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중편소설 『하늘의 다리』
최인훈(崔仁勳.1936∼2018 )의 중편소설로 1970년 [주간한국]에 13회 동안 연재된 회장식(回章式)으로 쓴 작품이다. 최인훈의 예술론 또는 소설론을 겸한 소설로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늘의 다리」는 독신주의자이며, 삽화가인 김준구가 KAL가 납북사건에서 봄까지에 이르는 동안 서울의 밤하늘에 나타나는 환상을 추구하여 그 환상의 실체를 포착하는 것을 그린 소설이다.
중편소설「하늘의 다리」에서 한국적 요나나 한국적 샤갈은 모두 패배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편지 속에서 인간의 구원을 호소하는 절규를 통해 작중인물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작중인물 자신의 손으로 자백하게 하여 방법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다. 김준구의 두 측면을 집단적 차원으로 확대 투사한다면, 그는 개회 이후의 독립 부재의 국민생활과 문명 부재의 예술계를 상징하는 전형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현실의 핵을 순수 결정의 형태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작가의 승리가 나타난다. 이 작품「하늘의 다리」가 작가의 모든 작품에 우선하여 정신의 높이를 첨예하게 드러낸 예술론일 수 있는 까닭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ㆍ25 때 LST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월남하여 쓰라린 피난시절을 치르기도 한 화가인 김준구는 어느 날 자기에게 화가의 꿈을 심어 준 존경하는 옛 은사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는다.
가출한 자기 딸이 서울의 비어홀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그 애를 타일러 내려오도록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가 비어홀을 찾아가 은사의 딸 한성희를 만났으나, 설득은 잘 되지 않았고, 그 사이 은사는 사망하며 성희는 행방을 감추어 버린다.
이러한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하늘 중턱에 사뿐히 하늘을 밟고 있는, 살아있는 여자의 다리가 그에게 보인다. 성희를 만나기 전부터 체험하였던 이 환시는 성희를 만난 이후부터 차츰 성희의 이미지와 겹치게 되고, 결국 그 다리는 성희의 다리로 느껴지기에 이른다.
마침내 그는 그 환시를 화폭에 옮겨볼 생각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야 만다. 3월 중순의 한강변(漢江邊) 여인 피살 사건과 아파트 붕괴 사건이 있었을 때 그 코로나 차의 문에 가득히 담긴 여인의 다리가 하늘의 다리임을 보고, ‘캔버스 밖에 있는 사람의 다리가 그림보다 더 환상적이고 캔버스 밖에 있는 집이 그림보다 쉽게 뭉개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은 부산으로 내려간 김준구가 소설가 한명기에게 띄운 편지로 되어 있다.
“자네는 매양 자신 있는 양 한데, 자넨 무슨 자신이 있는가. 어느 전능한 양반한테서 자네한테만은 무슨 기별이 있었던가? 이런 모든 것을 자네는 써 주게.”라고 그는 준열하게 소설가 한명기에게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독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월남민 출신 화가 김준구가 고향에서의 학창 시절 은사였던 한동순 선생의 부탁으로 그의 딸 성희를 찾는 이야기를 기본 줄기로 삼고 있다. 소설은 줄기 사이사이에 김준구의 관념과 하늘에 떠 있는 여자 다리의 환각 그리고 주인공 김준구의 짝패인 소설가 한명기와의 대화가 수시로 틈입하며 전개된다. 작품 전반에 걸쳐 같은 형태의 문장들이 반복되어 서술되는 가운데 함께 출현하는 하늘에 떠 있는 여자의 다리라는 환각은 다름 아닌 김준구 자신의 내면에서 발생한 낯설고도 낯익은 현상이다. 여기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바는 생성된 환상의 유희가 아니라, 환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의식 속에서 환상이 발생하게 된 현실적 근거를 탐색하고자 함이다.
이미지의 치환과 중첩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하는 환각 그리고 인간 의식의 불투명성에 대한 비유와 언급은, 상징화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회의와 상징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밀한 욕망이 불러낸 결과이다. 이 작품은 기억과 의식 사이의 복잡한 치환과 압축의 고리와 그 고리에서 일탈된 낯선 환각을 보여준다. 작품 속의 환상과 원산, LST, 부산이라는 가닥선으로 구축된 이 작품은 방법과 풍속을 극대화로 갈라놓는다. 이는 자기 자신 스스로 풍속 자체로 되는 방법에 의해서 당대의 풍속을 철저히 단절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다. 풍속의 의미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스스로 풍속의 파악은 작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직함으로 표현될 수 있다.
♣
작가가 명민한 방법 정신에 들려 여태껏 허깨비로 바라본 환상에 실체를 부여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따라서 「하늘의 다리」는 원산과 LST와 부산을 잇는 상당한 계층의 피난민을 덮고 있는 풍속의 아픔을 상투적인 향수로 표현하는 공리주의와 분리되며, 최인훈 자신의 <구운몽> <열하일기> 계열의 수법을 극복하려는 한 구획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요나적 흐름과 샤갈적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주인공의 생활인으로서의 초상이고 후자는 예술가로서의 초상이다. 피난, LST, 부산, 전쟁, 은사의 가정, 이것들이 전자의 초상을 이루고 있는 선이며, 이 초상의 표정은 위기에 선 인간의 ‘절규’의 표현이 아니라 절규 그 자체였다.
옛날 구약성경의 요나는 고난의 부여자(賦與者)와 만나 있지만 김준구의 경우에는 오직 공포일뿐이다. 은총에 접하지 못한 구도자, 신 없는 고난으로서의 영원한 방황의 주인공, 이것이 한국적 요나의 아픔이고 근원적 표정이다.
한편, 샤갈적 흐름은 예술가로서의 김준구의 방황과 좌절이다. 그러나 샤갈과 김준구의 비교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와 한국이라는 두 개의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할 성질의 것이다. 해답은 자명하다. 서구에 살아있는 신화 혹은 문명적 음계가 이 땅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김준구의 예술가로서의 패배란 자명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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