람들 소리 끝에,

 "놔들 두게! 남의 피땀 흘리구 지어 논 농살 죄다 먹는 세상에 제 손으로 진 제 곡식을 못 다져먹는 놈이 있단 말인가! 놔들 두게."

 수택은 눈물과 코피를 왁왁 쏟아 가면서도 그래도 자꾸 걸었다.

 

 

 이 작품은 전원파 문학인의 한 사람인 작가의 귀향 뒤의 첫 작품이다.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주인공 수택이 겪는 어려움, 또는 작가가 그것을 매개로 하여 그리는 농촌의 실상은 매우 단초적인 것이다. 주인공인 수택은 단지 "흙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지극히 소박한 이유만으로 귀향을 한다.

 농촌의 참모습은 수택이 낭만적 지식인의 때를 완전히 벗고 한 사람의 참 농민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주인공 수택의 농촌 정착 과정은 그의 <흙의 노예(속 제1과 제1장)>에서 구체화된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당시의 평단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진정한 농민이 될 수 없음을 지적했었다. 이 작품의 농촌 소설로서의 특색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주인공 수택은 농민보다 우월하다는 영웅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농민과 동일해지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둘째, 주인공 수택이 반농 반필(半農半筆)의 문필가 겸 농민이라는 점,

 셋째, <흙>, <상록수> 같은 작품처럼 계몽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수택의 귀향 동기이다. 작가 생활을 할 수 없어서 혹은 생활고 때문에 귀향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그것보다는 이 작품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흙내'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타당하다.

 

 

 이 작품은 도시 생활을 하던 농촌 출신 지식인 '수택'이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귀향하여 농촌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목가적인 농민 소설이다. 주인공은 농촌 생활에 때로는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패배자라고 자탄하기도 하며, 소작 제도의 모순에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철저한 농민이 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귀향을 하고 나서 농촌에서의 '수택'의 생활은 불편함의 연속이다. 고된 노동, 꽁보리밥 식사, 힘에 부치는 농사일의 적응 과정에서 '수택'은 때때로 회의에 빠진다. 그는 농촌 생활을 '퇴화'라고 자탄하기도 하고, 자신을 '패배자'라고 자학한다. 그는 의식적으로 풀과 흙에 사랑을 쏟아붓는다. 이때, 고통을 이겨내게 된 결정적 동인(動因) 역시 '흙내'였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의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다시 말해서 리얼리티의 약화를 초래하는 요소이다.

 농촌 공동체를 마음의 고향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인에게 본원적인 인간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도시와 농촌, 이기적인 개별자들과 사랑의 공동체라는 이원적 대립 구조는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 농촌이 절대선의 세계로 이상화되어 있을 뿐, 1930년대 한국 농촌의 경제적 궁핍이나 그 궁핍이 가져온 가치의 훼손 등에 대한 반성과 전망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흙>의 '허숭(許崇)'과 같은, 관념적 이념에 들뜬 계몽적 면모의 인간형은 물론 아니지만, '수택' 역시 '흙내'로 표상되는 농촌적 세계관에 대한 작가의 관념적 이상화가 빚어낸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