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金東仁, 1900~1950)의 단편소설로 1932년 [동광(東光)] 28호에 발표되었다. 자연주의 경향의 작품이지만 강한 휴머니티가 깔려 있다.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을 모델로 하였다 하여 큰 논쟁이 벌어져 두 사람(김동인과 염상섭) 사이에는 오랫동안 불화를 만든 작품이다.
김동인은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서 근대 단편 소설의 개척자이다. 구어체 문장을 확립했으며, 전 시대의 계몽문학을 거부하고 자연주의 문학을 시도했다. 단편, 역사소설, 평론, 수필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을 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주의, 탐미주의, 민족주의, 낭만주의 등 여러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작품에 따라 엄격히 구분되기도 하지만 같은 작품 속에서도 상반되는 요소들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의 평론은 개성 있는 문체와 감각으로 이채를 띤 작품론과 작가론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춘원 연구(春園硏究)>는 역작이다. 김동인은 작중인물의 호칭에 있어서 ‘he, she’를 ‘그’로 통칭하고, 또 용언에서 과거시제를 도입하여 문장에서 시간관념을 의식적으로 명백히 했으며,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이른바 간결체를 형성하였다. 1955년 [사상계사(思想界社)]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 시상하였으나, 1979년부터 [조선일보]사에서 시상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노총각 M이 혼약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들은 뜻하지 않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유곽을 드나드는 방탕 생활을 하던 서른두 살 난 노총각 M이 어느 날, 우리들 몰래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M이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지만, 의사인 ‘나’는 방탕 생활로 인한 생식 불능으로 결론짓는다.
M은 그러한 자기의 치명적인 결함을 숨기고 결혼했다. 처음에 M은 탄탄하게 결혼생활을 했으나 신혼 며칠 후 아내를 학대한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M이 아내가 임신을 했다고 전해진다. M이 ‘나’를 찾아와 검사를 요청한다. 십중팔구는 자신의 생각대로 생식 불능이라는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M의 아내가 임신한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는 일루의 희망을 가지는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리하여 M은 아기가 자신을 닮기를 원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몇 개월 후 아기가 기관지를 앓고 있었지만, 은근히 친자 확인을 하러 온 그에게 ‘나’는,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라고 말하면서 나의 얼굴로 날아오는 의혹과 희망이 섞인 그의 눈을 피하면서 돌아앉는다.
이 단편소설은 시인 김억의 권유로 염상섭을 모델로 한 소설을 김동인이 창작했고 끝내는 김동인과 염상섭 양인이 논쟁까지 벌인 작품으로 어쨌든 작품 자체는 강렬한 휴머니티를 보여 준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에서 의사인 친구에게서 자기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기 아이라는 보장을 받고 싶어 하는 애틋한 부정은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주인공 M은 그 애가 제 증조부를 닮았다고 말하고, 자기를 닮은 데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가운데 발가락이 제일 긴 것을 닮았다는 이야기였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면서도 어떻게든 그것을 삭여 보려는 M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인생의 가장 요절할 비극’의 한 토막이다.
김동인의 문학적 특징을 확인케 하는 작품이다. 자연과학적 시각과 함께 주인공 M의 심리적 갈등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특징인 자연주의적 경향과 심리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현실의 부조리를 발견하고도 자신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부조리 때문에 갈등을 겪는 한 인간의 심리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발가락이 닮았다는 이유로 합리화시키려는 M의 의도는 비극과 부조리를 정당화시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한 각고의 노력을 ‘나’를 통해 인생의 가장 비극적인 면을 그려내고 있으면서, 또 하나의 비극을 준비하는 것으로 유도하고 있다.
♣
이 작품은 발가락이 닮았다는 주인공의 심리적 비극을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비극적 숙명이 과학적 사실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연주의적 문학관을 형상화하고 있다. 몹시 성적으로 방탕했던 노총각 ‘M’이 결혼한 지 2년 만에 뜻밖에 그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M’의 생식불능이 사실이라면 아내의 임신은 부정의 결과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M’은 끝까지 아내의 정숙을 믿고자 노력한다.
M은 어린애를 왼편 팔로 가만히 꺼내어 놓았습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
M은 열심히 찬성을 구하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닮은 곳을 찾아보았기에 발가락 닮은 것을 찾아내었겠습니까. 나는 M의 마음과 노력이 눈물겨웠습니다. 커다란 의혹 가운데서 그 의혹을 어떻게 하여서든 삭여 보려는 M의 노력은 인생의 가장 요절한 비극이었습니다. M이 보라고 내어 놓은 어린애의 발가락은 안 보고, 오히려 얼굴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는 마침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 - 본문에서
이 스토리는 당시 문단 주변에서 일어난 실화를 작품화해서 한동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발가락이 닮았다’와 김억과 염상섭>
이 소설을 쓰게 된 데는 일반 독자들이 잘 모르는 ‘비화’가 있다. 그 비화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염상섭(廉尙燮)의 <질투와 밥>이라는 소설에 대한 설명부터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김동인이 <발가락이 닮았다>를 쓰게 된 동기는 염상섭의 <질투와 밥>이라는 소설에 있었기 때문이다.
<질투와 밥>이라는 소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어떤 시골 부자인 인텔리 청년이 술과 계집으로 재산을 탕진해 버리고 밥을 굶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처자식을 굶기지 않으려고 돈 많은 과부를 소실로 맞아들였다. 그 소실은 남편과 본처 자식들을 자기 돈으로 먹여 살리다 보니 자연히 남편을 형편없이 구박하게 되었다. 인텔리 청년은 화가 동하는 분수로는 소실을 당장 쫓아내고 싶었지만,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심한 구박을 고스란히 참아낸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그 소설 내용이 시인 김억(金億)의 사생활과 흡사하였다. 김억은 정주(定州)에서 5백 섬 추수의 부자였는데 문학을 한답시고 서울에 올라와 주색으로 전 재산을 털어 없애고 돈 많은 여자와 동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염상섭이 정말로 김억을 모델로 <질투와 밥>을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김억은 그 소설을 읽어보고 펄펄 뛰며 분개하였다. 친구지간에 그럴 수 있느냐고 분개하며 도저히 그대로는 참아 넘길 수 없는 심경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김억은 마침내 김동인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김억과 김동인은 막역한 친구이므로 김억은 <질투와 밥>을 제시해 보이면서 김동인더러 복수의 소설을 써 줄 것을 간청했다. 김동인과 김억은 막역한 친구일 뿐만 아니라 김동인 자신도 막대한 유산을 탕진해 버리고 가난뱅이가 된 점에 있어서는 <질투와 밥>의 주인공과 공통된 점이 있었다.
그러니까 김동인도 염상섭의 소행이 괘씸하게 여겨졌던지 김억의 소원대로 염상섭을 주인공으로 한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을 썼다. 그 작품의 내용인즉, M이라는 노총각은 집이 가난하여 장가도 못 가고 창녀 바탕으로 떠돌아다니다 성병으로 생산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다가 30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장가를 들게 되었는데 자기는 성병 관계로 자식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색시는 시집온 지 1년 만에 아이를 낳지 않는가. 주인공은 이 자식이 과연 내 자식이냐, 남의 자식이냐가 의심스러워 갓난아이를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살펴보았지만 자기를 닮은 데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리하여 남모르게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살펴보니 갓난아이의 발가락 하나가 자기를 닮지 않았는가. 주인공 M은 그제야 간신히 마음을 놓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그 소설이 발표되자 문단인들 간에는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염상섭은 마침내 분노를 참지 못해 지상(紙上)으로 김동인에게 비난을 퍼부었고, 김동인도 [조선일보] 지상에 염상섭에게 반박문을 발표하였다. 그래서 염상섭은 다시 반박문에 대한 재반박문을 발표하였고 김동인은 거기 대해 다시 반박문을 발표했다.
그 일은 내가 아직 문단에 나오기 전의 일이었지만 그때 김동인이 쓴 두 번째 반박문의 마지막 구절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똥은 들출수록 구린내가 나는 법이니까 이런 글은 그만 쓰겠다.”라고 휘장을 쳐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김동인과 염상섭은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기에 해방 후인 1947년에 나는 잠시 [중앙신문] 문화부장으로 있을 때 두 분이 화해할 기회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 김동인과 염상섭을 한자리에 모시고 ‘문학 대담’을 열었던 일이 있었다. 두 분이 모두 과묵한 편이어서 좌석이 약간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인상에 남는 대면이었다.
- 정비석: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중앙일보.: 1978. 4. 29) -
'한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승옥 단편소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0) | 2024.02.21 |
---|---|
염상섭 단편소설 『짖지 않는 개』 (2) | 2024.02.20 |
이청준 단편소설 『조율사(調律師)』 (0) | 2024.02.16 |
오정희 단편소설 『바람의 넋』 (0) | 2024.02.13 |
손창섭 장편소설 『부부(夫婦)』 (0) | 2024.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