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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양귀자 단편소설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by 언덕에서 2024. 5. 23.

 

양귀자 단편소설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양귀자(梁貴子.1955~)의 단편소설로 1987년 발표된 창작집 <원미동 사람들>에 수록된 단편이다. 1986∼1987년까지 쓰여진 단편을 모은 대표작 <원미동사람들>(1987)은 경기도 부천의 한 동네에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11편의 소설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불씨>·<마지막 땅>·<원미동 시인>·<한 마리의 나그네 쥐>·「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방울새>·<찻집 여자>·<일용할 양식>·<지하 생활자>·<한계령> 등이다. 이 작품들은 1986년 3월부터 1987년 8월까지 문예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는데 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문단이 크게 주목하여 그때마다 문제작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198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원미동 사람들> 초판이 발행되었고, 현재까지 총111쇄를 기록하며 서점가의 스테디셀러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평론가들로부터 천부적 재능이 있는 의식 있는 소설가로 주목받았다. 또 박태원의 <천변풍경> 이후 훌륭한 세태소설로서 '1980년대 단편문학의 정수'라는 평가도 받았다.

부천시 원미동 골목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그’는 원미동에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한다. 하지만 집에 잦은 하자가 생겨 보수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어느 날 목욕탕 배수관에 문제가 생겨 지물포 주인에게 소개받은 임 씨에게 일을 맡긴다. 임 씨는 원래 연탄장수이지만 여름에는 집수리를 부업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와 아내는 욕실 공사를 맡긴 것을 후회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임 씨는 깔끔하게 공사를 마친다.

 임 씨는 서비스로 옥상까지 고쳐 주고, 공사비가 적게 들었다며 견적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그’는 임 씨를 의심했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함께 술을 마신다. 임 씨와 한 잔 더 하게 된 ‘그’는 임 씨가 비 오는 날이면 떼인 연탄값을 받기 위해 가리봉동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난한 도시 빈민인 임 씨의 처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도시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의 삶을 통해 1980년대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임 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비 오는 날이면 떼인 돈을 받기 위해 가리봉동에 가야 하는 도시 빈민층이다. 반면 ‘그’와 아내는 임 씨의 외모와 직업만 보고 임 씨를 평가하고 의심했다가, 성실히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는 소시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해진 ‘그’는 임 씨의 정직한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되고, 공존을 위한 내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나아가 세속적이고 탐욕스러운 현대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주변의 소외된 계층의 인물에 대해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후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현실은 여전히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꿈꾸며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반하기 일쑤이고, 주변부와 중심부의 갈등은 나날이 심화되었으며, 유형무형의 폭력은 한층 교묘해졌다. 그런 현실적 상황들 때문에 아직도 소설 속 내용들이 전혀 생소하지 않고 너무나 익숙한 우리 이웃들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몇 년 전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최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엄청난 양의 독후감을 전달받고 있으며 그 독후감의 대부분이 중학생들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독후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문장이 ‘우리 동네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아주 옛날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과 많이 비슷하다.’ 등이었다는 것도 그런 정황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이 작품이 포함된 <원미동 사람들>은 결코 명랑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각각의 소설마다 절망의 고개를 넘고 있는 사람들의 쓸쓸한 일화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