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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오태석 희곡 『춘풍의 처』

by 언덕에서 2024. 5. 2.

 

오태석 희곡 『춘풍의 처』

 

 

오태석(吳泰錫.1940~)의 희곡. 1976년 [창고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래되는 고전소설 <이춘풍전>에서 약간의 부분을 빌려오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재현하기보다 그 나름의 기발한 연상 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이어질 듯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그 기기묘묘한 이어대기도 탁월하지만, 이야기 줄거리 이상으로 그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 또한 범상치 않다. 사람들이 생사를 넘나드는가 하면, 남녀 관계의 내용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리고 굿거리장단과 디스코 리듬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비리에 대한 질타가 푸짐한 인정 속에서 번득인다. 또한 이 작품은 망자의 혼을 달래고 그를 즐겁게 함으로써, 살아남은 사람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고, 하는 일에 축복을 비는 우리들의 제의적인 의식과 상통하여, 작가의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극작가 오태석 ( 吳泰錫 .194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양에 장사하러 갔다가 기생 추월에게 빠져 돌아오지 않는 춘풍을, 그의 처가 찾아 나선다. 도중에 수중(水中) 세계에서 노모를 살리기 위해 더덕을 구하러 지상에 나온 이지와 덕중을 만난다. 이들은 은(銀)을 밀반출한 부자(父子)를 서울로 압송하는 중인데 그 상금으로 더덕 구입비를 마련하려고 한다.

 부자(父子)를 놓아주고 서로 신세 한탄을 하는 데 춘풍이 나타나고 춘풍에게 맞아 그 처는 졸도한다. 춘풍의 처가 죽은 줄 알고 출상을 하려는데 옥리들이 춘풍을 평양으로 잡아간다. 독경하러 왔던 봉사가 춘풍 처의 돈을 빼앗아 가고, 춘풍 처는 미물들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덕중 조카의 자식을 낳아준다.

 평양 감사가 된 춘풍 처는 재판 중에 추월을 만나 싸우다 쓰러진다. 춘풍은 추월이가 죽은 줄 알고 곡을 하는 중에 처가 일어난다. 춘풍의 처는 춘풍과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난 뒤 기함(氣陷)하여 정말 죽는다. 굿이 치러진 뒤 이지와 덕중만 남는다.

 

 

 이 작품은 내용상, 탕아(蕩兒)인 춘풍과 가정을 정상적으로 꾸려가고자 하는 처 사이의 갈등을 중심 갈등으로 한다. 그러나 희극적 분위기 속에서 춘풍, 처, 추월의 삼각 갈등도 파국에 이르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운 연상과 전환을 통한 즐거움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고전 소설 <이춘풍전>의 내용을, 서구에서 들여 온 무대의 틀을 고집하지 않고 전통극인 탈춤의 극적 형식에 따라 재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의 줄거리보다는 각 장면이 주는 즉흥적인 놀이로서의 즐거움이 중시된다. 표현상으로는 현대 희곡의 주류인 사실주의 계통에서 벗어나 구성의 해체와 즉흥적 대사를 통해 희극성을 실현했다.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우리 고전 작품은 여러 가지이다. 고전 소설 <이춘풍전>에서 소재를 취했지만 <봉산탈춤>의 ‘미얄과장’의 내용과 구성을 수용했다. 이지와 덕중은 용왕의 약을 구하러 나온 자라를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 이 두 사람은 <봉산탈춤>의 말뚝이와 같은 역할을 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춘풍의 처가 남편의 구출을 위해 다른 사람의 애를 낳아 주는 것은 바리 공주와 닮았다. 또 애를 낳는 장면은 <구지가>를 이용하고 있다.

 

 

 고전 소설 <이춘풍전(李春風傳)>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봉산 탈춤>의 미얄 과장의 내용과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중심 갈등은 탕아인 춘풍과 가정을 정상적으로 꾸려 가고자 하는 그 처 사이의 갈등이다. <이춘풍전>에서 춘풍은 희극적 인물이고 그 처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 모두 희극적이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대사가 골계로 일관되어 있다. 작품의 희극성은 덕중과 이지의, 탈춤에서의 말뚝이 같은 역할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춘풍, 처, 추월의 삼각 갈등도 첨예한 직선적 충돌을 거치지만 파국으로 가지는 않는다.

 일관된 갈등의 추구보다 오히려 이 작품은 자유로운 연상과 전환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한다. 비극을 웃음으로 감싸는 우리의 서민적 정서를 잘 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