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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태준 장편소설 『사상(思想)의 월야(月夜)』

by 언덕에서 2023. 12. 5.

 

이태준 장편소설 『사상(思想)의 월야(月夜)』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 1904~?)의 장편소설로 1941년 3월 4일부터 7월 5일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고, 1946년 [을유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시기에 일본 군국주의 체제는 노골적으로 한민족 말살정책을 진행시켰고, 전쟁 수행을 위한 총력적 친일만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유화적이거나 친일적 작품 활동만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태준은 ‘작자의 말’에서,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화려한 몽상과 침통한 사색에 전전케 하는 창백한 저녁은 확실히 있는 것”이라 하고, “건강한 지성이라도 먼저 그 뿌리를 윤택한 감성에 묻지 안 하고는…… 명일을 기약키 어려울 것”이라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현실 순응적ㆍ감정적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작중 개화파였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린 송빈이 겪게 되는 삶의 역정은 우리 민족의 그것과 일치하지만, 그의 성장 과정은 결코 민족적 자각이나 의식의 개발은 없고, 장은주와 사랑에만 매달려 있다.

 단행본으로 출판될 때 신문의 연재분에 많은 가필을 했는데, 마지막 장 ‘동경의 밤들’이 빠지고 송빈의 선상 독백인, “김옥균 선생이나 아버지께서 일본에 조국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유산을 본받으러 가셨듯이, 일본에 협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앞으로 일본과 투쟁하여 조선을 찾을 그런 준비로 학문과 사상을 배우러 가는 진정한 애국청년이 더러는 있을 겁니다.”라는 말이 첨가되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전체 소설과 잘 맞지 않고, 갑작스러운 가필로 공허하기까지 하다. 소설의 전개가 주인공 송빈의 성장 과정에 따르기 때문에 성장소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태준의 성장 과정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전적인 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은 해방공간인 1946년 11월 [을유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낸 책이었지만, 이태준의 책 중에서 가장 비난을 많이 받은 작품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이 책이 일제 말엽에 친일 성격의 내용이 가미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 (李泰俊 , 1904~ ?)

 

 내용 구성과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상의 월야」는 총 11장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인 ‘동경의 달밤들’은 신문에는 연재했으나 책으로 묶을 때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축소 및 개작을 거치면서 빠져있다.

 마지막 장은 이태준의 페르소나인 송빈이 동경에 도착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이다. 아마도 이태준은 <사상의 월야>의 후편까지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지만, 소설은 그의 청춘기, 즉 대학 초반부에 끝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정치적으로, 여러 면에서 복잡했던 시기라 실존 인물들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 이태준도 부담을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좀 더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선 상편으로 쉬겠다는 글을 남기고 있다. 소설은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 <첫 달밤>

 두만강 건너 해삼위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어촌에서 어린 송빈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다. 철원 용담에서도 제일 큰 부잣집이었던 그의 집안은 아버지가 개화당이었기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걷는다. 아버지는 블라디보스토크 쪽으로 가서 서북간도 일대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모아서 유신을 일으키려 했으나 끝내 뜻을 못 이루고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외할머니와 만삭의 어머니, 아홉 살 난 누나 송옥이와 함께 작은 목선 하나를 구해 조선으로 향한다.

 ▶2장 : <첫 항구>

 함경도의 배기미라는 작은 항구에서 한 가족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막내딸 해옥이도 세상에 나왔다. 송빈이는 서당에 다니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강원도 집이라는 작은 식당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송빈이 삼남매는 천애고아가 되고 만다.

 ▶3장 : <새벽 나팔소리>

 송빈이는 어느새 아홉 살, 함경도 아이가 다 되어버렸다. 당숙을 따라서 용담으로 되돌아간다. 이제 고향에는 신식 학교도 생겼다.

 그런데 어느 날 오촌 되시는 분이 양자로 삼겠다면서 송빈이를 산길로 칠십 리나 떨어진 안협 모시울이라는 산골로 데려간다. 그 집 딸의 구박을 받으면서 송빈이는 외로운 날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시비를 가려주고 자기를 보살펴주던 오촌 아저씨까지 돌아가시고 만다. 송빈이는 할머니를 따라서 다시 용담으로 돌아간다. 송옥이와 해옥이, 두 누이는 전부 때 묻고 해진 옷을 입고 있지만, 그래도 송빈이는 학교에 들어간다. 학교 공부가 재미있다.

 ▶4장 : <푸른 산은 가는 곳마다>

 추석이 왔다. 동네 아이들은 전부 새 옷을 지어 입었는데 송빈이만 혼자 헌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 산에서 송빈이는 하얀 얼굴, 까만 눈, 기름기가 반지르르한 소녀를 만난다. 송빈이의 첫사랑 은주와의 만남이다. 송빈이는 개울에서 은주를 위해서 민물고기들을 산 채로 잡아준다.

 [은주는 눈이 기름송이처럼 빛나며 감탄하였다. 그러자 빗방울이 앵두알 같은 것이 뚝뚝 듣더니, 큰 산이 뽀얗다. 선비소 등성이를 채 올라서기도 전에 채찍으로 쏟아진다. 은주는 파랗게 질려 빗물에 숨이 막혀 헉헉 느끼기까지 하였다. 비는 동네로 들어설 때까지 사뭇 퍼부었다.] (p66) 이 부분은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른다. 철원에서 살아가자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송빈이는 북어 한 쾌를 사 오라고 작은어머니가 준 돈 육십 전을 들고 무작정 기차에 오른다. 서울로 가려했던 게 타다 보니 반대쪽 원산 방면으로 향하게 된다. 가진 돈으로 표를 끊어서 도착한 곳은 겨우 삼방. 이태준 소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삼방이다.

 ▶5장 : <사람도 여러 가지>

 송빈이는 방랑의 첫 밤을 맞이한다. 춥고 배고프지만 며칠 걸려서 원산에 도착한다. 여인숙에서 몰래 잠을 자고 공밥을 먹었다가 주인한테 따귀를 맞으면서 혼쭐이 난다. 다행히도 윤 생원이라는 양반이 소개해주어 객줏집에 취직을 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원산항에 나갔다가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와 같이 열심히 돈을 모으다가 윤수 아저씨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압록강 너머 안동으로 향한다. 그런데 아저씨는 붙들려서 다시 철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송빈이는 압록강 철교를 넘어서 서울을 향해 걸어간다. 순천을 지나서 대동강 변에 있는 큰뱀이라는 나루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송빈이는 고생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6장 : <서울>

 송빈이는 주인집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던 서울행을 드디어 결심한다. 학교에 들어갈 생각, 은주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드디어 기차에 오른다.

 그때는 경의선도 용산을 돌아서 오던 때라, 용산 다음이 남대문이다. 송빈이는 가슴이 뛰었다. 사람들은 수선스레 짐을 챙겼고 기차도 별로 휘우뚱거리며 소리소리 지르며 속력을 냈다. 차창 밖은 전깃불이 바다처럼 핑핑 돌았다........ 차를 내려 구름다리를 넘어서 남대문 역을 나섰다. 정거장 밖에는 맨 불이요 맨 사람이다. 송빈이가 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나 휘황한 불들이요, 너무 들끓는 사람들이다.

 송빈이는 이렇게 서울 땅에 발을 내딛는다. 학교들을 둘러보고 배재학당 보결시험에 입학 원서를 내고 합격한다. 그러나 학비가 없다. 길을 가다가 야바위꾼에게 걸려서 그나마 잔돈푼까지 다 날리고 허망해진다. 여태 미련하단 소리 안 듣고 살다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눈 뜨고 당한다.

 ▶7장 : <만나는 사람들>

 다행히 원산 객주에서 일할 때 알던 분을 만나서 취직이 된다. 청년회관에서 야학을 들으면서 웅변도 한다. 청년회관에서 윤수 아저씨와 만나고 은주와도 해후하게 된다. 모녀만 살기 때문에 집안을 풍성스럽게 하기 위함이라 송빈이는 은주네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휘문고보에도 합격한다. 어렵지만 이제 미래가 약간은 보이는 것 같다.

 ▶8장 : <로오즈 가아든>

 월사금이 모자라서 고향에 갈 엄두도 못 낸다. 윤수 아저씨를 배웅하러 청량리역에 갔다가 은주와 산책을 하고 한강까지 구경한다. 월사금 때문에 고민하던 송빈이는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교장실 청소를 하면서 학비를 면제받게 된다. 도서관에서 위고의 <희무정>에 나오는 ‘짠발잔’도 읽고, ‘해당화’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톨스토이의 <부활> 등을 읽는다. 처음으로 은주와 데이트도 한다.

 은주 어머니는 송빈이 와 은주더러 활동사진 구경이나 갔다 오라 하였다. 송빈이는 우미관으로 갈까 단성사로 갈까 하는 은주를 데리고 조선호텔로 온 것이다. 저에 윤수 아저씨를 따라서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로오즈 가든으로였다. 호텔 후원에는 여러 가지 장미가 밭으로 피었는데, 오십 전만 내고 들어오면 꽃구경은 물론이요 이왕직 악대의 음악 연주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나중에는 활동사진으로 금강산 구경까지 하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장미꽃과 장미꽃 사이를 은주와 가지런히 앉으며, 노서아 소설에 흔히 나오는 리라꽃그늘을 걷는 애인과 애인의 환상을 그려볼 때, 금시 살이 찌듯 소담한 행복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같이 의자에 앉았고, 같이 음악을 듣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같이 금강산의 절경을 바라보고, 폭포가 나오면 같이 손뼉을 치고, 그러다가 송빈이 손은 은주의 손을 덥석 잡아보았다. 보드라운 은주의 손도 잡히지만 않고 꼭 잡아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첫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누나의 편지를 받고 처음으로 고향에 내려간다. 이제 늙으신 할머니. 송빈이는 자기를 정성으로 돌봐주던 할머니가 10년만 더 잘 계시기를 바란다.

 ▶9장 : <깊은 데 숨은 꽃>

 송빈은 고향에 돌아와서 쇠락한 용담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동경 유학생들이 하는 강연회와 음악회를 보면서 동경 유학을 꿈꾸게 된다. 은주와의 연애 감정에 대해서도 갈등이 많다. 그런데 갑자기 은주가 큰아버지의 명에 의해서 혼인을 해야 하게 된다. 사랑의 도피도 생각해 보지만, 우유부단한 자기 소설의 주인공답게 송빈이는 갈등 속에 포기하고 만다.

 ▶10장 : <사랑의 물리>

 상심에서 겨우 벗어난 송빈은 은주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잣집 가정교사 자리를 구한다. 그런데 세상은 좁아서 그 집 조카가 은주의 남편이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예민해지기만 하고, 학교 행사에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가정교사 집 어르신의 태도에도 반발심이 생긴다. 자신이 다니는 휘문고보는 학교가 아니라 이사장 한 명만을 위한 학교처럼 보인다. 교육보다도 ‘교주’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모든 걸 해야 하는 학교의 현실에 암담함을 느낀다.

 ▶11장 : <현해탄>

 교주가 장충단에 바람을 쐬러 갔다가 넓은 마당을 보니 팔백 명 학생들을 한 번 한 뜰에 세워놓고 보고 싶다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전교생이 장충단 공원으로 가게 된다. 윗저고리를 전부 벗으라는 분부가 떨어졌는데, 단 한 명 송빈이만 옷을 벗지 않는다. 내의를 안 입었기 때문이다. 송빈이는 정학을 받고, 학교의 방침에 불만을 품고 있는 학우들과 격문을 붙이고 동맹휴학에 들어간다.

 학교에서 잘린 송빈이는 동경으로 떠날 결심을 굳히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할머니를 만난다. 은주와도 우연히 만나지만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해버린다. 도항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찰들. 송빈이는 원산 시절에 알던 상회를 찾아가서 겨우 배를 탈 수 있게 된다. 현해탄에서 그는 아버지와 김옥균 선생 같은 이들을 생각한다.

 [싸늘하게 식은 송빈이의 뺨 위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늘 자기의 외로움, 자기의 가난함이 일찍 그런 아버지가 이 현해탄을 건너신 것에 원인한 것이라 생각하면 송빈이는 이미 당해온 고생이 도리어 명예스러웠고, 이 앞으로 당할 고생에 더욱 용기가 솟는 것이었다.] (p189~190)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된 장편소설 「사상의 월야」는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원래 [매일신보]에 연재할 때 실렸던 나머지 부분들도 책에는 같이 실려 있다. 동경에 첫발을 내딛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과정들. 하지만 이태준은 한 권의 책으로 낼 때 전부 다 싣지 않고 현해탄 위에서 이야기를 끝낸다.

 

 

 

 「사상의 월야」를 읽으면 이태준의 어린 시절부터 도일할 때까지의 삶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가 있다. 그와 동시에 이태준의 다른 장편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왜 그렇게 진행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이태준의 작품 중 사상의 월야」와 <해방 전후>는 자전적 성격을 가장 강하게 띠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사실로 인해 두 작품은 연구가치가 높은 텍스트들로 자리매김해 이태준 연구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왔다. 사상의 월야의 내용은 이 작품이 연재 중단 되고 약 두 달 후 간행된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실린 작품들의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자전적 성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태준은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 사상의 월야 , 장편소설 <해방전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해방 후에는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등 조직에 참여하다 1946년 월북했다. 월북 후 ‘구인회’ 활동 과거와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돼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의 작품 성향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과거와 현실적 고통을 비교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썼으며, 그의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묘사적 문장은 독자의 호응을 크게 받았다. 그가 취택한 인물들은 가난하고, 무력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삶의식을 잘 드러내며 인간미가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또 민족의식의 주제는 상당히 많은 편수에 이르고, 장편소설 사상의 월야(1946)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소외된 인물들의 현실적 고난과 그 인물의 내면세계의 순수무구함을 드러내어 인간애의 의식을 촉구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특히, 광복 이전 이태준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띠기보다는 구인회의 성격에 맞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냈다. 또한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에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