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단편소설 『짖지 않는 개』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의 단편소설로 1953년에 발표되었다. 염상섭은 이 작품으로 1956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한만국경지대(韓滿國境地帶)의 불안한 상황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염상섭은 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때의 경험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었다고 짐작된다. 해방 후 귀국하여 1946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주로 가정을 무대로 한 인륜 관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의주에서 삼팔선에 이르기까지의 도정을 그린 <삼팔선>, 옥임의 정신적 파산과 정례의 경제적 파산을 통해 당대의 세태를 적실하게 표현한 <두 파산>, 그리고 인민군 치하의 서울의 모습을 통해 위기에 직면한 인물들의 심리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취우>와 「짖지 않는 개」가 주목된다.
그의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 현실의 문제와 정신적 분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리얼리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채만식, 이기영 등과 함께 리얼리즘 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밤만 되면 도둑과 강간과 살인이 하룻밤에도 수없이 발생하는 노서아군이 점령한 붉은 지대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경비대원과 노서아군인 외에는 얼씬도 못하는 거리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똑똑똑…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고 보니까 노서아 군인 놈들이었다. 코가 빨간 장교와 사병이 일본 여자가 집합해 있는 곳을 찾아 욕망을 채우러 나선 길이었다. 결국 놈들은 내가 있는 곳을 일본 여자들이 집합해 있는 곳으로 잘못 알고 침입한 것이었다.
개조차 짖지 않는 곳이었다. 불안 속에서 아내는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자고 졸라대고 나 역시 그러고 싶었으나, 직장 일에 붙들려 사정이 딱할 뿐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만 먹으면 K과장댁에 가서 그의 서재에서 원고를 썼는데, 이층은 노서아 장교가 빌어쓰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K과장이 식모를 구한다고 하더니 위층을 시중드는, 묘심사(妙心寺) 뒤의 일본인수용소에 살던 계집애가 제 어머니를 소개해 왔다. 그녀의 남편은 딸 덕분에 노서아군 부대에 취직되었는데, 원래 지방법원 판사였다. 그는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가 제 딸 덕분에 위층의 장교가 풀려나오게 해 주었고, 부대에 취직도 하게 되었다. 그 작자가 오늘은 그 장교를 부르러 왔다.
나는 못내 그 장교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던 차 내려오는 장교를 보니, 바로 보름 전 밤 우리 집에 잘못 뛰어든 그 붉은 코의 노서아 장교였다. 나는 기가 막혀 멍하니 난로 앞에 섰다.
염상섭 소설에 등장하는 작중 인물은 크게 삼분시킬 수 있으니 첫째 긍정적 인물, 둘째 부정적 인물, 셋째 구시대 인물 등이 그것이다. 긍정적 인물의 전형성은 울분ㆍ고뇌ㆍ조화로 표현되는데 당시의 청년 기질을 대표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 형태가 있으니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사회주의 운동에 동조하고 과거의 인습을 참연히 파기하여 현실을 냉철한 눈으로 관찰하지만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 사유형과, 가난과 박해 속에서도 시대와 사회의 주류를 따라서 이상을 펴보고자 노력하는 적극적인 행동형이 그것이다.
부정적인 인물들은 작자의 저항감을 대변하고 있는데 그 첫째가 일제의 지배 세력에 대하여 거부적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그 예로 일본 경찰에 대한 활동이 사건마다 끼어들고 일인들의 악랄하고 간악한 성격이 기회 있을 적마다 암시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둘째는 친일파에 대한 심한 조소와 매도이다. 셋째는 경박한 신여성들에 대한 경멸감이 유감없이 노출되는 데서 감지할 수 있다. 구시대의 인물군은 정산적(精算的)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모두 자연사-병사하고 말게 된다. 그 삶에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
이 작품에서는 시간성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동일한 구성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성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묘사되고 미래가 배제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으로 되어 있다. 인물의 성격이 개성적이며 전형적으로 부조되도록 발단ㆍ전개ㆍ절정ㆍ대단원이 산만ㆍ복잡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경적 분위기를 항상 근대 도시의 특성이나 나타내듯이 '움직임'으로 파악되어 있고 밤과 낮의 의미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것도 그의 암시적 구성법에 의하여 교묘하게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염상섭만큼 기교가 바위처럼 생리화되어 있는 작가도 드물다고 평가된다. 그의 기교는 몰아적 객관성에 있다. 육체적으로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섬세하고 면밀한 신경과 성실한 눈은 다른 작가에서 볼 수 없는 그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염상섭 문학을 낮게 평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들이 지적하는 상섭 소설의 약점은 첫째 주제의 빈곤성, 둘째 구성이 버성기고 산만하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셋째 지루하고 난삽한 문장 때문에 읽히지가 않으며, 넷째 작중 인물은 정열이 없고 이지적이어서 공감력이 약하다. 다섯째 소재의 빈약성, 여섯째 문학에 대한 자세가 고루하며 문체는 만연체의 전형이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염상섭 문학을 높게 평가하는 쪽에서는 첫째 산문 정신에 투철한 관찰과 비판, 둘째 한 시대의 전형을 창조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였으며, 셋째 무기교의 기교적인 문학, 넷째 확고한 신념의 작가. 다섯째 자기 문체의 형성-완전한 산문 묘사체, 여섯째 풍부한 어휘와 자기 사회 언어의 완벽한 재생이라고 맞서고 있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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