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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불교와 자이나교의 관계

by 언덕에서 2023. 11. 13.

 

 

불교와 자이나교의 관계

 

자이나교의 상징 로고

 

자이나교란?

 

자이나교는 ‘마하비라’라고 불리는 위대한 인물의 깨달음에서 시작된 종교이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非正統)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출가주의는 불전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석가와 같은 시대의 성자 마하비라(Mahvra, BC 540 ~ BC468)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제도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勝者)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이는 불타에서 연유하여 '불교'라는 호칭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이나교의 어원인 '지나'는 승리자라는 의미이며, '자이나'는 승리자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자이나교의 뿌리는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의 형태로 정립되기 시작한 때는 불교의 발생과 같은 시기인 기원전 6세기 무렵이다.

 기원전 6세기는 계급 사회인 인도 카스트 사회에서 일부 크샤트리아(왕족과 무사) 계급 사람들이 브라만(승려) 계급에 반기를 든 시기였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非) 브라만 계통의 무신론적 종교로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가 ‘섭리의 종교’라면 자이나교와 불교는 ‘업(業)의 종교’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의 삶은 붓다의 삶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인 마하비라와 붓다가 사실은 동일 인물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제기됐을 정도다. 어느 쪽이 연상(年上)인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다. 둘 다 깨달음을 이룬 후에는 인도의 왕국과 도시들을 여행하며 가르침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두 사람이 설법하며 만났다는 설도 있다. 오늘날 비전문가들이 불상(佛像)과 마하비라상을 구분해 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자이나교 창시자 ‘마하비라’

 

마하비라 상. 비전문가들이 불상과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원전 6세기, 브라만 교에서 독립한 상당수의 신흥종교인은 고행에 전념하였다. ‘고행’이란 자기를 학대한다는 개념인데, 자신이 욕심을 내는 건 바로 몸이 있기 때문이고, 모든 욕심의 근원인 이 몸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마음의 욕심을 일으키는 원흉인 몸을 학대한다는 고행을 가장 잘 대표하는 가르침이 바로 자이나교이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더불어 당시에 일어난 신흥종교를 대표하는 쌍두마차의 하나였다.

 자이나교의 교조 마하비라의 본명은 바르다마나로 기원전 540년에 지금의 인도 비하르주 지방의 바이샬리 부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붓다의 출가 전의 이름과 똑같은 싯다르타로, 유명한 크샤트리아 계급의 우두머리였으며 어머니 트리샬라는 리차비족의 족장인 체타한 빔비사라 왕의 왕비였다. 이처럼 마가다의 왕조계급에 속하는 마하비라는 붓다와 마찬가지로 어려서는 왕족으로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다가 나이 30세에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이후 마하비라는 12년 동안의 고행 속에서 알몸으로 떠돌아다니며 단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엄격히 계율을 지키며 살았다. 12년의 고행이 끝났을 때 마하비라는 모든 고통을 넘어선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그는 위대한 영웅이라는 의미의 마하비라 또는 정복자를 뜻하는 지나(jina)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마하비라는 30세에 출가해 12년 반에 걸친 고행과 명상 끝에 42세에 해탈을 달성했다. 사라수(沙羅樹, sal tree) 아래서다. 깨달음을 얻은 마하비라는 이후 30년간을 코살라, 마가다, 미틸라, 참파 등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했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남성 출가자 1만 4000명, 여성 출가자 3만 6000명, 남성 재가자 15만 9000명, 여성 재가자 31만 800031만 8000명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를 이끌다 기원전 468년 72살의 나이로 오늘날의 라지기르 근처에 있는 파바푸리에서 열반에 들었다.  자발적인 굶주림이 사인(死因)이라는 설도 있다. 자이나교에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 한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자발적인 굶주림을 허용한다. 이후 마하비라 사후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그를 자이나라고 부르면서 자이나교라는 종교가 형성되었다.

 

자이나교의 기본 가르침

 

▲자이나교 사원

 

- 5대 서약

 ⓵불살생 不殺生 Ahimsa, ⓶불소득 不所得 Aparigraha, ⓷불망어 不妄語 Satya, ⓸불탈취 不奪取 Asteya, ⓹불음 不淫 Brahmacharya 등 다섯 가지 계율이 자이나교의 기본 가르침이다. 이 가운데 처음 네 가지는 마하비라 이전에 있었던 초창기 이후 스승들의 가르침이었고 오직 다섯 번째만이 마하비라가 추가했다. 마하비라는 먼저 그는 돌과 먼지를 포함한 모든 사물에 영혼이 들어있으며 살아 있는 존재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신도들은 "아힘사(不殺生)"를 제1의 덕목으로 삼았다. 아힘사(Ahimsa)는 신도들 삶의 방식과 직업까지를 결정했다. 아힘사의 교리가 붓다에게서 차용한 이론인지 또는 브라만교의 사상에서 전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 브라만 종교라는 점은 틀림없다.

 이 가르침은 불교의 오계☜와도 흡사하다. 또한 교조(敎祖)의 출신과 인간 형성, 지리적·문화사적 배경, 교단 성립의 경위도 불교와 유사하다.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하나의 종교로 성립된 이후 불교·힌두교와 더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으므로, 인도의 전통적 문화와 그 유형무형의 유산을 논할 때는 자이나교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불교와 자이나교 사이의 밀접한 교섭은 양 종교의 원시 경전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 불살생

 자이나교는 브라만교의 근본 성전으로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1100년에 이루어진 베다(Veda)를 부정한다. 또한 지나친 의식주의(ritualism)에 반대했다. 특히 동물을 죽여 희생제에 바치는 행위를 죄악시하여 엄격한 계율 생활과 불살생 그리고 고행의 실천을 중요시한다. 자이나교는 다섯 가지의 가르침 중에서도 생명 있는 존재를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 또는 ‘불상해’의 계율을 가장 강조한다. 그렇기에 후대의 자이나교도들은 땅속의 벌레들을 해칠까 봐서 농사를 짓지 않고 오직 상업에만 종사하고 철저하게 채식 위주로 생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교리가 후에 자이나교공동체를 인도에서 부유한 계층에 속하게 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 카르마

 불교와 자이나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상의 차이점은 업(業·karma)에 대한 이해다. 불교나 힌두교에서 업은 일종의 ‘과정(process)’이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의 '업'이란 본래는 순수한 영혼에 달라붙은 마치 때 같은 불순한 ‘물질’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원자(原子·atom)다. 이 점에서 자이나교는 인도 최초로 원자론을 전개한 학파이기도 하다. 업은 인간 행동의 결과로 생성된다. 참회와 고행으로 업의 유입을 막을 수 있는데, ‘정신(正信)·정지(正知)·정행(正行)’을 통해 없앨 수 있다.

- 금욕주의

 고행은 아힘사를 어기거나 나쁜 일을 함으로써 쌓인 나쁜 카르마를 없애고 영혼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이다. 고행의 핵심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차단해야 하며 소식(小食), 단식(斷食), 굴욕, 고독 등의 '외면적 고행'과 예의를 지키기, 봉사하기, 무소유 실천, 묵상, 죄의 참회 등의 '내면적 고행'이 있다. 참고로 최고의 고행은 단식하다가 굶어 죽는 장면으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함이 성인의 반열에 드는 수준이다.

 

자이나교의 경전

 

붓다는 인도 북부 네팔에서 태어났고 마하비라는 그 아래 지역 바이살리에서 태어났으니 두 성자는 인근 지역 출신이이다

 

 그리스도교·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 역시 초창기에는 문서로 만들어진 경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교조의 가르침이 구전과 암송을 통해 전승되었다. 이후 기원전 4세기가 되면서 자이나교 교파 사이의 이견이 생기면서 정경(正經)을 확정해야 할 필요가 생겨났다. 이러한 목적으로 기원전 4세기말 무렵에 열린 집회는 기원후 454년까지 계속되었고 700여 년에 이르는 세월을 통해 84가지 문헌들이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자이나교의 경전은 41종의 수트라(經) 및 12종의 주석과 한 개의 대주석(論)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당 문헌들은 마가다 지방 방언들로 전수되었으나 이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되었다. 이는 대승불교도 마찬가지다.

 자이나교의 원시 경전에서는 비교적 상세한 교의가 정립되어 있으나, 그 이후로는 불교만큼 다채로운 발전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후세에 와서 자이나교 경전에 나타나는 인식론이나 논리학은 불교의 영향이 현저하다. 또한 오랫동안 흩어져 사라졌던 불교의 작품들이 최근 자이나교의 승원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자이나교의 특징

 

– 인본주의적 종교

 자이나교에는 창조주 혹은 절대신 또는 인격신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깨달은 자의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주적인 지혜를 가지는 건 예외다. 요즈음 자이나교 신자들은 주로 인도의 중부와 서부에 사는데 비핵화 운동, 동물실험 금지에 열심이다. 매일 48분씩(하루의 30분의 1) 명상을 한다. 목표는 우주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다. 그들은 매달 두 번 단식하고 자신의 죄를 공개 고백한다.
 자이나교는 용서와 우의의 종교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나는 모든 생명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들 모두 나를 용서하고, 내가 그들 모두와 친교를 맺을 수 있기를 빕니다.” 자이나교에는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와 달리 신(神)은 빠져 있다. 그들은 '우주는 영원하며 창조되지 않았다'라고 보기 때문에 신이란 필요 없다. 자이나교는 인간이 스스로 완벽하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종교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는 “깨달은 인간은 신 보다도 위대하다”라고 주장한다.

-이원론

 자이나교는 세계의 모든 것이 생명인 지바(jiva)와 비생명인 아지바(ajiva)로 나뉘어 있다고 믿는다. 아지바는 비생명이지만, 지바 즉 생명체는 자신의 영혼에 붙은 카르마에 따라 사후에 물속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환생한다. 최종목표는 영혼을 가볍게 하고 나쁜 카르마를 없애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이 지바(생명체)는 순수한 영혼일 뿐이지만 카르마에 의해서 오염되어 있다고 한다. 오염된 정도가 심할수록 영혼은 무거워져 지옥에 가까워지며 모든 지바,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은 카르마가 쌓이지 않도록 5대 서약(특히 불살생)을 지키며 고행하여 자신의 영혼을 가볍게 만들어야만 한다.

 고행과 계율의 준수를 통해 순수성을 회복하여 자기 눈을 가리는 카르마들을 벗고 이 세상을 한눈에 보고 우주적 지혜 혹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 테러 분자가 들어오면, 우선 미국처럼 공항을 폐쇄하고, 국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정간첩 같은 무리에게 수배령을 내리는 경우다. 자이나교에서도 이처럼 강경 진압해서 본래 청정한 자아를 회복한다고 말한다.

-마이너종교

 자이나교의 불살생(不殺生)은 불교보다 더 급진적이다. 자이나교는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땅을 파면 벌레들을 해칠 가능성 때문에 농부가 되지 않는다. 그 실천 생활상의 특색으로서 승려를 통하여 불살생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다수 자이나교 신자들은 상업·금융업·예술·교육 등 분야에서 일한다. 벌목과 관련된 목공업도 피한다. 벌레나 식물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이나교의 신도 숫자는 인도 전역에 걸쳐 180만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상호 부조하는 성격이 강하다. 상인이나 금융업자가 신도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적 영향력 은 매우 막강하다. 

 불교 쪽에서 자이나교를 보자면, 자이나교의 극단적인 무소유 수행이란 도를 닦는다고 광고하러 다니는 짓이다. 몸이란 욕심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도를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그릇이기도 한데, 어떻게 함부로 내놓고 천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따라서 욕심만 내지 않으면 되었지, 극단적인 처방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아무튼 자이나교가 중국이나 동남아 등 타 국가에 전래되지 듣지 못했는데, 이러한 극단적인 수행이 마이너 종교가 되는 빌미가 되었다. 그에 비해, 불교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뿌리를 내렸으니, 그건 불교 쪽의 선택이 더 현명했음을 보여 주는 객관적인 예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자이나교의 교파

 

 자이나교는 무소유를 극단적으로 실천한다. 교조 마하비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살았다. 우주가 그의 옷이니 굳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마하비라는 출가 후 첫해에는 단벌로 다녔는데 그마저 버렸다고 한다. 당연히 맨발로 길을 다녔다. 오늘날 자이나교 출가자들은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다. 불살생의 교의는 후에 자이나교는 흰옷만 입는 쉬브탐바라(Shvetambara)와 어떠한 옷도 걸치지 않는 디감바라(Digambara)로 나뉜다. 그 나누어진 이유는 기근으로 인한 수행방식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였으며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 측을 디감바라라고 부르며 수정을 가한 측을 쉬브탐바라 한다.

–공의파(디감바라(Digambara))

 공의파(空衣派)는 옷을 거부했다. 또 공의파는 여성은 해탈할 수 없으므로 해탈하려면 일단 남성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여성의 성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불교에서도 발생했다). 공의파에 따르면 여성은 알몸으로 살아가는 게 힘들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해로운 존재다.
-백의파(슈베탐바라( Shvetambara))

 백의파(白衣波)는 간단한 옷 세 벌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의파는 여성을 ‘차별’ 하지 않았다. 공의파에 따르면 마하비라는 미혼이었다. 아버지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백의파는 그가 결혼해 한 명을 딸을 뒀다고 본다.

 

자이나 교도가 먹는 음식

 

 자이나교 신자들은 채식주의를 실천한다. 채식(菜食)은 “고기류를 피하고 주로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만 먹음”을 의미한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식물성이라고 다 먹는 것은 아니다. 감자·마늘·무 같은 뿌리채소, 무화과, 꿀 등은 먹지 않는다. 과일·강황·생강·견과류·우유 등을 먹는다. 자이나교의 엄격한 채식주의는 불교와 힌두교에도 영향을 미쳐 채식주의가 인도 사회에 보편적으로 수용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예식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하비라는 걸식(乞食)에 필요한 그릇마저도 소유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물과 음식을 받아먹었다. 초기 자이나교에서 마하비라의 가르침은 구전 형식으로 경전화되었다. 책을 소유하는 것마저도 무소유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문서로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4~5세기부터다. 자이나교는 사람은 뭔가를 가질수록 불행하고 죄를 지을 가능성도 커진다고 본다.

 

사진 출처 : 중앙읿보

 

불교와 자이나교의 분기점

 

 불교의 삼보(三寶)는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인데, 자이나교에도 삼보가 있다. 자이나교의 삼보는 ‘정신(正信)·정지(正知)·정행(正行)’이다. 양쪽 다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涅槃)이다.

 자이나교와 불교의 분기점은 고행을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이냐에 있다. 자이나교 쪽에서 볼 때, 불교는 뜨뜻미지근하게 수행하는 종교이고, 불교 쪽에서 자이나교를 보자면, 자이나교는 너무도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하는 종교이다.

 자이나교에서는 강하게 계율을 지킨다. 가장 인상적인 교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무소유’인데,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장면이 벌거벗고 지내는 경우다. 여기서 주의할 건 팬티도 입지 않고 홀딱 벗는다는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 인구는 여성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이 있는데, 자이나교의 고승들은 지금도 수많은 여성 신도 앞에서 홀딱 벗으신 채 근엄한 표정으로 교리를 강의한다.

 

기타

 

 자이나교는 온건한 종교이다. 우선 자이나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힌두교 문헌을 포함해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수집해 보존했으며, 자이나교 신자들은 인도 최고(最古)의 도서관들을 건립했다. 자이나교는 인도의 철학·언어학·논리학·수학·천문학·건축·예술 등 분야에서 불교보다 더 많은 영향을 남겼다. 역사적으로 자이나교는 ‘다원주의’를 신앙 속에서 실천했다. 인도 바깥에서 자이나교·힌두교 신자들은 같은 사원을 공유한다.
 다른 종교에 대한 자이나교의 온건하고 관용적인 태도는 마하비라가 가르친 ‘비절대주의의 원칙’에서 나온다. 다양한 관점에 따라 진리와 현실은 다르게 보인다는 가르침이다. 그 어떤 단일한 견해도 절대적인 진리를 대표하지 않는다. 자이나교는 진리의 다면성·상대주의·다원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비판하지 않는다. 타 종교에 대한 경쟁의식이란 없다. 폭언·갑질은 당연히 안 된다. 자이나교는 사실(事實, fact)마저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이나교와 불교의 고행 정신은 정도의 강약에 차이점이 있다고 해도 그 기본정신은 매우 타 종교들에 모범적이다. 편의를 위한 시대, 자신의 고통은 조금도 감내하지 못하는 시대에서 보자면,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던 이 두 종교는 감탄과 존경의 눈길을 받아 마땅하다.

 

 


불교의 오계 : 

 

1. 불살생(不殺生) :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2. 불투도(不偸盜) :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3. 불사음(不邪婬) : 사음을 하지 말라.

4. 불망어(不妄語) : 거짓말을 하지 말라.

5. 불음주(不飮酒) : 술을 마시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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