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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백신애 단편소설 『적빈(赤貧)』

by 언덕에서 2023. 12. 12.

 

 

 

백신애 단편소설 『적빈(赤貧)』

 

백신애(白信愛, 1908~1939)의 단편소설로 1934년 [개벽]지에 발표되었다. <꺼래이> <광인 일기>와 함께 백신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백신애는 1920년대에 등단한 김명순, 박화성, 강경애, 최정희 등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다가 10편의 단편을 남긴 채 32세의 나이로 숨진 여류작가이다. 

 백신애는 경북 영천(永川) 출생으로 ‘신애’는 필명이며 본명은 무동, 아명(兒名)은 무잠이다. 한문을 수학한 후 영천보통학교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졸업하고, 공립보통학교 조선인 여교사 경북 1호로 영천과 경산의 자인면 보통학교 교원을 지내다 잡지사 기자로 전직하였다. 여성동우회ㆍ여자청년동맹 등에 가담하여 여성운동ㆍ항일운동을 벌이다 파면, 추방당하였다. 상경하여 경성여성동맹 창립, 상임위원이 되어 본격적인 여성계몽운동과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대구고보를 거쳐 동경 중앙대학에 다니면서 여운형의 감화를 깊이 받은 오빠 백기호로부터 사상정신면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아 사망시까지 부모의 애를 태웠다. 1929년에 박계화란 필명으로 단편 <나의 어머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신춘문예 공모에 당선된 최초의 여류소설가로 기록된다. 1933년 [신여성(新女性)]지에 <꺼래이>, 1934년 [개벽(開闢)]지에 <적빈(赤貧)> 등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독신주의의 의지를 꺾고 26세에 강제적인 결혼을 한 후, 그의 대표작 <꺼래이>, 「적빈」 등의 작품을 정열적으로 집필하기 시작, 미완성 장편 1편 외에 도합 19편의 소설과 수필 20여 편을 남기고 남편과 이혼한 후 31세의 나이로 위장병으로 요절하였다. 대표작 <꺼래이>는 시베리아 땅을 헤매면서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러시아 군인들에게 끌려가 툰드라 지방의 수용소를 전전하게 되는 조선인의 고난스러운 삶을 다루고 있다. 단편소설 『적빈』도 그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소설가 백신애(白信愛, 1908~1939)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그의 둘째 아들이 매촌(梅村)이란 산골로 장가를 간 후로는 그(녀)를 부를 때 누구든지 ‘매촌댁 늙은이’라고 부른다. 늙은이라는 꼭지에다가 ‘매촌댁’이라고 특히 댁(宅) 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은진 송 씨로서 송우암 선생의 후예라고 그 동리에서 제법 양반 행세해 오던 집안이, 늙은이의 친정으로 척당(戚黨 : 성이 다른 일가)이 됨으로써 비롯된 부득이한 존칭이다.

 그의 맏아들은 오래전에 죽어 버린 남편과 마찬가지로 ‘돼지’라는 별명을 듣는 심술 사나운 멍청이로서, 모든 일에는 돼지같이 둔하고, 욕심 궂고, 철딱서니 없고, 소견 없는 멍짜이면서도 술 먹고, 담배 피우는 데는 그야말로 일당백이었다. 그래서 남의 집에서 품팔이라도 하면, 돈이 손에 들어오기 바쁘게 술집으로 달려가는 터이므로 몸에 입은 옷이라고는 자칫하면 숨겨야 할 물건까지 벌름 내다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동생이 스물여덟에 남의 집 고용살이로 모은 몇 냥 돈으로 매촌에 장가들고, 얼마 남은 것으로 형 돼지에게도 장가를 들게 해 주려고 했으나, 멀쩡히 두 눈 가진 사람이 그에게 딸을 내어 줄 리가 없어 그대로 홀아비로 지내 왔었다. 그랬더니 정말 천생연분이란 것이 반드시 있는 법인지, 이 돼지에게 장가오라는 사람이 생겼는데, 색시는 병신도 아니고 숫처녀였지만 벙어리였다.

 늙은 매촌댁은 아들 둘을 다 장가를 보냈으니,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얼마만큼은 숨을 내쉬었지만, 차차 살펴보니 실상은 걱정이 더 붙었다. 돼지는 삼백예순날 빼지 않고 술만 찾아다니고, 벙어리 며느리는 또 경치게 위장이 좋은 모양인지 밤낮 배만 고프다고 끙끙대었다. 그런지 몇 날이 지났다. 이날도 남의 집에 가서 방아를 찧어 주는데, 벙어리가 해산 기미가 있다고 돼지가 헐레벌떡 쫓아왔다. 늙은이는 그래도 찧던 방아를 다 찌어 주고 점심을 얻어먹은 후 큰아들이 사는 동네로 달려갔다.

 늙은이는 잠시 가만히 앉아 예순셋에 처음으로 보는 손자라 그런지 몹시 감격하여 눈을 쥐어지르듯 자꾸 눈물을 닦으며, 또 한 번 아기의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이 아이가 사내란 것이 자기에게 뭐 그리 기쁜 일인지….

 늙은이는 나뭇단 아래 숨겨 둔 보리쌀을 간절히 생각하나, 지금 그것을 가지러 가려니 몸을 빼서 나갈 수 없고, 돼지를 시키려니 작은며느리에게 들킬까 걱정이 되어 자기 팔이라도 베고 싶었다. 그럴 때 집주인마누라가 이 모양을 알아채고 쌀 한 그릇을 주었다. 늙은이는 그것으로 밥을 지어 벙어리에게 크게 한 그릇 먹이고, 남은 것은 바가지에 긁어 담았다. 그리고 둘쨋집 부엌에 들어가 나뭇단 아래 손을 넣어 살그머니 보리쌀을 끌어내었다. 작은며느리 몰래 쌀 항아리 속에 있는 명태를 꺼내려다가 며느리에게 들킬 것을 생각하여, 그만 보리쌀 꾸러미만을 안고 번개같이 내달려 돼지에게 갖다주었다.

 “이것으로 죽을 쑤어서 너는 조금씩만 먹고 에미만 많이 먹여라.”

라고 신신당부하고 늙은이는 자기 집으로 되돌아왔다. 텅 빈 뱃가죽은 등에 붙고 입 안과 목 안은 송진으로 붙인 듯, 입맛을 다시려니 미어지는 그것같이 따가웠다. 그래도 눈앞에는 오늘 난 아기의 두 다리 사이의 사내아이란 또렷한 그 표적이 어릿어릿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그는 뒤가 마려웠으나, 집으로 돌아간들 밥 한술 남겨 두었을 리가 없음에 그대로 뒤가 마려운 것을 무시하려고 입을 꼭 다문 채 아물거리는 어두운 길을 줄달음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빈궁 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 강경애의 <지하촌>과 같이 일제하의 궁핍한 생활의 밑바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빈궁한 삶에 대한 작가적 관심은 바로 그의 작품 세계가 경향파적 색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가난에 찌든 ‘매촌댁 늙은이’를 통해 전해지는 삶의 절박함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다만, 백신애 소설의 단점은 정열을 함부로 발산하여 작품이 신파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가난의 밑바닥에서 헤매면서도 어딘지 의지가 있는 인간상을 묘사하고 있다. 벙어리를 데리고 사는 둘째 아들은 끼니조차 제대로 이을 수 없는 극빈 속에 허덕이고 있으며, 맏아들은 노름판만 쫓아다니며 도무지 살림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 두 아들의 틈바구니에서 동네의 집집이 찾아다니며 뼈가 빠지게 일해 주고 겨우 식은 밥술이나 얻어먹는 늙은 과부 노파인 ‘매촌댁’은 그 고생도가 비길 데 없는 처참하다.

 그러나 매촌댁은 의지가 있다. 끼니를 굶어도 속수무책으로 기아에 떨고 있는 작은아들 내외를 위해서 움직이는 적극적인 인생의 고행자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작가가 사회에 참여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나간다는 당위적인 의지가 깃들어 있다.

 

 

 백신애를 가리켜 여러 비평가가 주관적인 편견을 객관화하고, 이를 지성화시키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충분히 객관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의지의 힘으로 미미하게나마 지성의 빛을 보여 주고 있다. 작중 매촌댁 늙은이는 작은며느리가 해산했어도 쌀 한 톨 없는 것으로 보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위인은 아니다. 주인댁에 가서 쌀을 얻어다 산모에게 밥을 끓여주고 며칠 전에 품팔이로 얻어다 감추어둔 보리쌀 두 되를 가져다가 주면서도 밥 한 알 못 먹고 맏아들 집으로 돌아오다가 뒤가 마려워 보려 하는데 ‘사람은 똥 힘으로 사는데……’하고 뒤를 보지 않는다. 집에 갔던들 밥 한술 남겨 두었을 리가 만무한데 똥마저 누어버리면 당장에 거꾸러질 것만 같아 그대로 뒤를 보지 않고 만다.

 이 작품의 결구에서 백신애는 인간의 슬기로운 의지를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는 흘러내리는 옷을 연방 움켜잡아 올리며, 코끼리 껍질 같은 몸뚱이를 벌름거리는 그대로 뒤가 마려운 것을 무시하려고 입을 꼭 다문 채 아물거리는 어두운 길을 줄달음치는 것이다......

 이 결구를 볼 때 굶주림을 참는 의지가 뒤를 보지 않고 지탱해 내려고 안간힘을 다 기울이는 이 매촌댁 늙은이의 의지에 슬기로운 지성의 싹이 돋아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매촌댁’ 늙은이가 굶주림을 참느라고 뒤를 보지 않고 입을 꼭 다문 채 아물거리는 어두운 길을 줄달음치는 그 의지 속에서 지성의 소박한 싹이 돋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지식인은 발견하고 느낀다.

 지성이란 이러한 매촌댁 늙은이의 하잘것없는 삶 속에도 있다는 것을 「적빈(赤貧)」은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이 아직 고도의 지성과 의식으로 높여지지는 못했을망정 매촌댁 늙은이의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 속에 적으나마 슬기롭게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