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단편소설 『조율사(調律師)』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의 단편소설로 1972년 발표되었다. 이청준의 소설을 일컬어 흔히 '관념소설' 또는 '심리소설'이라 한다. 그의 소설 중에는 관념적, 심리적 소재를 다룬 것이 다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청준은 본격 심리 소설가는 아니다. 그는 심리, 즉 마음씀과 이치에 대하여 과학적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소설은 오히려 '의식 소설'이란 용어가 어울릴 듯한데, 그 대표적 작품이 『조율사』이다. 이 작품은 일단의 젊은 문인들의 문학적 좌절과 인생적 좌절을 다루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소설 쓰기를 중단한 지 오래된 소설가 즉, 좌절된 소설가이며 연애에 실패한 좌절된 청년이다. 그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와 친척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들에게 좌절을 안겨준 못난 아들이다.
'나'의 주변에 있는 여러 문인 친구들도 좌절을 겪고 있는데, 대체로 창작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그중에서도 촉망받던 평론가 지훈이가 가장 큰 좌절을 겪는다. '나'와 친구 문인들은 창작의 성취가 아니라 창작 준비를 위한 토론을 계속하는데, '나'는 이것을 '조율'이라 부르고 있다. 이 젊은 문학 지식인들은 실제로 연주하지는 못하고 조율만 하는 긴 좌절의 연속에서 지루하고 막연하게 연주할 기회를 기다리면서 술로 자신들의 괴로움을 달랜다.
술로 인해 위궤양을 앓고 있는 '나'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술을 끊는 등의 정상적 방법을 택하지 않고, 대신 어린 조카 외의 모든 사회관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최대의 극기력이 필요하다는 단식 요법으로 자신을 치료하려고 한다. 이것 또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삶에 대한 조율이다.
'나'는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서서히 살아나게 된다는 단식 요법에서 아무래도 육체가 죽는 단계 즉, 조율의 최후 단계까지 갔다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엄청난 성취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막연한 죽음의 불안감을 갖는다.
현대의 젊은이, 특히 문학하는 젊은이의 좌절은 현대소설이 자주 취급하는 소재이다. 대개의 경우 그 좌절의 근원을 기성 사회 또는 체제의 비리에서 구함으로써 사회와 체제를 공격하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있다. 단편소설 「조율사」에서도 사회의 비리가 암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청준은 되도록 그러한 면을 표면화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대신 개인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부각해 좌절을 겪는 젊은 문인의 의식을 표면화시키고 있다. 정치, 경제, 군사가 모두 사회를 부르짖고 있는 이때, 문학은 개인의 의식에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절실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청준의 의식 소설이 지니는 가치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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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대 후반의 젊은 소설가 이청준이 안팎에서 감지하는 소설 쓰기의 위기의식과 이를 극복한 소설가로 재 탄생하려는 의지를 함축하고 있는 소설이다. 1967년의 정치, 언론, 문화 전반에 걸친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당시 전 사회적으로 파급력을 갖기 시작한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 고독하고 소외된 도시인들의 삶과 심리를 탁월하게 그린 작품이다.
의식 소설은 의식의 미묘함을 드러내려다가 소설을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하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청준이 의식의 미묘함을 파고드는 이유는 사람의 삶 전체에서 개인적 의식이 가지는 중요성이 망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그의 문명 위기의식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편소설「조율사」는 의식 소설의 하나로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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