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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

by 언덕에서 2023. 12. 11.

 

 

손창섭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의 단편소설로 1952년 [문예]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손창섭 사후 출간된 여러 출판사의 '손창섭 단편집'에서 「사선기(死線記)」라는 제명으로도 출판되어 있다.  작가가 사망했으므로 제명 사연기(死緣記)」가 맞는지 또는 「사선기(死線記)」가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최근 출판된 2005년판 [민음사] 손창섭 단편소설집 「잉여인간」에는 「사선기(死線記)로, 2005년 [문학과 지성사] 단편소설집 「비 오는 날」에는 「사연기(死緣記)」로, 1995년 [동아출판사] 단편소설집 「잉여인간」에도 사연기(死緣記)」로 각각 표기되어 있다. 이는 '연()'자와 '선(線)'자의 유사한 생김새 때문에 빚어진 혼선으로 판단된다. 이 포스팅에서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한 손창섭 단편선 소설집 <비 오는 날>을 텍스트로 삼았으므로 사연기(死緣記)」로 표기했음을 밝힌다. 

 손창섭은 평양 태생으로 만주로 건너갔다가 도일, 경도와 동경에서 고학으로 몇 군데 중학교를 거쳐 니혼(日本) 대학을 중퇴했다. 1948년 귀국하여 월남했고 이후 교사, 잡지사 편집기자로 활동했다. 그가 집필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49년 <얄궂은 비>를 「연합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952년에 단편 <공휴일>, 「사연기(死緣記)」, 1953년 <비 오는 날>이 각각 [문예] 지에 추천받아 등단했다.

 손창섭은 김성한, 장용학 등과 함께 1950년대의 우리 문학계를 빛낸 인물이다. 손창섭에 이르러 한국문학이 현대문학다운 수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창섭은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사 신인문학상을 받았고, 1959년에 단편 <잉여인간>으로 제4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 1984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소설가 손창섭 (孫昌涉. 1922-201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한국전쟁 중의 피난 도시이다. 성규와 동식은 친구 관계이고 정숙은 성규의 부인이다. 성규는 폐병 환자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성규와 정숙의 슬하에는 두 아이가 있으며 교사 동식이 기거하는 옆방에 성규 부부가 더부살이 중이다. 동식과 정숙은 과거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해방 전 동식이네는 평양에서 굴지의 부자였는데 공산당에게 재산을 몰수당한 후 구속되었고, 그 사이 정숙은 성규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공산당원이 된 성규가 정숙에게 자기와 결혼하면 무사히 동식을 나오게 힘써 주겠지마는 그렇지 않으면 동식을 시베리아 유형 보내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판잣집의 자기 방에서 학생들의 작문을 채점하고 있을 때 옆방의 정숙이 동식을 부르러 온다. 동식이 성규 방을 들어갔을 때 성규는 마치 거미 같았다. 살이란 하나도 없이 마른 몸이 흐느적거리며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생의 애착을 느끼는 성규는 흰 죽을 먹었다는 말과 함께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먹으면 건강하게 될 수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성규네 아이들은 입을 옷이 없어 아랫도리만 입힌 상태고 정숙은 동식이가 사다 준 신발을 팔아서 그 돈을 쓰고 누더기 한 벌로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 성규는 바짝 마른 얼굴로 동식의 양복 가랑이를 움켜쥐더니 흥분에 떨리는 음성으로 정숙이와 부부가 되겠다고 죽기 전에 약속해 달라고 조른다. 아니 오늘 밤부터 윗방으로 데리고 자라고 떼쓰듯 말한다.

 다음날 성규는 죽었다. 화장시키고 나란히 돌아온 그다음 날 동식은 옆방에서 전해오는 정숙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정숙은 밀린 일을 하나씩 정리하고 아이들 옷도 하나 지어 입힌다. 그다음 날 정숙은 이미 약을 먹고 죽어 있었다. 유서에는 자기 시신을 거두어 달라는 말과 큰아이의 귀가 동식의 귀와 같이 생겼다는 말과 그 귀를 어루만질 순간이 기쁨이었고 또 슬픔이었다고 적혀 있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동식은 한동안 죽은 정숙의 얼굴을 지켜보며 앉아 있다. 동식이 고인이 남기고 간 두 어린것의 슬픈 운명을 자기는 책임져야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6.25 당시 부산 사진

 

『사연기』의 성규는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가 살아남을 자들이 누릴 '생의 향락'을 시기할 때, 동식은 생의 어느 구석에 향락할 구석이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삶에서 어떤 향락도 발견하지 못하는 동식은 '삶은 곧 고통'이라는 불행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자로서 그의 불행 의식은 죽어가는 자 앞에서도 '삶은 곧 고통'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강렬하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삶이 고통이라고 한다면 죽음은 해방을 뜻하거나, 하이데거의 주장에 따른다면 현존재의 최고 가능성으로 긍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재난의 시대에 살고 있던 달수에게 죽음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폭력을 의미하거나 물리적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의 무상성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사연기』는 손창섭 소설의 거의 모든 특징이 한데 어우러져 이룬 한 편의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다. '생을 향락하다니? 생의 어느 구석에 조금이라도 향락할 수 있는 대견한 요소가 있단 말인가?' 주인공의 이런 절규도 그동안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던 그의 절망적 표현이다.

 '해방 이래 한결같이 계속되는 초조, 불안, 울분, 공포, 그리고 권태 속에서, 물심 어느 편으로나 잠시도 안정감을 경험해 본 적 없는 동식은, 결혼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느껴보지 못한 채, 앞으로 살아가노라면 어떻게든 자기의 '생활'이라는 것이 빚어지려니 싶어 어물어물 지내오다 보니 오늘날까지 남들같이 출세도 못 하고 돈도 못 모으고, 따라서 궁상스러운 홀아비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무기력증은 모두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해방 전에 동식과 정숙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 사이에 성규가 정숙을 좋아하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동식의 집은 지주였다. 그 때문에 해방 직후, 동식의 부자는 끌려가 매를 맞고 아버지가 죽는다. 이때 성규는 좌익의 세력자였으므로 정숙이 만일 자기와 결혼해 주면 무사히 동식을 풀어주고, 만일 그렇지 않으면 시베리아로 유형 보내겠다고 한다. 동식을 위해 정숙은 성규와 약혼한다.

 

 

『사연기』는 성규와 정숙 부부 그리고 옛 애인 동식이 함께 기거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피난살이를 다룬다. 동식은 정숙의 비참을 "슬픈 운명"이라고 표현한다. 이때의 운명이란 동양적 숙명, 즉 그것에 순종할 때 궁극적으로 자연과의 조화에 이르게 된다는 김동리류의 숙명 개념이 아니다. 역사의 격변기에서 동식을 살리기 위해 좌익분자 성규와 결혼함으로써 불행에 빠지는 정숙에게 한국전쟁을 전후한 역사적 과정은 인간행위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율성을 띠고 진행되는, 소외된 역사를 의미한다. 

 이 소설의 현장도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동굴 속 같다.

 '먼지와 그을음과 파리똥으로 까맣게 절어있는, 창 하나 없는 벽과 천장 구석구석에는 거미줄이 엉키어 있고, 때우고 또 때우고 한 장판 바닥에서는 먼지가 풀썩풀썩 이는 음침한 단칸방이다. 이 방에 들어설 때마다 동식은 어느 옛날얘기에나 나옴 직한 끔찍스러운 괴물이라도 살 것 같은 우중충한 동굴을 연상한다. - 본문에서'

 그 안에 '언제나처럼 성규는 그러한 방 아랫목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죽어가고 있다. 동식을 보는 성규의 시선은 아내의 옛사랑에 대한 질투와 죄책감이다. 그 질투와 죄책감이 오늘의 비참한 현실과 교착될 때 그는 패배적인 인간상을 형성한다. 정숙을 보는 동식의 시선은 옛사랑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이다. 그 연민과 죄책감도 오늘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는 승리자일 수 없다. 해방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을 겪고 난 이들 젊은이에게 남은 건 절망과 좌절일 뿐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