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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손창섭 장편소설 『부부(夫婦)』

by 언덕에서 2024. 2. 12.

 

손창섭 장편소설 『부부(夫婦)』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의 장편소설로 1962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1962년 7월 2일부터 그해 12월 29일까지 [동아일보]에 총 164회로 연재되었고, [정음사]에서 단행본으로 바로 간행되었다. 기생의 아들인 ‘나’(차성일)와 근엄한 윤리주의자 아내(서인숙)의 부부 문제를 중심으로, 1960년대 당시의 일상적ㆍ통속적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장편소설 『부부』는 전통적인 부부 관계가 전도된 상황에서 성과 사랑의 갈등 양상을 전면에 내세워 연재 당시 많은 대중의 비판과 관심을 받았다. [세대] 지와의 대담에서 작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여론의 지나친 관심은 작가가 작품 의도와 구성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 가정의 부부 관계를 통해 애정의 현대적인 빛깔을 날카롭게 조명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신문소설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 준 대표적 장편이다. 1960년대판 막장소설이라고 칭해야 할 이 작품에서도 손창섭이 소설 속에 흔히 등장시키는 이상성격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설가 손창섭 (孫昌涉 . 1922-201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유부단한 차성일은 어느 국채회사(國債會社)의 계장으로, 그에겐 결백성이 지나쳐 성생활을 멀리하는 아내 인숙과 어린 딸이 있다. 차성일의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고등학교 교장인 장인과 처가 식구들이 그를 경멸하며 멀리한다. 가정에 애정을 붙이지 못하는 인숙은 아버지의 제자이자 그녀의 첫사랑 연인이었던 한덕만 박사를 회장으로 받들고 자신은 총무가 되어 농촌진료 봉사회를 조직하여 활동한다. 아내는 갈수록 몸에 손도 못 대게하고 기껏 한 달에 한 번의 동침만을 허락한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이 이렇게 자기를 멀리하는 데 비하여, 처제인 정숙은 그를 따르며 동정한다.

 어느 날 차성일은 술을 잔뜩 마시고 집에 들어와 한덕만 박사와 놀아난다고 인숙에게 욕을 한다. 모욕을 느낀 아내는 그날로 집을 뛰쳐나가 사무실에서 기거한다. 한편, 인숙의 친구이자 한덕만 박사의 아내인 은영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녀의 시댁에서는 은영이가 성격마저 난잡하다며, 한덕만이 이혼하고 인숙과 결혼할 것을 종용한다. 이러는 사이 한덕만 박사와 인숙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시골로 내려가 진료 봉사하며 사흘씩 지내다 온다. 이러자 한덕만 박사의 아내 은영은 노골적으로 차성일을 유혹하게 되고, 이를 물리친 그는 봉사회로 찾아가 아내 인숙과 담판한다. 이때 인숙은 다섯 가지 조항을 내놓고 그것에 서명해야만 돌아가겠다고 버틴다.

 차성일은 친구의 소개로 기생인 옥경을 알게 된다. 고아 출신의 옥경은 한덕만 박사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대학까지 나와서 한 박사의 비서가 된 옥경은 아이를 못 낳는 그의 부인 은영 대신 아이까지 낳아주려 하다가 이를 눈치챈 한 박사의 부인이 몹시 구박해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이를 알고 한덕만 박사는 은영과 이혼한다.

 이혼 후 집을 나온 은영은 차성일을 유혹해서 그와 육체관계까지 맺는다. 이를 알고 인숙은 차성일을 더욱 멀리한다. 처제 정숙은 한덕만 박사의 비서가 된다. 옥경은 한 박사의 아이를 갖게 되고 인숙과 한덕만 박사는 미국으로 시찰하러 간다. 옥경이 한 박사의 아이를 뱄다는 말을 듣자 정숙은 역습해서 자기는 한덕만 박사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망한 옥경이 자살하자, 한덕만 박사는 봉사회에서 손을 떼고 회장이 된 인숙은 남편과 다시 결합한다. 정숙은 한덕만 박사와 약혼하게 되고, 인숙만 애를 태우게 된다.

 

1962년 서울시청 : 서울기록원

 

 주인공 나’는 평소 정신적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아내와의 부부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나’는 아내가 의사인 한덕만 박사의 사회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다툼 끝에 별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내가 처녀 시절 한 박사를 사랑했으나 친구인 은영에게 그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와 한 박사를 떼어 놓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나’ 부부의 별거와 재결합에 이르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여, 한덕만 박사와 은영 부부, 처제 정숙, 술집 작부 옥경의 애정 관계를 이야기의 주된 골격으로 삼고 있다.

 작중 ‘나’와 아내의 갈등은 정신과 육체의 대립으로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부부』를 이루는 중요한 서사적 장치다. ‘나’는 육체적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지만, 아내와 재결합하기 위하여 그녀의 요구대로 자기 성적 욕망을 정신적 가치로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가 아내의 금지를 깨뜨릴 때마다 갈등이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작품의 결말은 대중소설에서 흔히 나타나는 ‘도덕주의적 공식’에 따라 다소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한 박사와 아내는 사랑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대신 처제 정숙이 은영과 이혼한 한 박사와 결혼하게 되면서 ‘나’와 아내가 표면상으로 화해한다.

 

 

 손창섭은 1960년대에 대중소설로 전환하면서 연애와 결혼, 가족 등의 일상적 요소를 장편소 『부부』안에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전후 사회상에 놓인 실존적 인간과 삶의 양상을 다루었던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적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 작품은 대중의 취향에 부합한 통속소설로 치부되어 1960년대 이후에 집필된 손창섭의 다른 소설들처럼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제로 『부부』는 대중소설이 자주 이용하는 인물들 간의 갈등 구도나 성적 관능의 문제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다. 그러한 특성은 주로 부부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아내와 가부장적 권위가 승인되는 사회에서 ‘제처권(制妻權)’을 장악하지 못한 남편 ‘나’의 역전된 관계에서 나오고 있다.

 『부부』에 나타나는 사랑, 부부, 연애, 성 등에 대한 가치판단은 1960년대의 사회적 규범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부부』는 당대 한국의 생활 세계와 사회상을 고려하여 복합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작품은 1960년대의 변화된 문학 환경에서, 손창섭이 전후 세대라는 틀을 벗어나 창작의 내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 시도로써 평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